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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일본 임대료 제도에서 배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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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정의식기자 |  2024.03.04 10:21:37

지난해 폐업한 연남동의 한 기사식당. (사진=CNB뉴스)

결국 그 가게도 문을 닫았다. 40년간 3대째 이어져온 연남동 대표 기사식당도 변화한 시대의 흐름과 젠트리피케이션의 압박은 피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제 연남동 ‘기사식당 거리’에 기사식당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연남동’하면 ‘기사식당 거리’로 통했던 10여년 전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상황이다.

기사식당들만 사라진 게 아니다. 차이나타운 못지않게 거리를 가득 채웠던 중국 음식점들도 거의 사라졌다. 드문드문 몇곳만 남아 한때 이 거리가 화교들이 모여살던 거리였음을 추억하게 할 뿐이다.

기사식당과 중국집들이 사라진 연남동은 프랜차이즈 카페들과 디저트, 일식집, 스티커사진관 등으로 채워지고 있다. 문제는 이 새로운 상점들도 잠시 지나면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는 것. 왜 이렇게 대한민국의 가게들은 수명이 짧을까?

예전에 들었던 친구의 한탄이 떠오른다. 그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국 관광 가이드 서적을 집필했었다. “이 정도 가게라면 안망하겠지”하는 마음으로 나름 검증된 장수 식당만 ‘맛집’으로 소개했지만, 매번 “그 가게 이미 폐업했다는데요”라는 독자의 원성을 들어야 했다고.

수십년된 가게는 ‘장수 식당’으로 쳐주지도 않고, 100년 넘는 가게가 1만여 곳이 넘는다는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한국 식당들의 빠른 폐업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 같다.

 


임차인 권리 지켜주는 간이재판소 시스템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왜 오래된 식당들이 장기간 영업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대대로 ‘가업’을 이어가는 독특한 문화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로 꼽히는 건 우리와 다른 ‘임대료 시스템’이다.

일반적으로 일본에서는 건물주가 임차인과 합의없이 맘대로 임대료를 올릴 수 없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려면, 먼저 인상 요구 통지서와 함께 근거 서류를 임차인에게 발송해야 한다. 임차인은 임대인의 요구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될 경우 지역 간이재판소에 중재 요청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임대인과 임차인은 재판소를 찾아 공식 협의를 진행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결렬되면 정식 재판을 통해 임대료를 확정한다.

간이재판소는 일반적으로 임대인보다는 임차인의 권리 보호를 중시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임대인이 임대료를 올리려면, 변호인을 고용하고, 현재의 임대료가 주변 임대료보다 저렴하다는 걸 충분히 입증하는 등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일본 우에노의 한 음식점. (사진=분라쿠 페이스북)

또, 간이재판소는 임대인의 영업으로 인해 건물가치가 상승했을 경우, 그 노력을 충분히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최소 주변보다 임대료가 20% 정도는 저렴해야 시세 변화에 따른 인상을 인정해주는데, 그 범위도 고작 5%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렇다보니 임대인들은 갑자기 임대료를 올리거나 새로운 임차인과 계약하기보다는 기존 임차인과 장기적으로 임차계약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임대료 수입을 올리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수십년간 한번도 임대료를 올리지 않은 케이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과대한 임대료 인상 요구에 유명 맛집이 폐업을 결정하고, 건물주가 그와 유사한 업종의 매장을 창업, 이익을 독식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법 개정해도 ‘헛점’ 악용하는 건물주들



어쨌든 이런 문제점들을 줄이기 위해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 시절 여당의 단독 의결로 ‘임대차 3법’이 통과됐다. 기본 2년의 임대차 기간을 1회에 한해 2년 더 연장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재계약의 임대료 상승폭을 직전계약 임대료의 5%로 제한한 ‘전월세상한제’, 임대차 계약의 내용을 30일 내로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신고하게 한 ‘전월세신고제’ 등이 그 내용이었다.

임대차 3법은 일본을 비롯한 해외 각국의 사례를 참조한 법안이었고, 실제로 전세가 상승률을 낮추고, 주거 안정에 기여했다는 호평도 받았지만, 오히려 임대료를 폭등시키고, 임대인이 피해갈 수 있는 다양한 구멍이 있었다는 악평도 함께 받았다. 대표적으로 집주인이나 직계존비속이 실제 거주할 경우 임대인이 계약갱신을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은 임차인이 실거주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어 악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상가건물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현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대인은 1년에 최대 5%의 임대료 증액을 임차인에게 요구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무조건적인 5% 인상을 허용하는 권리가 아니라 조세, 공과금 및 기타 경제사정 변동 같은 충분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며, 임차인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임대인이 법원에 관련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2023년 11월 2일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지방정부협의회'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관련 3법 개정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또, 임대인이 현 임차인과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임차인과 계약을 하고 싶어도, 최소 10년까지의 계약갱신요구권을 임차인에게 보장하고 있다. 법조항만 보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임차인의 권리가 제법 보장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요즘 건물주들은 임대료 인상 연간 5% 제한을 피하기 위해 관리비를 크게 인상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 상가임대차 상담센터 상담자료에 따르면, 심지어 어떤 건물주는 관리비 5배 인상을 요구했다는 것.

편법적인 관리비 인상에 분노한 임차인들은 관리비 세부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하지만, 현행법령에는 공개 의무가 없어서 그냥 거부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편법적 관리비 인상을 차단하고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쯤되면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는 말이 대한민국에서 사라질 날이 과연 올지 궁금해진다.

(CNB뉴스=정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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