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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의 대가, 이태길에 다시 주목하는 이유..."단색화 그 후 작가?"

1960년~1990년 구상의 시대, 1990년~2020년 축제 연작 탄생, 2020년 이후 '기호화된 확장'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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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진부기자 |  2023.10.24 09:46:09

이태길 작가의 2023년 최근 작 '축제', 작품에 오프제들이 기호화돼 무한하게 확장되고 있다. (사진 = 이태길 아틀리에)

이태길 작가는 오는 11월 1일부터 한달간 목포에 위치한 '이안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서울 전시는 10월 24일까지 인사아트센터 3층에서 열리고 있는 중이다.

과거 '구상의 대가'로 알려진 82세 이태길 작가에게 다시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태길 작가는 30년 전 직관한 고구려 벽화에서 출발해, 한국 미학의 개념인 '신명'을 담은 한민족의 '축제(KOREAN FESTIVAL)'시리즈를 거쳐, 이젠 우주적 상생으로 '축제'를 기호화해 무한 확장시켰다. 이 작품이 탄생하는데 30년이 걸린 셈이다.

1990년대 "일대변란의 격동기"

이태길 작가의 최근 작품 "코리안 페스티벌(KOREAN FESTIVAL) 시리즈"는 90년대 10년 동안의 '격동기' 끝에 1999년~2001년 일본 동경 '평화미술전'에 참가하면서 그 윤곽을 차차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태길 작가 (사진= 이태길 아틀리에)

2000년 11월 경 김남수 미술평론가는 이태길 작가에 대해 "그는 오늘이 있기까지 예술양식의 모든 영역을 샅샅이 누벼 온 중진급 작가다. 아카데믹한 극사실, 극세필 화풍부터 시작해 빛과 색채가 어우러진 인상주의 화풍, 남국의 태양이 작열하는 포비즘 스타일의 격정적인 화풍, 비록 형상의 이미지는 사실의 바탕을 두고 있지만 기하학적인 선과 면으로 화면을 부조처럼 각인하는 공간구성 등 다양하고 화의가 샘물처럼 솟는 그런 역량있는 화가로 이태길을 지적할 수 있다."라고 썼다.

그러나 이태길 작가는 10년 동안, 1990년대를 아카데믹한 구상화풍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로 변화시키는 "일대변란의 격동기"를 겪게 된다. "일대변란의 격동기"라는 표현은 김남수 평론가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다.

일대변란 격동기 10년, 그는 무엇을 했을까?

2012년 3월 8일~18일 금호미술관 전관에서 이태길 작가의 개인전 '축제'가 개최됐다. 당시 김복영 미술평론가는 "그가 새로운 변화를 의식한 것은 1990년대 두 차례 있었던 만주와 압록강 답사가 계기가 됐다. 1995년 고구려와 발해문화를 탐방하고자 만주를 여행하고 이듬해 '조선통신사의 길을 가다'에 참가해서 일본을 여행한 것은 큰 변화를 그에게 안겨주었다. 1997년 두차례에 걸친 압록강 답사여행은 하나의 결정적인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라고 언급했다. 특히 고구려 벽화를 실제로 직관한 것은 이태길 작가가 '축제'시리즈의 영감을 얻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태길 작가가 1990년대 고구려와 발해, 압록강, 일본, 소련 등을 답사하면서 기록한 내용을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엮어 2006년 출간한 저서 '압록강 2천리' (사진= 이태길 아틀리에)

당시 10년의 답사와 연구가 이태길 작가에게 얼마나 큰 감동과 영향을 주었던지, 2006년 '압록강 2천리'(캔버스에 담아 온 민족의 발자취)라는 책을 도서출판 아트원에서 양장본 컬러판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그 책에는 압록강 2천리, 고구려 발해의 역사, 조선통신사, 소련 스케치 등 답사를 하면서 그린 그림과 글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20년 후 '축제' 시리즈의 변화
'민족 화합'에서 '우주적 상생'으로


축제(KOREAN FESTIVAL) 시리즈 태동 후 20년이 지난 2020년부터 이태길 작가의 '축제'는 기호화 됐다. 이번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전시장을 찾은 일반 관람객들은 그의 작품을 '추상'으로 인식할 정도다. 하지만 이 시리즈 작품의 특징은 구상에서 출발해 기호화되고 단순화돼 선과 색이 남은 구상 작품이라는 것이다.

서영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는 최근 '축제' 연작과 관련해 "2000년대부터...이 '축제'의 주제는 그의 최근작들에 까지 연이어지고 있다. 다만 작품의 중심에 있던 구체적 인간 형상들 혹은 민족성을 상징하는 십장생, 달항아리, 백두산 천지와 같은 형상들이 이제는 추상적 기호로 바뀌어 있다... 이들의 무수한 반복 덕분에, 전체 화면이 프레임 바깥으로 확장되는 듯하고, 심지어 무한대로 펼쳐진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라고 썼다. 그의 작품이 구상에서 기호화돼 우주로 무한히 확장되는 경향을 설명한 중요한 부분이다.

 

오브제들이 구상으로 드러나는 시기의 작품 '축제' (사진= 이태길 아틀리에)

또한 서영희 교수는 "필자의 이런 생각을 떠받쳐주는 듯, 화면 위에 펼쳐진 군상의 장관은 그야말로 우주적 상생의 기운으로 진동한다. 비단 우리 한민족으로 국한되어야 할까? 단언하건대 전 세계의 인류가 이 상생의 장엄한 공간 안에서 서로 연결된 채 위 아래 없는 관계의 네트워크를 보여준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이태길 작가의 과거 60년, 다시 주목하는 미래

결론적으로 볼 때, 이태길 작가의 삶은 크게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60년대 미대에 입학한 때부터 첫 30년간은 아카데믹한 사실주의에 입각한 활발한 구상의 시기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태길 작가의 작품 '축제', 현재의 '기호화된 축제' 작품이 발표되기 전 시기의 구상 작품 (사진= 이태길 아틀리에)

이후 1990년대부터 30년간은 10년의 '방황과 격동기'를 거쳐 현재의'축제' 연작을 탄생시킨 인생의 중요한 시기로 볼 수 있다. 그가 표현했던 오브제들은 기호화돼 '축제' 작품에 녹아있다.

이후 이태길 작가의 미래는 그동안 60년에 걸친 그의 노력에 대해 결실을 맺는 완성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평생을 수도자처럼 작품활동을 해 온 작가라는 사실은, "단색화 그 후" 세대인 이태길 작가를 다시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다.

(CNB뉴스= 김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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