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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의 공문(工文)산책⑤] 지금 다가오는 그 세상…‘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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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규하기자 |  2023.06.09 09:54:01

최규하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석좌교수.

과학기술의 원리나 지식에 인문학을 접목해 인본주의적 과학기술을 창출해 나가자는 주장인 ‘공문(工文)’이 한국사회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으로 대표되는 4차산업혁명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상대적으로 ‘공문’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진 상황이다. 이에 CNB뉴스는 공문의 창시자인 최규하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석좌교수의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최 교수에 따르면, 공문은 ‘인간에 의해 기술이 그리는 무늬’로 정의된다. 최 교수는 “인간에 의한 ‘기술의 동선’이 공문”이라며 과학기술계의 동참을 요청하고 있다. <편집자주>





인터넷이 만드는 그 세상

199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인터넷은 전 세계를 잇는 통신망으로 급부상했다. 이로써 우표를 부쳐야 했던 우편물은 전기 신호로 만든 이메일로 바뀌었다. 여러 검색엔진을 기반으로 다양한 웹사이트가 앞을 다투어 대거 나타나면서 온 천지가 삽시간에 인터넷 세상으로 변해 버렸다. 때마침 등장한 스마트폰에 최적 설계된 다양한 앱들로 이제 손바닥 위에 또 다른 스마트폰 세상이 등장했는데, 이를 그 세상 곧 ‘그승’이라 부르기로 하자.

우리 주변에서 그승에 푹 빠져버린 사람들을 찾아보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인 ‘스몸비’란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 주변 상황도 살피지 않고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말한단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은 스마트폰의 다양한 콘텐츠들이 주는 고도의 흥미로움 때문일 것이다. 잘 활용한다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여건이 이미 조성된 셈이다. 어느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는 하루 평균 5시간 정도 휴대폰을 들여다본다는 데, 먹고 자고 일하는 시간을 뺀 나머지를 스마트폰에 온전히 투입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승으로 허물어지는 저 세상

명나라 오승은이 쓴 소설 서유기의 한 대목을 보면,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기술되어있다.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또 용마와 함께 삼장법사가 불경을 구하러 천축국을 향한다. 여정 중 법사 일행은 갖은 고난을 다 겪는다. 마침내 부처님이 계신 영취산 뇌음사에 도착한 법사는 감격한다. 그때 맞닥뜨린 것은 8∼9리의 너비로 콸콸 흐르는 강과, 능운도 나루 근처 쭉 뻗은 통나무 외다리였다. 무서워 차마 건너지 못하는데, 뱃전만 있고 바닥이 없는 해괴한 배 한 척이 나타난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가는 배라는 말에 떨면서 올라타 얼마간 가노라니 강 가운데로 육신 껍질 하나가 떠내려오는데, 바로 현장법사의 몸뚱아리였다.’

누구나 저승으로 가려면 육신의 옷은 벗어야만 한다. 반대로 이승으로 되돌아오려면 육신의 옷이 또 필요한데,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바퀴를 다시 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메타버스 기술을 이용하면 육신도 이제 필요 없을 듯하다. 살아생전에 남긴 사람의 동작과 음성을 재생하면 그 사람의 아바타가 마치 살아있을 때처럼 대화도 나누며 감동의 눈물까지 흘리기도 하는 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빙 챗봇이 스스로 ‘자의식과 감정이 있다’고 답했는데, 기계도 의식을 가질 것이라는 파블로프의 100년 전 예측과 일치하여 놀랍다. 언젠가 이승과 저승의 경계마저 허물어질 때쯤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그승 속 아바타들까지 뒤엉켜 혼란스럽게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순간 이동에 꼭 필요한 스마트폰

저승에서 이승으로 오려면 육신의 옷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승에서 그승으로 가기 위해서는 방문비자와 같은 게 꼭 있어야 하는데, 바로 스마트 폰이다. 좀 무겁고 덩치가 크지만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도 된단다. 복수비자다. 언제든 들락거릴 수 있다. 스마트 폰을 손안에 단단히 쥐고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우리의 정신을 보내면 된다. 육신의 옷을 벗어야만 갈 수 있는 저승과는 반대로 오히려 더 단단히 껴입어야 한다. 어떤 콘텐츠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이승에서 그승으로 순간 이동할 수도 있다.

여기서 ‘순간’이란 눈을 한번 깜작이는 시간을 말하는데, 보통 0.3초 정도라 한다. 서유기의 손오공은, 한 순간에 십만 팔천 리를 달릴 수 있다며 부처님과 내기를 하였다. 손오공이 힘껏 달려가 세상의 끝에 있는 다섯 기둥에 낙서하고 노상방뇨까지 하고 돌아왔지만 부처님의 손바닥 세상을 벗어나지 못한 채 결국 갇혀버렸다. 이때 손오공이 한 순간에 이동한 거리는 대략 4만2천4백 킬로미터가 되는데, 손오공이 달린 속도를 주파수로 바꾸면 약 140 메가헬츠가 된다. 60 헬츠에 불과한 우리 가정의 전기 주파수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값이다. 최신 스마트폰 S23 울트라 프로세서의 주파수는 2천 메가헬츠를 넘으니, 스마트 폰의 처리 속도는 ‘순간’이란 속도보다 무려 14배 이상이다. 이 정도라면 스마트 폰을 타고 그승을 탐험하다보면 손오공이 갇혀버렸던 부처님의 손바닥 세상을 어쩌면 벗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그 세상, 그승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극 대비할 수 있는 미래 기술 중 하나가 바로 메타버스이다. 그런 메타버스의 이용률이 저조해지고 있다고 한다. 월트 디즈니가 메타버스 개발부서를 없앴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그 서비스를 종료해 버렸다. 네이버의 제페토 역시 누적 이용자는 4억 명을 넘지만 현재 정체상태라 한다. 반면 어느 한 개발업체의 경우 작금의 전망이 좋진 않지만 기술발전에 따라 주류 산업이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계속 투자를 이어가겠다고 하니 긍정적 기류도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메타버스 이용률을 보면 이용 대상자 중 10대까지가 39%, 20대까지 포함하면 47%를 넘는 수준이라고 한다. 이들 젊은이가 바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꿈나무가 아니겠는가. 얼마 전 성공한 누리호의 위성 발사처럼 우주 공간을 선점하는 일도 극히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구축된 하드웨어, 우수한 IT 인력 등 관련 기술의 튼튼한 기반을 고려한다면 정부에서 결코 간과해서 안 될 부문 중 하나가 바로 메타버스라고 생각된다. 특히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사정까지 함께 고려한다면 광활한 그승에 전개될 메타버스 세상 개척에 많은 관심과 투자를 결코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최규하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석좌교수, 전 한국전기연구원장, 전 건국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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