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가 점주에게 광고비 떠넘겨
피해 커지자 동의받도록 법개정
“마케팅 전략 침해한다” 우려도
4.7재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하면서 여권 내 쇄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그동안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각종 민생․경제법안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각종 경제공약이 쏟아지면 여야 간 입법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에 CNB는 정치권의 주요 기업정책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가맹점 사업자 보호에 관한 쟁점들이다. <편집자주>
거래상 지위가 낮은 소상공인인 가맹점주들의 권익을 제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맹본부가 광고·판촉행사비를 일방적으로 가맹점에게 전가하는 등 ‘을’의 입장에서 갑질을 당하는 사례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가맹본부 200개(21개 업종)·가맹점 1만2000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서면 실태조사(2020년 9월~11월)에 따르면, 가맹본부로부터 불공정거래를 경험한 적이 있는 가맹점주 비율은 42.6%였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복수응답으로 본사가 ‘광고비 등을 부당하게 전가하는 행위’가 13.5%로 가장 높았고, 특정 거래상대방과의 거래 강제 13.3%, 거래상 지위 남용 불이익 제공 11.9%, 부당한 계약조항 변경 9.8%, 부당한 영업지역 침해 9.6%, 중요 정보 은폐 또는 축소 9.5%, 부당한 영업활동 제한 9.5%, 매출액 등 허위 정보 제공 8.5% 등이었다.
가맹점 사업자단체의 지위 역시 열악한 수준으로 파악됐다. 가맹점 단체 가입률은 40.8%였으나 단체 가입·활동에 따른 불이익 경험률은 20.5%로 전년 대비 12.0%포인트나 늘었다.
또한, 가맹점 단체 가입 점주 중 가맹본부에 협의 요청 시 거절당한 경험이 있는 점주 비율은 33.3%, 거절 경험이 없는 경우 25.8%, 협의 요청 경험이 없는 경우 40.9%로 조사됐다.
특히 광고·판촉 행사의 실시 여부 등은 가맹점에 큰 금전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중요한 거래조건이기에 사전에 가맹본부와 협상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을’ 피해 계속되지만…‘협의요청권’ 유명무실
왜일까. 현행법상으로는 가맹점 사업자단체가 가맹본부에 거래조건의 협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로 단체의 자격을 확인해 주는 법적 절차가 없다.
따라서 이를 구실 삼아 가맹본부가 단체의 대표성을 인정치 않아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 치킨업계를 대표하는 가맹본부 2곳이 공정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다. 비비큐(BBQ) 및 비에이치씨(BHC)는 가맹점 사업자단체 활동을 주도한 단체 간부 등을 상대로 가맹 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을 거절한 행위가 적발됐다.
이밖에도 과도한 수량의 전단물을 특정 사업자로부터 구매하도록 하는 등 가맹사업법을 위반해 각각 시정명령과 함께 비비큐는 15억3200만원, 비에이치씨는 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공정위는 가맹 분야의 불공정 관행을 근본적으로 뿌리 뽑기 위해 벼르고 있다.
공정위가 마련해 지난 5월 국회에 제출된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가맹사업법 개정안)’은 가맹본부가 가맹점이 비용을 부담하는 광고·판촉행사를 실시하려는 경우 가맹점주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위반하면 시정조치·시정권고 및 과징금이 부과된다.
더불어 동일한 영업표지를 사용하는 가맹점 사업자로 구성·설립된 점주 단체에 대한 등록 제도를 도입, 이 대표 단체로 하여금 협의를 요청받은 경우 본사는 성실하게 그 협의에 응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공정위는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통해 부당한 비용 전가 행위 등이 크게 줄어들고 본점과의 협상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회에는 이와 비슷한 내용의 관련법도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의원(전해철·민형배·이정문·이동주)들이 각각 대표발의해 계류중이다.
정부안과 차이점은 ‘협의요청권’의 실효성 확보다.
정부안의 경우 점주 단체 등록제를 신설했고 거래조건과 관련해 성실하게 협의에 응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어길 시 제재규정이 없다.
반면, 전해철·민형배·이동주 의원안은 점주 단체 신고제 뿐만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정당한 사유 없이 협의를 거부할 경우 시정조치 및 과징금의 제재조치를 통해 가맹본부와 가맹점 사업자단체가 대등한 지위에서 협의할 수 있도록 강제화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번에 정부안이 올라온 만큼 향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의원안과의 병합심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데, 핵심 이슈는 ‘협의요청권’ 현실화 여부로 최종안 향배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본부 측 “광고는 타이밍…언제 협의하나”
한편,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한 반대의견도 있다.
먼저 광고·판촉행사 사전동의제의 경우 경영권을 제약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정무위에 따르면 미국·일본 등 주요 국가는 프랜차이즈의 광고·판촉행사 실시 전 가맹점 사업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 광고·판촉을 강요하거나 부당하게 큰 비용을 부담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거나(미국 인디애나주법), 광고·판촉 비용을 별도 계좌로 관리하도록 하고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이 비용을 사용할 수 있도록 엄격히 관리하는 방식(호주) 등으로 규제하고 있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는 광고 등 홍보는 경영에 있어 그 중요성이 상당히 높아, 사전동의를 의무화하는 것은 본사의 경영상의 자유를 제한할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이다. 또 광고나 판촉행사의 경우 적시에 시행되는 것이 중요한데 사전협의로 인해 지체되는 경우 그 효과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견해를 정무위에 전달한 바 있다.
이에 정부안에서는 별도 약정을 체결했거나, 동의하는 가맹점주만 참여하는 분리 판촉행사의 경우에는 사전동의를 제외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가맹본부라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상명하복식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고 대부분 점주들과 상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단편적으로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규제를 적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광고·판촉 사전동의와 관련해선 “진행 과정이 길어져 제때 마케팅을 못 하면 사업이 위축되고 브랜드 영향력이 떨어지게 되면 결국 피해는 점주들에게 돌아간다”며 “업계에서는 줄곧 반대를 피력해 왔는데 정부안에서 사전에 포괄적으로 약정을 맺어놓으면 사전동의를 받은 것으로 간주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어린이날 행사라든지 해마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예측 가능한 마케팅에 대해 미리 약정해놓으면 된다는 것으로 업계 입장에서는 최악은 피하고 비교적 수용할 만한 부문이라는 것.
또한, 등록제의 경우 접수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반사항이 잘 갖춰져야 한다는 업계 의견도 전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도 가맹본사에서 협의를 요구하는 가맹점 단체에 가입자 리스트를 달라고 해도 주지 않는 상황”이라며 “등록제(신고제)가 이뤄진다면 심사는 안 하더라도 전체 점주 중 몇 %가 등록했고 추후 마련될 비율을 충족하는지 등 신고요건에 대한 증빙절차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점주 단체가 과도하게 빈번히 거래조건 협의를 요청할 때는 가맹본부에 지나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에서는 아무래도 향후 법안심의에서 ‘협의요청권’ 강제화가 쟁점으로 불거질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 의사 개진 등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乙’의 가맹점주들이 일부 ‘甲’의 가맹본부에 맞설 무기를 가질 수 있게 될까. 향후 국회에서의 논의 과정에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CNB=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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