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외국인의 택배업 취업 허용 추진
택배업계, 만성적 인력난 해소 기대감
노동계 “근로환경 개선이 우선” 반발
위험의 이주화…다른 방법은 없는걸까
4.7재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하면서 여권 내 쇄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그동안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각종 민생․경제법안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각종 경제공약이 쏟아지면서 여야 간 입법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이에 CNB는 정치권의 주요 기업정책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택배회사들의 숙원인 ‘외국인 근로자 고용’ 논란이다. <편집자주>
일명 ‘극한의 노동’으로 불리우는 택배 물류터미널 상·하차 작업에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지 여부를 두고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국무총리 소속 외국인력정책위원회는 최근 방문취업(H-2) 자격 외국인에게 택배분류업(상하차) 취업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법무부는 법적 후속조치로 방문취업(H-2) 비자를 가진 이주노동자 즉, 중국과 구소련지역 출신 외국국적동포의 취업허용 범위를 확대함을 골자로 한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하고 오는 21일까지 의견을 접수받고 있다.
이 같은 방안이 나오게 된 배경은 뭘까. 일단 정부는 산업현장의 인력부족 문제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전경련 등에 따르면 택배서비스는 주간에 집하된 화물을 다음날 배송하기 위해, 당일 야간에 물류터미널에서 인력으로 직접 상·하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물류터미널 상·하차 작업은 노동 강도와 작업시간(저녁~다음날 아침) 탓에 내국인이 기피하는 대표적인 업무로, 심각한 구인난을 겪고 있다.
택배업계에서는 만성적인 인력부족난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외국인 근로자 취업 허용을 적극 요구해 왔다. 현재 중소 제조업(상시근로자 300인 미만 또는 자본금 80억원 이하), 건설업 등은 외국인 근로자 고용이 가능하지만, 택배업은 제외돼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입법예고 중인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상·하차 분류작업에 고정으로 하는 일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조업사 등을 통해 단기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며 “택배물량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직종이다 보니 일손 구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등에 따르면 2020년 총 택배물량은 33억7000만개로 2019년 27억9000만개에 비해 20.9%나 늘어나는 등 코로나 시대와 맞물려 갈수록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
그는 “아무래도 물동량이 대폭 늘어나는 명절 등 특수기에는 분류인력이 추가 투입될 수밖에 없는데, 동료 취업이 허용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취업을 허용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각 현장에 필요한 인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게끔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이 개정되더라도 서비스업으로 분류되는 물류터미널 사업장별 외국인 고용허용인원은 내국인 피보험자 수가 21명 이상을 충족할 때, 최대 10명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이를 현장사정에 맞게 대폭적으로 상향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외국인에 고통 전가” vs “고용난 해소” 찬반 팽팽
이처럼 업계에서는 법개정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반면 노동사회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 목소리로 ‘위험의 이주화’는 용납될 수 없으며 노동환경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은 “택배기업들이 택배 상하차 업무의 저임금, 고강도 노동, 야간노동 등 전반적인 노동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은 채 손쉽게 이주노동자를 활용하려 한다”며 비판했다.
코로나 시기에 택배업의 호황으로 막대한 이윤을 취한 택배 대기업들이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에 투자해 근로자가 인간답게 일할 수 있게 책임을 지는 것이 우선이지만, 적게 투자하고 이주노동자를 희생시켜서 많은 이윤을 남기고자 한다며, 이같은 행동을 즉각 멈춰야 한다고 규탄했다.
건강한노동세상·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사단법인 김용균재단·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일과건강·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새움터·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등도 공동성명을 통해 “이주노동자에게 위험을 전가하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10월 장철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상하차 노동자를 대상을 진행한 택배물류센터 노동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7.7%가 일하던 중 다친 경험이 있고 38.5%가 업무상 상해로 병원 진료를 받았다는 것.
이들 단체는 인력난에 시달리는 상·하차 업무에 이주노동자 고용을 허용하는 건 이를 오래전부터 요구해왔던 택배업계의 잇속을 채워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외면한다면 그만큼 일터의 질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국택배노동조합도 “현재 택배사들이 물류터미널 상하차 작업의 근로조건 개선에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지 않고 있다”며 이주노동자 허용보다 노동조건이 바뀌는 것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민주노총도 “적정한 노동력의 투입과 노동환경·처우에 대한 개선은 사라지고 고위험·저임금 현장에 실효성마저 의심스러운 동포 외국인을 고용해 해결하겠다는 정부 당국과 택배, 물류 자본의 저열한 인식에 분노가 인다”고 논평했다.
특히 택배사들이 인원을 더 투입하고 작업환경 개선 및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면 인력난에 허덕일 이유가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이처럼 노동계가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시행령 개정 추이가 예의주시 되고 있다.
택배업계 한 관계자는 “첨단화된 자동화물류시스템 속에서도 상·하차 업무는 아직까지 사람이 할 수밖에 없다”며 “현장에서 안전과 관련된 설비·장비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등 작업환경 개선 노력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장기적인 관점에서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CNB=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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