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규제 강화한 금소법 시행되지만
여전히 피해 입증 책임은 소비자의 몫
논란 일자 시행되기도 전에 개정안 등장
시민단체 “피해소비자 보호가 우선돼야”
코로나19 사태로 서민경제가 나락으로 치달으면서 ‘민생입법’을 내건 21대 국회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 특히 과반 의석 이상을 점유한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공정경제 3법’을 통과시키는 등 규제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CNB는 주요 기업정책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금융소비자 피해 발생시 입증책임을 둘러싼 논란이다. <편집자주>
지난해 3월 5일 약 8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금소법)’이 제정돼 오는 3월 25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금소법에서는 개별업법에서 일부 한정해 적용하고 있는 6대 판매원칙을 모든 금융상품으로 확대했다.
금융상품의 6대 판매원칙은 ▲적합성 원칙 ▲적정성 원칙 ▲설명의무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 등이다. 이중 설명의무, 불공정영업행위,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 등을 위반할 경우 관련 수입 등의 50%까지 과징금이 부과된다.
또한 설명의무,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광고규제 위반 시에는 1억원 이하 과태료, 적합성‧적정성 원칙 미준수 등은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매겨진다.
금소법이 탄생하게 된 건 금융소비자와 금융회사 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화되면서, 금융사에 비해 전문성과 교섭력이 열위에 있는 소비자 피해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상품 ‘어물쩍 설명’ 제동 걸었지만…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9년 접수된 금융민원은 총 8만2209건으로 은행의 경우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불완전판매, 라임펀드 환매중단 등과 관련된 민원(전년 대비 7.4%↑)이 크게 늘었다.
이에 금융당국은 DLF 및 라임 사태 관련,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하나은행장 겸임)을 문책경고(상당) 한 것을 비롯, 신한금융투자, 대신증권, KB증권 등 여러 금융기관의 임직원 수십명을 정직, 감봉, 견책했으며, 이중 일부는 검찰로 넘겼다.
금융당국은 금소법 제정을 통해 앞으로 소비자 권익신장 뿐만 아니라 금융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 제고 차원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법이 본격 집행되기도 전에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왜일까. 일단 금소법에서는 과징금·과태료 외에도 금융상품판매업자 등이 고의·과실로 이 법을 위반해 금융소비자에게 피해를 발생시킨 경우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함정이 있다. 손해를 입은 피해자(소비자)가 입증책임을 지고 있는 것. 금융상품의 복잡성 및 전문성과 대부분의 소비자가 금융사업자에 비해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볼 때 소비자가 금융사의 법 위반 사실을 입증하기는 힘들다.
이에 금소법에서는 금융상품 계약 체결을 권유하거나 소비자가 설명을 요청할 경우 상품의 중요사항을 설명해야 한다는 ‘설명의무’ 위반에만 한정해, 손해배상청구 소송 시 고의·과실 입증책임을 금융회사 등으로 전환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미 국회에는 관련법안이 제출돼 있다.
이용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금소법 개정안’은 설명의무 뿐만 아니라 손해배상의 입증책임 전환의 범위를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정당한 사유 없이 금융소비자의 이익을 해치면서 자기가 이익을 얻거나 제3자가 이익을 얻는 것을 금지
▲적합성 원칙: 소비자의 재산상황, 금융상품 취득·처분 경험 등에 비춰 부적합한 금융상품 계약체결의 권유를 금지 ▲적정성 원칙: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구매하려는 금융상품이 소비자의 재산 등에 비춰 부적정할 경우 이를 고지·확인 등의 위반에 까지 확장시켰다.
이 개정안은 2월 임시국회에서 정무위원회에 상정돼 소위에 회부된 상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전재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7월 대표발의해 국회 계류돼 있는 ‘금소법 개정안’은 아예 이 법에 따른 모든 위반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의 입증책임을 금융상품판매업자 등이 지도록 했다.
금융위·금융사·소비자, 주장 제각각
하지만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아 법안 심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이미 지난 20대 국회 때 ‘금소법’ 입법과정에서 고의·과실의 부재는 입증하기 극히 어려운 탓에 금융회사가 사실상 무과실책임을 지게 된다는 반론이 제기됨에 따라, 설명의무 위반으로 손해배상의 입증책임 전환 범위가 축소된 바 있다.
정무위에 따르면 특히 ‘신의성실’ 위반의 경우 금융상품의 6대 판매원칙에 포함되지 않는 영업행위의 일반원칙으로 다소 추상적인 성격을 띈다. 즉, 개별 사건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실천적 의무가 아닌 포괄적·일반적 의무의 입증책임을 전환할 경우 입증이 매우 어려워 금융사에게 사실상 무과실책임이 부과될 가능성이 있다.
업계의 반발도 심각하다. 은행연합회·여신금융협회·손해보험협회 등은 고의·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것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주의의무 불이행을 입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 등으로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금융소비자가 금융거래기록 열람·청취 및 금융당국의 감독·검사 결과 등을 통해 금융사의 고의·과실을 입증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소비자가 증거수집이 어려워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의견을 국회에 전달했다.
무엇보다 소송남발로 인한 금융거래의 안정성 저해 및 금융회사의 응소비용 증가 등의 부작용 발생이 우려된다고 고개를 젓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입증책임 대상행위 확대와 관련해, 신의성실의무 등 선언적 조항까지 포함한 법 위반행위 전부가 아닌 ‘적합성·적정성’ 2개 원칙을 입증책임 전환 대상에 추가하는 것까지만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시각차가 있는 탓에 향후 법안 논의 과정은 지켜볼 일이다.
한편, 금융소비자단체에서는 입증전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CNB에 “손배소를 제기하더라도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소비자 개인이 이를 입증하기가 극히 어렵기에 원고패소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며 “민법상 일반 규범인 ‘신의칙’은 물론 모든 과실 및 고의에 대한 입증책임을 원고(피해자)가 아닌 피고(가해자)에게로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강 사무처장은 이어 “법은 피해를 보전해주는 최후의 보루일 뿐”이라고 전제한 뒤 “그 이전에 금융사로 하여금 압박수단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보호를 염두에 두고 판매영업을 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 소송으로 치닫을 일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 등 선순환적 구조로 변화해 시장의 신뢰성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CNB=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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