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중소건설사 ‘웃고’, 대형사 ‘시큰둥’
고급브랜드 원하는 강남, ‘공공’ 거부감
거래 급감…부동산시장 ‘눈치작전’ 돌입
지난 4일 공개된 변창흠표 주택공급대책을 두고 건설사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LH·SH 등 공기업이 주도해 수도권의 역세권, 준공업지역 등에서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크게 늘린다는 전략이어서 민간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상대적으로 타격을 받게 됐기 때문. 중견·중소 건설사들의 일감이 대폭 늘어나는 반면, 브랜드 인지도를 중심으로 서울 핵심지역 도시정비사업 수주에 집중해온 온 대형 건설사들은 상대적으로 부진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CNB=정의식 기자)
정부 주도 재개발 시대 개막?
지난 4일 정부는 서울 등 도심의 역세권과 준공업지역, 저층주거지의 고밀 개발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부지를 확보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2·4대책’이다.
2·4대책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이 땅을 확보해 주도적으로 개발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토지주와 민간기업, 지자체 등이 LH나 SH 등에 사업을 제안하면 국토부와 지자체 검토를 거쳐 예정지구로 지정하고, 예정지구 지정 1년 내 토지주 등의 3분의 2가 동의하면 사업이 확정된다.
각종 인허가를 단축시키는 ‘패스트트랙’이 적용돼 평균 13년 걸리던 재건축 기간이 5년으로 단축되며, 토지 소유자는 장래 부담할 신축 아파트나 상가 값을 기존 보유 자산으로 현물선납한 후 정산하게 된다. 이 경우 양도소득세가 비과세된다. 이들 지역에는 법적 상한의 최대 140%까지 용적률을 높여주고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해 각종 도시규제도 완화된다.
정부는 토지 소유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이들에게 기존 자체 사업 대비 10~30%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고 아파트와 상가 우선 공급권도 준다. 토지주에게 보장한 추가수익 외 개발 이익은 공공이 환수한다. 이익공유형 주택 마련 비용에 쓰거나 세입자·영세상인의 이주 및 생계지원, 지역사회 생활 SOC 확충 등에 활용된다.
전체 주택 공급물량의 70~80%는 공공분양으로 공급하고 환매조건부·토지임대부·지분적립형 등 공공자가주택, 공공임대는 20~30% 범위에서 공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기부채납으로 받는 주택을 공공임대 위주로만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 도심 개발을 통해 확보하는 주택을 분양 아파트 위주로 공급한다는 취지다.
강남과 강북, 엇갈린 반응
기존의 주택공급정책과 결이 많이 다른 2·4대책을 두고 부동산업계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간 재건축·재개발을 선호하는 강남 지역에서는 거부반응이 뚜렷하고, 공공재개발을 추진하던 강북 지역에서는 기대감이 표출되는 등 지역과 상황에 따라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분위기다.
강남권 재건축 대표 단지로 꼽히는 은마·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조합과 주민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은마아파트 한 조합원은 “정부가 재초환 면제 등 인센티브를 많이 준다고 하지만, 대다수 주민은 공공이 직접 시행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며 “이미 사업성이 충분한데 굳이 공공에 맡겨 고급 아파트 이미지를 훼손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구철 도시정비포럼 회장은 “강남권 유망 사업장은 정부 유인책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공공 주도 사업에 대해 반감이 크다”면서 “그 외 중형 단지나 수익성이 좋지 않은 사업장을 중심으로 주민들과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반면, 강북 지역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공공재개발을 추진 중인 서울 성북5구역 모현숙 주민대표는 “우리는 빠른 시간 안에 주거환경 개선을 이루는 게 가장 중요한데, 이번 대책으로 빠른 사업 추진이 가능해지고, 정부가 수익성까지 보장한다고 하니 주민들이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만 2·4대책이 결과적으로 서울 전 지역의 부동산 거래 절벽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토부 홈페이지와 인터넷 포털 부동산 카페 등에는 “아직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 대상지가 한 곳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피해서 집을 사란 말이냐”, “이제 집을 잘못 샀다간 나중에 시세보다 싼 감정평가 가격으로 현금청산 당하는 거 아니냐”, “‘개발 폭탄’을 피해 신축 아파트만 사거나 계속 전세만 살아야 하는 거냐”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실제로 2·4대책 이후 재개발·재건축 예정 지역의 주택 거래는 급감하는 추세다. 정부가 지난 4일 이후 취득한 주택은 추후 해당 지역이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이나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지로 지정되면 현금청산 대상이 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반면, 신축 아파트는 반사 이익을 누리며 풍선 효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내달 입주 예정인 서울 마포구 염리동 마포프레스티지자이 전용면적 59㎡는 지난달 말 16억3000만원까지 거래된 이후 2·4대책 직후 최고 17억원까지 호가가 상승했다.
지방건설사 ‘기회’ vs 대형건설사 ‘계륵’
2·4대책은 건설업계에도 다양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중견건설사에 호재가 되고, 대형건설사에는 별다른 메리트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송유림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형 건설사의 분양 시점 점유율이 확대되는 구간인 만큼 개별 수주 및 분양 현황을 살펴가며 접근할 필요가 있겠으나 이번 대책에 포함된 공공택지를 통한 주택 공급은 중견 건설사에 보다 긍정적인 요인”이라며 “대형 건설사보다는 중견 건설사, 그리고 건자재 업체의 수혜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중견건설사 한 관계자는 “그간 수도권 도시정비사업은 대형건설사만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였다”며, “정부의 구상대로라면 우리같은 지방건설사도 서울 핵심지역 정비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출했다.
반면, 삼성물산·현대건설·GS건설·대우건설·대림산업·HDC현대산업개발·롯데건설·호반건설 등 대형건설사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LH나 SH 등 공기업이 시행을 맡고 건설사는 시공만 맡는 구조라 수익성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형건설사 한 관계자는 “그간 추진해온 도시정비사업의 경우 당사의 브랜드 가치와 시공능력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가 사업 성패의 핵심이었다”며 “이번 2·4대책에 따른 공공직접시행 정비사업의 경우 정부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사업 규모나 용적률, 예상 수익 등이 기존 사업과 차이가 커서 쉽게 참여를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CNB=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