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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정책 핫이슈⑯] 복수의결권이 세습의결권? ‘동전의 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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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이성호기자 |  2021.02.11 11:07:15

벤처기업에 한해 ‘1주 2의결권’ 부여
총수 자녀가 벤처 창업해 악용할수도
재벌 특혜 vs 벤처 보호…찬반 ‘팽팽’

 

 

류호정 의원(정의당)·경제민주주의21·경실련·금융정의연대·민주노총·한국노총·한국YMCA전국연맹이 지난 2일 국회 분수대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재벌 세습을 제도화시키는 복수의결권 허용 법안을 당장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사진=경실련)


코로나19 사태로 서민경제가 나락으로 치달으면서 ‘민생입법’을 내건 21대 국회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 특히 과반 의석 이상을 점유한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공정경제 3법’을 통과시키는 등 규제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CNB는 주요 기업정책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복수의결권’ 논란이다. <편집자주>
 


 

복수의결권(차등의결권)이란 1주에 복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상법의 ‘1주 1의결권’에 예외를 두는 것으로 ‘주주평등의 원칙’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반면, 외국은 사정이 다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에 따르면 OECD 36개국 중 17개국이 차등의결권주식을 도입하고 있다.

또 유럽 300대 상장기업 중 약 20%가 이 제도를 적용하고 있고, 벤처창업 붐이 일어나는 아시아 국가들도 2018년 이후 적극 허용하고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하고 자금조달을 원활히 해주는 등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에서도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 경제계를 중심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간섭 및 경영권 위협에 대한 방어책이 전무하기에 복수의결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지난 2003년 소버린의 SK에 대한 경영참여 시도, 2006년 칼 아이칸과 KT&G의 지분 경쟁, 2007년 삼성전자와 포스코에 대한 적대적 M&A 위험설, 2015년 엘리엇의 삼성물산 합병 관련 지분 대립 그리고 엘리엇의 현대차그룹 구조개편 개입 사례와 국내 사모펀드 KCGI의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대한 경영 참여 선언 등이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이번 국회에도 모든 주식회사가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토록 한 3건의 상법 개정법률안(권성동, 추경호, 김용판 의원 각각 대표발의)이 제출돼 있다. 하지만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커다란 우려를 뛰어넘지 못해, 지난 20대 국회에서와 마찬가지로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진 않고 있다.

 

경영권 보호책으로 복수의결권 도입이 대두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벤처 육성 위해 불가피” 여권서 강력 추진



이런 와중에 새로운 카드가 등장했다. 전체 기업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상장 벤처기업에게만 풀어줘 부작용 부담을 줄이고 이들의 육성에 초점을 맞추는 안이다.

정부·여당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벤처기업법, 정부제출)’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에 올라와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상법의 특별법적인 내용으로 비상장 벤처기업의 창업주가 대규모 투자유치로 인해 최대주주 지위를 상실하는 등의 경우 1주당 의결권 10개 한도의 복수의결권주식 발행(최대 10년 이내에서 존속기간)을 허용함이 골자다.

1주 1의결권의 원칙 하에서 자금조달의 방법으로 주식을 추가로 발행하는 경우 지분율이 희석돼 창업자의 경영권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자금력이 약한 벤처기업이 경영권 위협 없이 외부자금의 용이한 조달을 가능케 한다는 것.

특히, 남용방지 장치도 달았는데 창업주가 복수의결권주식을 상속·양도하거나 이사의 직을 상실하는 등의 경우에는 복수의결권주식이 보통주식으로 전환되도록 했다. 또 소수주주와 채권자 보호 등을 위해 이사의 보수,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의 감면, 감사의 선임 및 해임, 이익배당에 관한 사항 등을 결의 시 복수의결권주식도 1주마다 1개의 의결권만 가지도록 규정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혁신적 벤처기업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대규모 투자를 받아 거대신생기업(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여당이 그리는 그림이다.

일자리와 기업가치 측면에서 벤처기업이 경제의 중심축이자 버팀목이 됐다는 판단으로 스케일업(Scale-up)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상반기 3만7000개 벤처기업의 고용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일자리 개수는 66만7000여명으로 삼성·현대·LG·SK 등 4대 대기업의 근로자 수 69만여 명에 버금가는 수치로 집계됐다.

시총 상위 20위권 내에 벤처기업은 13개사로 늘어나는 등 업계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복수의결권으로 보다 안정적인 경영권을 기반으로 대규모 투자유치를 꾀해 유니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한다는 얘기다.

복수의결권을 도입할 경우 연구개발투자가 활성화돼 벤처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중소기업연구원의 ‘복수의결권제도 도입이 벤처기업 연구개발투자에 미칠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벤처기업 대주주 지분율이 30~50%인 구간에서 추가적인 지분율 1%포인트 상승은 벤처기업 연구개발투자액을 최대 540만원(39%→40% 변화시)까지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기업데이터(KED)의 1만4179개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일반화성향점수매칭(Generalized Propensity Score Matching) 방법을 통해 분석한 결과다.

당사자인 벤처기업협회 등에서는 응당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는 이 개정안은 정부의 강력한 추진력과 거대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실현시키겠다고 공헌한 만큼 통과 가능성은 매우 높은 상태다.

정부제출안 외에도 앞서 이영 의원(국민의힘)과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각각 대표발의한 복수의결권 발행을 담은 ‘벤처기업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어서 병합 심사될 예정이다.

 

‘벤처기업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의 복수의결권주식 발행기업과 절차. (자료=국회입법조사처)

 


“벤처 앞세워 그룹 지배 우려” 시민단체 반발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국회입법조사처·산자위 등에 따르면,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하는 벤처기업에게는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 등 모험자본이 오히려 투자를 꺼리게 돼 신규투자가 위축되고 장기적으로는 자금조달이 어려울 수 있다.

벤처캐피탈이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가장 큰 유인은 지분투자를 통한 자금 회수에 있는데 이때 경영권 배분의 경우 지분투자 계약을 통해 합의가 이뤄지게 된다. 하지만 창업자가 가진 경영권에 대한 보장 강화는 벤처캐피탈의 주주로서의 지위 약화를 의미하므로, 투자회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무능력한 경영진까지 과도하게 보호해 경영권의 이동을 어렵게 함으로써 기업인수합병(M&A)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미 현행 법규 하에서도 ‘주주 간 계약(shareholders’ agreement, SHA)’을 통해 창업자의 경영권 보장과 소수주주의 권환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

또한 벤처창업 활성화가 더딘 이유가 창업자의 경영권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라기보다 공정한 경쟁기회와 혁신 유인이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따라서 기술혁신 결과물의 탈취, 친인척 또는 가신 기업과의 불공정한 거래행태를 우선 근절하는 보호장치가 강화가 우선이라는 의견이 있다.

주주평등의 원칙을 어기고 벤처기업 창업자에게 복수의결권주식을 부여하는 것은 소수주주의 권리를 해치는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경제민주주의21·경실련·금융정의연대·참여연대·한국YMCA전국연맹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복수의결권은 세습의결권”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철회를 촉구하는 이유다.

가령 재벌 4세 등이 벤처기업들을 창업, 이 비상장 벤처기업들이 복수의결권을 발행한 후에 재벌의 지주사나 대표회사의 지분을 이 벤처기업의 보통주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지주회사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 사실상 증여·상속세 한 푼 납부하지 않고 세습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우려다.

재벌 총수들은 소수의 지분으로 계열사 간 출자를 이용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데, 2020년 5월 기준 공시대상 55개 기업집단 재벌총수일가들은 평균 3.6%의 지분율로 57%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복수의결권 허용은 장기적으로 재벌 세습의 제도화를 초래한다는 것이 시민사회단체들의 주장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CNB에 “안전장치라고 하는 10년 이후에 보통주로 전환하는 조항 등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일축하며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것은 재벌 세습을 위한 사전작업일 뿐”이라고 맹비판했다.

10년 일몰규정은 재벌 후계자가 또 다시 새로운 벤처기업을 만들어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하고 양 벤처기업을 합병하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앞서 은산분리 완화와 범죄자도 은행소유가 가능한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 일반지주회사도 CVC(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여러 친재벌법을 통과시킨데 이어 이번 2월 임시국회서는 복수의결권까지 추진한다고 하는데 시민사회단체 및 노동단체와 연대해 기필코 막아내겠다”고 강조했다.

복수의결권이 벤처기업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해서 기업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장점과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권한집중으로 사익추구 위험 및 소수주주의 권리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단점이 극렬하게 충돌하고 있는 가운데 매듭이 어떻게 지어질지 뜨거운 시선은 국회로 향하고 있다.

(CNB=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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