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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문학⑦] 배달의민족, ‘먹거리 詩’에 삶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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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손정호기자 |  2020.11.30 12:19:27

“가장 낮은 곳에서 고생했을 당신, 누룽지”
음식에 삶을 담아 아포리즘 시(詩)로 승화
먹는 즐거움에 읽는 감동… ‘소확행’ 선물

 

우아한형제들에서 운영하는 배달의민족은 ‘배민 신춘문예’를 해왔다. 음식을 주제로 한 짧은 시를 뽑아 상을 준다. ‘배민 신춘문예’ 사이트 메인 모습. (사진=해당 페이지 캡처)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집콕’이 대세가 된 요즘, 문학은 메마른 삶에 위로가 된다. 이에 CNB가 ‘문학’을 ‘경영’에 담고 있는 기업들을 만나고 있다. 이번 편은 ‘아포리즘’ 시(詩)로 지친 일상을 위로하고 있는 배달의민족이다. (CNB=손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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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힘내세요. 우리고 있잖아요. 사골국물.”

이 짧은 시는 배달의민족의 ‘배민 신춘문예’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노래 가사를 유머러스하게 바꿔 감동을 준다.

우아한형제들에서 운영하는 배달의민족은 ‘우리는 모두 시인이다’는 슬로건을 걸고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번에 걸쳐 ‘배민 신춘문예’를 열었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보류됐다.

배민 신춘문예는 아포리즘(인생의 지혜를 짧게 표현한 경구를 의미함) 시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한 문장으로 이뤄진 시들이 상을 받았다. “박수 칠 때 떠놔라. 회”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 “산해진미 갖다 놔도 엄마가 해주시는 집밥보다 맛있는 건 없네요. 우리 집은 치킨집” 등이다.

이보다 긴 오행시, 사행시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스파게티의 경우,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 느낄 때 / 파도에 밀려온 미역떼기 하나도 / 게에게는 마지막 이유일 수 있다 / 티 안나는 인생도 훌륭한 인생이다”라는 사행시로 재탄생했다.

치즈피자는 “치킨을 먹으러 가실 때에는 사뿐히 /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 피자도 먹으러 가실 때에는 / 자다가도 그대 따라가리다”라는 짧은 시가 되었다.

 

‘배민 신춘문예’ 당선작 중에는 스파게티, 치즈피자를 제목으로 4행시를 지은 것도 있다. 교보문고특별상을 받은 작품은 누룽지를 주요 소재로 활용했다.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의 사옥 모습. (사진=손정호 기자)

작년에는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입선 외에도 ‘교보문고 특별상(교보문고 측에서 추천한 심사위원이 뽑은 상)’을 만들어 문학성이 뛰어난 아포리즘 시를 선정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고생했을 당신, 누룽지”가 이 상을 받았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처럼 짧지만 울림이 크다.

공모전은 배달의민족을 이용하는 유저,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참여해 즐기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누적 응모작은 약57만편이며, 작년에만 25만편이 참여해 입상 경쟁률이 5500대 1에 달했다.

배달의민족 관계자는 CNB에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SNS 단편 시를 모티브로 하고 매년 열리는 신춘문예를 패러디하고자 했다”며 “‘풋!’하게 웃기거나 ‘아’ 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선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민이 이처럼 ‘짧은 시’를 확산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음식을 배달시키는 젊은 소비자들과 친근해지기 위해서다. 배민은 소비자들이 인근 식당의 음식을 주문하면 라이더스(배송 업무를 하는 직원)가 전달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수익구조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아포리즘의 주제가 ‘먹거리’에 맞춰져 있다.

 

‘배민 신춘문예’의 작품들은 짧은 아포리즘 시로, 스마트폰에서 작성해 편하게 읽기 쉽다. 재미에 포인트를 두어서 음식 배달을 하는 배달의민족 이미지에 잘 어울린다. 배민 라이더스 센터, 연남동 맛집 음식을 배달의민족을 통해 주문해 먹을 수 있다는 플랜카드 모습. (사진=손정호 기자)

짧은 시는 스마트폰에서 읽기 좋다는 점도 아포리즘의 이유가 된다. 퇴근길 만원버스·지하철에서 앱으로 먹거리를 주문한 뒤, 배민 신춘문예 사이트에 들러 ‘먹거리 시’를 읽는다면 잠시 뒤 먹을 음식의 맛을 더해주는 ‘금상첨화’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배민 신춘문예’에 아쉬운 점도 있다. 음식을 주제로 유머에 방점을 두다 보니 삶에 대한 진중함이 부족해 보인다. 고단한 삶이 ‘농담’처럼 읽힐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퇴근후 ‘집콕 혼술’을 기대하는 평범한 직장인에게 배민의 시들은 그 자체가 위로다. 기다리고 읽고 먹는 즐거움이, 메마른 코로나 시대에 최고의 ‘소확행’이 됐기 때문이다.

(CNB=손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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