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위원 선출 때 의결권 3%로 제한
우회로 봉쇄…편법선출 원천적 불가능
외국투기자본도 똑같이 3% 권한 가져
세력들 ‘연합작전’ 펼치면 경영권 흔들
시민단체들 “과도한 공포심 부풀리기”
코로나19 사태로 서민경제가 나락으로 치달으면서 ‘민생입법’을 내건 21대 국회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 특히 과반 의석 이상을 점유한 더불어민주당이 ‘공정경제 3법’ 등을 밀어붙이면서 잠자고 있던 기업 관련 법안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CNB는 주요 기업정책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재계 최대 이슈로 떠오른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둘러싼 논란이다. <편집자주>
“일방통행식 경제 입법에 반대한다”
정부·여당이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가운데 경제계의 반발이 심각하다. 특히 상법 개정안에 포함된 ‘감사위원 분리선출’에 대해서는 일고의 여지도 없다는 분위기다. 이유가 뭘까.
일단 현행 상법에서는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상장회사에 강제적으로 감사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다. 3명 이상의 이사로 구성되며 사외이사가 위원의 3분의 2 이상이어야 한다.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 2조원 미만의 상장회사의 경우 상근 감사 1명 이상을 두거나 감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핵심은 의결권 ‘3%룰’이다. 주주총회에서 감사를 선임할 때는 대주주의 의결권을 3%(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합산 3%)로 묶어 놨다. 그 밖의 주주 역시 개별 3%로 제한된다. 이는 대주주로부터 감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감사위원회를 설치할 경우 이 같은 룰을 손쉽게 우회할 수 있다. 주총에서 3%룰을 적용받지 않고 의결권 제한이 없는 이사를 먼저 뽑은 후 이 중에서 감사위원을 골라 맡기는 일괄선임 방식이 성행한다. 이는 대주주의 의사에 부합하는 이사가 감사위원으로 선출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대기업집단의 67개 계열사 중 이해관계가 있는 감사의 비중은 43%로 나타났다.
여기서 이해관계란 ▲계열사 임직원 출신 ▲전략적 제휴 또는 거래관계 ▲소송대리 또는 법률자문 기관 피용자 ▲민영화된 공기업의 정부부처 출신 또는 구조조정 기업의 채권금융기관 출신 및 학연 등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주주의 전횡을 방지해야 할 감사의 독립성 훼손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무부는 국회에 기제출한 ‘상법 개정안’에서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1인 이상)를 이사 선출 단계에서부터 다른 이사들과 따로 뽑도록 ‘감사위원 분리선임’을 포함시켜 대주주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했다. 이 부분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외부세력 방어할 최후 보루 사라져”
이에 대해 재계는 극도로 불편한 기색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에서는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감사위원을 뽑을 때 3%룰을 철저하게 적용받기 때문이다.
감사위원은 감사 역할도 하지만 기업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리선출을 하면 오너 일가(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3% 이내로 쪼그라들게 된다.
반면, 오너 일가 외의 대주주들은 각자 최대 3%씩 의결권을 갖게 돼 감사위원 후보를 주주제안하고, 이사회에도 진출할 수 있다. 이 경우 회사 지분을 가진 해외투기자본이 경영권을 흔들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한마디로 경영권을 지키기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재벌 대기업들이 국회에 상정돼있는 여러 기업규제 법안 중에서도 유독 이 부분에 민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경련이 시가총액 상위 30대 기업의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국민연금, 국내기관투자자, 외국기관투자자 지분 현황을 분석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외국계 기관투자자 연합이 시총 30위 기업 중 23개 기업에 감사위원을 진출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23개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LG화학, 현대자동차, 카카오, 삼성SDI, LG생활건강, 현대모비스, SKT, 엔씨소프트, 기아자동차, 포스코, SK, SK이노베이션, LG, LG전자, KT&G, 삼성전기, 아모레퍼시픽, 환화솔루션, 고려아연, 롯데케미칼 등이다.
실제로 2003년 소버린과 SK의 경영권 분쟁 때 소버린 측이 SK 주식 14.99%를 집중 매입한 후 감사위원 선출 시 의결권 제한을 받지 않도록 지분을 5개로 쪼개 각 2.99%씩 보유한 사례도 있어 재계는 좌불안석이다.
또한 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감사위원 분리선출 도입 시 영향을 받는 회사는 총 2000여개 상장사 중 510개사(유가 353개사, 코스닥 157개사, 이 중 75%는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 2조원 미만으로 감사위원회제도를 자율 도입한 383개사)다. 이 회사들은 외부 주주제안 감사위원이 선임될 확률이 현행 대비 최대 11.4배(197개사)나 높았다.
글로벌 작전세력에 개미들 당할 수도
만약 외부세력의 경영권 공격이 시작되면 기업은 자신의 본업은 뒷전으로 하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우호세력 확보에 온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몸값이 높아진 헤지펀드 등은 높은 가격에 주식을 처분할 수 있고, 피해는 개미 주주들의 몫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마디로 ‘글로벌 작전세력’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반발이 커지자 정부·여당은 한발 물러서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합산 3% 제한이 아닌 개별주주별 3% 제한으로 완화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가령, 오너 일가 4명이 각각 5%(총 20%)씩 지분을 갖고 있다고 가정할 경우, 개정안대로라면 감사위원 선출 때 3%만 의결권이 주어지지만, ‘개별 3%’로 완화되면 12%(3%×4명)까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 정무위원회 간사)이 대표발의해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장회사법 제정안’과 맥을 같이 한다. 이 제정안은 최대주주 측이든 일반주주 측이든 가리지 않고 ‘합산 3%룰’이 아닌 ‘단순 3%룰’(개개 주주별로 최대 3%만큼의 의결권 인정)을 적용토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재계에서는 탐탁지 않게 보고 있다. 개별 3%룰 역시 현행 대비 주주제안 후보 선임 가능성이 4.6배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는 것이다.
감사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있는 대기업 한 관계자는 CNB에 “기업 방어력이 탄탄하면 분리선출로 진입한 사외이사 한 명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이와 반대이거나 목적에 따라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 역시 상존하고 있다”고 조심스레 전했다.
한편,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합산 3%가 아닌 개별 3%로 후퇴한다는 안은 사실상 재벌 총수일가 전체 지분의 의결권 부분을 보장할 것임을 의미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의 도입취지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재계가 제기하는 외국 투기자본 공격에 의한 경영권 상실 주장은 재벌의 기득권 유지와 개혁법안 좌초를 위한 ‘공포심 부풀리기’라고 지적한다.
이처럼 찬·반이 팽팽히 엇갈리는 가운데 국회에서는 본격적인 법 개정 심사에 돌입할 예정이다. 개정안에 대해 일부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던 야당인 국민의힘은 아직 명확한 입장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다.
(CNB=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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