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서민경제가 나락으로 치달으면서 민생입법 완수를 내건 21대 국회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 특히 경제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건 더불어민주당이 거대여당으로 출범한 만큼, 잠자고 있던 기업 관련 법안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CNB는 주요 기업정책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착오송금 피해구제 논란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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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송금한 돈’ 은행금고에 쌓여
함부로 인출하면 ‘횡령죄’ 될 수도
예보, 사후정산으로 구제 나섰지만
“개인사에 재정 투입 반대” 주장도
착오송금으로 인한 금융소비자 피해가 늘고 있다.
착오송금이란 인터넷뱅킹,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금융거래가 증가함에 따라 송금인의 착오로 수취인의 계좌번호, 수취금융회사, 송금액 등이 잘못 입력돼 이체되는 것을 말한다.
국회 정무위원회 및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인터넷·모바일뱅킹을 이용한 송금거래는 2015년 약 30억건에서 2019년 약 52억건으로 대폭 늘었다.
이용량이 급증하다보니 실수도 잦아지는데 인터넷·모바일뱅킹을 통해 잘못 이체한 건은 2017년 9.3만건에서 2019년 14만건(CD/ATM, 영업점 창구 포함 전체 건수는 15만8138건)으로 50.3% 증가했고, 금액으로 보면 2017년 2185억원에서 2019년에는 무려 2658억원에 달했다.
문제는 착오송금 피해액 중 주인에게 되돌아오는 금액이 절반가량에 그치고 있다는 것. 지난해 KB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하나은행·NH농협은행·IBK기업은행·SC제일은행·Sh수협은행·한국씨티은행·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 등에서 신고된 15만8138건의 착오송금 중 절반가량인 52.1%인 8.2만건이 반환되지 않고 있으며, 특히 간편송금(토스, 카카오페이)의 경우 미반환율이 70% 이상이었다.
잘못 돈을 보냈더라도 다시 돌려받으면 되는 문제지만, 실제론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소비자, “발만 동동”
왜일까. 일단 착오송금으로 인한 송금액은 민사상 부당이득으로 간주돼 이를 인출하거나 소비한 행위는 횡령죄에 해당된다. 즉, 원주인에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이미 송금된 상태에서 회수하려면 수취인의 동의가 전적으로 필요하며, 이 때문에 은행에서는 법적으로 착오송금을 임의로 인출해 반환할 권한이 없다.
수취인이 자발적으로 돌려주지 않거나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 수취계좌가 휴면상태거나 압류계좌인 경우 등은 속수무책이다.
유일한 방법은 소송(부당이득반환청구)을 거는 것인데 복잡한 절차의 소를 제기한다는 것은 비용은 물론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는 일이다. 더군다나 전체 착오송금 건수의 약 50%가 30만원 이하의 소액인 경우가 많아 자의반 타의반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에 착오송금을 단순히 개인의 실수로 치부하지 말고 금융산업 구조변화에 따른 소비자보호 차원에서 적극적인 구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금융당국은 이미 2년 전에 ‘착오송금 구제방안’이라며 해법을 제시한 상태다. 착오송금 관련 채권을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가 매입해 송금인의 피해를 신속히 구제하고 이후 착오송금 수취인을 상대로 소송 등을 통해 회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안은 여태 탁상공론에만 머물고 있다. 이유인 즉, 이 같은 방안이 실행되려면 ‘예금자보호법’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회를 거쳐야 하는데 반발 의견이 만만치 않다.
가장 큰 쟁점은 ‘왜 개인의 과실을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줘야 하느냐’다. 국회 정무위에서는 착오송금액의 반환채권은 ‘민법’상 부당이득반환으로 민사법 영역에서 다뤄져야지, 이를 다른 채권에 비해 특별히 취급해 국가가 개입한다는 것은 원칙에 반한다는 반론이 나왔다.
또, 피해구제 재원과 관련해 정부 재정 및 금융회사의 비용 투입도 적절한 지도 논란이 됐다. 결국 지난 20대 국회에서 이 법안은 진전 없이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수년간 논란…이번엔 종지부 찍나
현 21대 국회에서는 사정이 달라졌을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예보의 업무에 착오송금 반환지원 업무를 추가한 ‘예금자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김병욱·양경숙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하면서 재추진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무소속 양정숙 의원도 개정안을 냈고, 심지어 정무위 야당 간사인 성일종 의원(국민의힘)도 금융소비자보호를 꾀해야 한다며 착오송금 피해구제법을 기제출한 상황이다. 이 법안들은 현재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돼 있는데, 20대 국회에서 피해금액을 선지급할 경우 재원 마련이 발목을 잡자 이번에는 정부의 재정(국민의 세금)이나 금융사의 비용 출연 없는 사후정산 방식에 무게추가 기울어지고 있다.
예보가 먼저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착오송금인과 채권양수도계약을 체결하고 소송 등 반환절차를 통해 회수한 착오송금액에서 제반 비용을 차감해 송금자에게 돌려준다는 얘기다.
예보는 착오송금인이 직접 소송절차를 진행할 경우 소액심판(3000만원 이하)기준 소 제기부터 승소 시까지 최소 6개월(사실조회 2개월+본안소송 4개월 이상)이 소요되나, 제도 도입 시 지원 신청 건의 대부분(95%)이 자진반환 또는 지급명령 단계에서 회수(2개월 이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 채권회수를 위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점을 감안하면 소송 절차 진행시에도 승소판결 후 회수 시까지 걸리는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소송대리 문제가 있다. 민사소송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고, 무엇보다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채권추심법)’에서는 변호사가 아닌 채권추심자는 채권추심과 관련한 소송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단 예보는 채권 추심에 관련된 기능이 없지만 법률 검토를 통해 소송대리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사후에 정산하지만 예보가 대신해서 받아 주고 나중에 준다는 행위는 확약돼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문제 외에도 지난 20대 국회에서 제기됐던 여러 쟁점사안들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고 있어, 여·야가 착오송금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일정 부문 공감하고 있음에도 법안 심의 과정이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성일종 의원실 관계자는 CNB에 “착오송금 피해구제와 관련해 개인의 실수를 왜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냐는 등 꾸준히 제기돼 온 논란들이 다시 불거지고 있어 향후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계속해서 논의키로 한 상태”라고 전했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