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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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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이성호기자 |  2020.09.24 14:30:52

(사진=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캡쳐)

2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지인으로부터 아르바이트 제안이 들어왔다. 일할 곳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신축 공사장이었다. 집에서 출·퇴근하기 어려운 먼 지역이라 현장에서 숙식을 해결해야만 했다.

비어 있는 아파트 세대 한 곳을 임시 숙소로 정해 차가운 시멘트 위에 스티로폼을 깔고 자야만 했지만 가방을 싸서 바로 내려간 이유는 수당이 타 알바에 비해 두둑했던 탓이다. 주어진 업무는 각 세대별 바닥 보일러 배관 위에 시멘트를 붓기 전 철망을 펼쳐 까는 작업이었는데 처음 해보는 일이라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가 났다. 작업 도중 철망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붕 떠서 날카로운 철에 오른 다리가 길게 베었다.

급히 수건으로 다친 부위를 감싸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잠시 후 달려온 현장 관계자는 ‘무사고 000일’인데 이런 일이 벌어져 난감하다며 기록을 깰 순 없다고 했다.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개인 사비로 병원비를 해결하겠다며 생색을 냈다. 일하다가 다쳤는데 사람이 우선이기보다는 오히려 책망하는 분위기였고, 건설현장과 회사가 데미지를 입지는 않을지가 더 걱정이었다.

이러한 태도에 분노가 일었으나 일을 시켜준 지인이 이 현장에서 하청을 받는 ‘을’의 처지라 그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넘어가 주길 바랬던 것 같다. 결국 일을 관두고 집에 돌아와 근처 병원에서 후속 치료를 받았다.

지인이 연락해 병원비를 대주겠다고 했지만 일체 받지 않았다. 아파트 건설사가 쉬쉬하며 덮은 것을 지인의 주머니에서 받을 수 없었고 그때는 괜히 지인한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론 부주의해서 다친 과실도 있겠지만 전적으로 개인 탓으로 몰아가서는 안 될 일이다. 위험한 현장에서 일을 시키면서 보호장구나 안전교육 없이 시간 대비 작업량에만 신경 쓴 건설사에게는 분명히 책임이 있다 하겠다.

노동자 보호를 위한 철저한 안전제반 장치가 갖춰져야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 더 크게 다쳤을 경우 어찌 처리됐을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아직도 필자의 다리에는 그때의 흉터가 남아 길게 그어져 있다.

현재로 시간을 돌려보자. 노동자의 생명·안전보호 사정은 나아졌을까. 언급한 사례는 약과다. 무수한 노동자들이 건설·산업현장에서 다치거나 심지어 사망에 이르고 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재해자 수는 10만9242명,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무려 2020명이다. 특히 지난 10일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숨진 석탄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와 계약한 특수고용 화물노동자가 또 다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산업재해 중 사망 등 재해 정도가 심각한 ‘중대재해’는 단순한 개인의 실수에 의한 사고로 볼 순 없다. 생명안전에 대한 위험을 철저하게 예방 및 관리하지 않은 회사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책임자 처벌은 극히 미약한 수준이다. 안전관리 책임이 기업의 경영책임자가 아닌 하위 직급의 종사자에게 분산돼, 말단 관리자에게 가벼운 형사처벌을 내리는 것으로 미봉돼 버린다. 즉, 현행법상 재해가 발생하더라도 경영자를 처벌하기 어렵고, 회사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는데 액수가 고작 400여만원에 불과하다.

하청 등을 통한 위험의 외주화가 곧 산재의 외주화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고 방치되는 사이에 우리의 가장, 부모, 자녀들이 일터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노동자, 국민의 중대재해에 대해 기업의 경영책임자, 원청, 발주처 등 실질적인 책임자를 처벌해서 기업이 법을 지키기고 실질적인 개선을 하도록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요구된다.

이를 통해 다단계 하청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의 중대재해도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원청을 벌해야 한다. 인명사고에 대해 기업과 최고 책임자에게 형사처벌이 강화되면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고 적극적인 안전경영과 재해 예방을 기대할 수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고 노회찬 의원이 제출했지만 불발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최근 국민동의청원에 10만명이 참여, 소관 위원회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에 회부됐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돼야 할 것이다. 국민의 생명이 최우선 되는 나라. 나몰라라 무책임을 책임으로 바로잡아 죽음의 릴레이를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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