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서민경제가 나락으로 치달으면서 민생입법 완수를 내건 21대 국회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 특히 경제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건 더불어민주당이 거대여당으로 출범한 만큼, 잠자고 있던 기업 관련 법안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CNB는 주요 기업정책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의 지방이전 논란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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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옥 “대구로 이전해야 시너지 커져”
금융노조 “서울·지방 편가르는 정치행위”
“선거철마다 등장했던 단골이슈” 지적도
문재인 정부가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을 계승한 시즌2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지방이전 이슈가 재등판했다. 특기할만한 건 이번에 이슈를 들고 나온 것이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야당이라는 것.
윤재옥 의원(국민의힘)은 지난달 기업은행의 본점을 대구광역시에 두도록 하는 ‘중소기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 ‘중소기업은행법’에는 기업은행의 본점을 서울시에 둔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극심한 수도권 집중현상 완화와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이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는 것.
지난해 기준 대구에는 19만1595개의 중소기업이 있어 중소기업비율은 99.95%에 달하며, 중소기업 종사자수도 67만4098명으로 비율로는 93.92%로 전국 8대 특·광역시 중 최고수준이다. 이를 근거로 ‘중소기업 금융지원’이라는 법령 취지에 맞게 기업은행을 이전하자는 것이다.
특히 대구시에는 2014년 말에 이전한 신용보증기금 본점이 위치해 있어 기업은행이 이동할 경우 중소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자금지원이 가능하고, 금융 및 전문컨설팅 제공 등에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는 게 법안 제안사유다.
금융부문을 비롯한 각 부문의 자본과 인프라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이를 완화하기 위한 국가균형발전 방안이 요구돼 그 일환으로 기업은행을 대구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국회 정무위원회 등에 의하면 수도권(서울․인천․경기) 금융․보험업 부문 GRDP(지역내총생산 Gross Regional Domestic Produc: 시·도 단위별 생산, 소비, 물가 등 기초통계를 바탕으로 추계한 해당지역의 부가가치)는 65% 내외 수준으로 집중돼 있다.
앞서 금융공공기관 지방이전은 2014년 9월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예탁결제원이 부산으로 이사했고 같은 해 11월 신용보증기금이 대구로 이전하는 등 부산․대구지역을 대상으로 이뤄진 바 있다.
대체적으로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대해서는 정주여건에 관한 임직원의 불만이나 신규인력 채용의 어려움 등 보완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해당 지역에서는 지방세 수입 증가, 양질의 고용 기회와 인구 증가 등 지역발전 기반이 강화된다는 평가가 있다.
지방이전이 거론되는 국책은행은 기업은행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도 매한가지다. 이미 지난 20대 국회에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본점을 부산시에 두도록 한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한국수출입은행법 개정안(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 대표발의)’이 제출된 바 있다.
김두관 의원(더불어민주당)도 개정안을 올리면서 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 등에 대해 소재지를 서울시에 두도록 하는 규정을 삭제하고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의해 필요한 곳에 본점을 둘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20대 국회 당시 김광수 의원(민주평화당)은 산업은행법·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을 통해 이들 기관의 본점을 전라북도에 두도록 했다.
따라서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이 같은 법안 발의가 줄줄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특히 해당 지역구 의원들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기에 여·야를 떠나 국책은행 모셔오기에 연대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정치 아닌 경제논리로 접근해야”
하지만 국책은행 이전은 신중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정무위에 올라온 의견들을 살펴보면 본점을 이사할 경우 수도권에 집적된 금융기관 및 산업체와의 효율적인 업무협력이 어려워질 수 있다. 서울조차 아직 국제적인 금융중심지로서 위상이 확고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금융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이 금융중심지 정책의 효과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의 측면과 집적을 통한 금융산업의 효율성 제고 측면에서 종합적인 검토 및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본점 이동이 확정된 경우에도 어느 지역으로 옮길 것인지에 관해 각 지역의 특성 및 금융산업 발달 정도, 타 공공기관의 지방이전 계획 등을 고려해야 하는 등 따져야 할 사항이 많다.
이런 사정에서 직접 이해당사자인 국책은행 구성원들은 정치권의 움직임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은 지난 5월 기업은행지부·한국산업은행지부·한국수출입은행지부가 참여한 ‘국책은행 지방이전 저지 TF’를 출범하고 적극적인 대응마련에 나서고 있다.
금융노조는 금융기관을 한곳에 모아 얻는 시너지와 국책은행을 지방에 옮겨 얻는 이익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은 정책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두 사안을 하나로 묶어 논의하는 것은 지방-수도권, 지방-지방을 편 가르는 정치행위로, 지자체장들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국책은행을 유치하기 위해 들썩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대로라면 금융허브 육성에 관한 건강한 토론은 실종되고 국책은행의 이전·잔류 논쟁과 지역 간 유치전만 남을 것이라며 맹비난하고 있는 것.
국제금융허브 경쟁력 지표인 국제금융센터(GFCI) 지수에서 서울과 부산은 2014년 상반기 각각 7위와 27위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33위와 51위로 추락했다. ‘두 개의 금융중심지’ 정책의 오류를 인정하고 수도 서울에 금융업을 집약시켜야 하는 상황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CNB에 “매 선거철마다 단골 공약으로 국책은행 지방이전이 등장하고 현재에도 정치적 논리로 접근되고 있다”며 “명분·실리도 없이 정책적 효과성이 많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정략적으로 자꾸 이슈화가 되는 것에 대해 노조에서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은행 뿐만 아니라 산은과 수은을 포함한 3개 국책은행이 금융노조와 함께 지방이전 반대를 위한 TF 회의를 매주 갖고 있다”며 “대선전 홍보를 꾀하고 특히 토론회를 기획 중으로 국책은행 이전으로 인한 비효율성 등 전문가들과 논의의 장을 가져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찬반이 팽팽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지역구 텃밭 챙기기’라는 비판이 더해지고 있다. 따라서 향후 정부·국회에서 검토 작업이 이뤄진다고 해도 논란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