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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현장] 1층은 무조건 명품? 백화점 ‘층의 법칙’이 깨진다

롯데·신세계·현대百…‘룰 파괴’ 나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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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20.09.10 09:31:40

업계 최초의 ‘층의 반란’으로 평가 받는 영등포구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 리빙관 1층 ‘푸드마켓’.  식품관을 지상으로 올리자 매출도 훌쩍 뛰었다. (사진=선명규 기자)

 

백화점의 층(層)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다. 얼굴이라 할 수 있는 1층과 저층부에 화려한 해외명품이나 화장품, 지하에는 식품관을 배치하는 것이다. 이는 오래된 정형. 하지만 최근 들어 견고했던 ‘층위의 공식’에 균열이 가고 있다. 롯데, 신세계, 현대 등 유통공룡들이 SNS에서 인기 높은 독특한 ‘편의점’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땅 밑에 있던 식품관을 1층으로 올리는 등 파격적인 재배치를 시도하는 것. CNB가 거세게 일고 있는 ‘층의 반란’을 살펴봤다. (CNB=선명규 기자)

신세계가 시작한 ‘층간 이동’ 
명품관 사라진 자리에 식품관
롯데·현대는 ‘젊은 큰손’ 주목
‘MZ’ 겨냥해 한층 통째 리뉴얼
 
 

 


1층엔 화장품 향기 대신 고소한 빵 내음



백화점 1층하면 선뜻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휘황하게 늘어선 명품 브랜드와 즐비한 화장품들이 내뿜는 가공된 향기다. 오래토록 각인된 첫 인상이다.

하지만 고정관념은 영원하지 않다. 지난 3일 오전, 영등포구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 리빙관에 들어서자 갓 구운 빵 냄새가 KF94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출처는 문 옆에서 영업을 막 시작한 베이커리. 어디로 눈을 돌려도 명품은 없고 과일, 해산물, 채소 등이 시선에 들어왔다. 복도를 따라 정육, 일상용품, 건어물 코너 등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신세계가 올해 초 1층에 마련한 이 ‘푸드마켓’은 업계에서 처음 시도한 ‘층의 반란’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전통 구성을 깬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CNB에 “코로나로 어려운 가운데, 전년 동월 대비 올해 7월 매출은 식품관 11.5%, 타임스퀘어점 전체는 15.5%의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기대 이상이란 뜻이다.

이곳과 이웃한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역시 대대적인 변화를 준비 중이다. 오는 연말까지 대규모 리뉴얼을 진행하는데, 신세계와 차이가 있다면 층간 자리이동이 아닌 1층의 새판 짜기이다. 

우선, 편의점과 분식점을 결합한 독특한 형태로 SNS에서 입소문 탄 감성편의점 ‘고잉메리’가 입점한다. 신박한 자체상품으로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이곳에서는 이미 인기 많은 개념만두, 개념볶음밥, 요괴밀크 등과 주류, 수입과자 등을 판매한다.

요즘 젊은 층이 열광하는 문화를 반영한 색다른 매장들도 선보인다. 신발 덕후(마니아), 축구 유니폼 덕후를 겨냥한 매장들이 등장 대기 중이다.

눈에 띄는 건 온라인 웹·앱 기반의 스니커즈 거래소 ‘아웃오브스탁’. 1층에 40여평 규모로 오픈하는 이곳에서는 한정판 스니커즈의 판매를 비롯해 정품·가품 감정, 제품 수선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일정 수량만 출시되어 희소가치 높은 스니커즈와 관련한 다채로운 전시회와 이벤트도 열어 마니아들의 명소로 자리매김한다는 계산이다.

축구팬들의 구미를 당기는 매장도 문 연다. 한정판 풋볼 레플리카(스포츠 선수들이 입는 유니폼의 복제품)를 전문 판매하는 ‘오버더피치’다. 한정판 올드 레플리카를 선보이고 취향에 따라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서비스존을 구성해 수집가와 축구 유니폼을 일상복처럼 입는 이들의 취향을 저격할 예정이다.

 

MZ세대의 옷장을 표방하며 지난 5일 리뉴얼을 마친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2층. 한 층 전체를 모두 온라인 기반의 패션브랜드로 구성했다. (사진=선명규 기자) 
 

한 층을 통째, 그리고 젊게



‘고급’ 또는 ‘식품’이 장식하던 저층부(지하부터 지상 1~2층)의 변화는 ‘젊음’이 이끌고 있다.

드르륵 탁! 드르륵 탁!

지난 3일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신촌점 지하 2층. 매장에서 대학생 김모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스케이트보드를 타자 곧장 나타난 여자친구가 황급히 제지했다. 실내에서 소란피우는 건 당연히 실례라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김씨가 이내 스케이트보드를 들어 올려 보이자 여자친구는 안심한 듯 잡은 손을 놓았다. 바닥엔 쌩쌩 달리는 그림과 함께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타보셔도 됩니다’

현대백화점이 지난달 28일 패션 편집숍을 표방하며 문을 연 ‘피어(PEER)’는 한 마디로 자유롭다. 입점 브랜드들을 나누는 특별한 경계선이 없고 매장에서 스케이트보드를 적당히 타 봐도 되니 분방하다. 한 층을 통째 쓰기 때문에, 탁 트인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도 있다.

익히 입소문 탄 브랜드들이 중심을 이룬다. 해외 3대 스트리트 브랜드로 불리는 팔라스, 수프림, 키스가 대표적. 뮤지션 '딘'이 제작에 참여한 패션 브랜드 '유윌노', 가수 '박재범'의 힙합 레이블 '하이어뮤직'의 패션브랜드인 '블레이즈드'의 상품도 만나볼 수 있다.

현대백화점 측은 “백화점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트렌디한 MD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최신 유행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패션 플랫폼으로 '피어'를 육성해 나갈 계획”이라며 “고객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도 개발해 차별화된 매장으로 가꿔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영등포점 2층 전체를 젊은 층에 초점 맞춘 편집숍 형태로 꾸며 지난 5일 선보였다. 44개 입점 브랜드는 전부 온라인 출신. 무신사, 지그재그, W컨셉이 대표적이다. 아이웨어 편집숍, 뷰티 편집숍, K-POP음반 매장 등이 두루 포진해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색다른 시도이기도 하다. 롯데백화점 측은 “기존 백화점에서 일부 편집매장이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가 팝업 스토어를 비정기적으로 진행한 적은 있지만, 백화점 한 층 모두를 온라인 기반의 패션 브랜드로 구성한 전례는 없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28일 신촌점 유플렉스 지하 2층에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겨냥한 자체 기획 편집숍인 '피어(PEER)'를 열었다. 백화점 한 층 전체를 '플래그십 스토어' 형태로 꾸민 것이 특징이다. 반듯이 선 스케이트보드에 붙은 '타보셔도 됩니다'란 문구가 인상적이다. (사진=선명규 기자)
 

‘문화 비축기지’로 탈바꿈



백화점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1층 주변을 젊게 바꾸려는 노력은 최근 강력한 소비 주체로 떠오른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0년~2004년 출생) 공략에 방점이 찍힌다. 입소문을 빠르게 전파하고 새로운 문화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이들을 흡수해야 백화점도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얻는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롯데백화점 측은 영등포점 리뉴얼과 관련해 “1~2층에 해외명품, 화장품, 잡화 매장 등을 배치하는 전통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MZ세대를 겨냥한 콘텐츠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며 “이들 세대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피어’를 MZ세대에게 ‘오직 이 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선보이는 매장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을 내세운 현대백화점도 마찬가지.

백화점이 가진 고민도 이런 변화를 이끄는 요인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쇼핑방식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한 상황에서 백화점은 올드한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차세대 소비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데, 그 일환으로 매장을 MZ세대가 오래 머물며 노는 ‘문화 비축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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