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많이 바뀌었지만 변화는 계속될 것이다. 코로나19가 일상을 전복하면서 생활, 문화, 경제에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초점은 비대면에 맞춰진다. 사람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산업 전반에 로봇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갈 수 없는 현장을 그대로 옮기는 연결의 기법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사람 간 맞대지 않고 사는 세상은 얼마큼 가까이 왔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CNB가 코로나 시대의 현재를 살피고 앞날을 내다봤다. 4편은 승차한 상태서 모든 걸 해결하는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이야기다. <편집자주>
크라운해태 ‘야외조각전’ 가보니
2.1km 주행하며 신선처럼 관람
롯데·이마트는 차에 물건 건네줘
예약하면 기다림 없이 바로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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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병의 시대, 자동차는 움직이는 기지(基地)다. 호시탐탐 침투를 노리는 바이러스로부터 몸을 지켜주는 방패막이다. 차의 비호를 받으면 못 갈 곳이 없다. 적진을 헤집는 적토마처럼 코로나를 뚫고서 나아갈 수 있다. 차에 탄 채, 어디까지 가서 무엇까지 할 수 있을까?
‘스르르~ 툭!’
지난 2일 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한 장흥자연휴양림. 크라운해태가 열고 있는 야외조각전시회 ‘견문작품전(見生作品展)’ 입구에서 차를 멈추자 기기가 안내책자를 자동으로 뱉어냈다. 두툼한 팸플릿을 주차권 뽑듯이 집어 들고 브레이크 페달에서 천천히 발을 뗐다. 느린 전진 뒤에 전시는 지체 없이 곧장 시작됐다. 수풀, 나무 등을 등지고 조각 작품들이 한쪽 길에 빼곡히 늘어서 있던 것이다.
총 2.1km 길이의 일방통행로에 놓인 작품만 130여점. 운전석에 앉은 채 차창을 렌즈삼아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바라봤다. 반대편엔 울울창창한 산등성이가 장엄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 기백이 전시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바람 맞으며 작품 사이로 정주행
약간 속도를 높여 성큼 나아가면 말간 산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사방이 예술이라 눈이 즐겁고 살갑게 닿는 공기에 금세 기분이 동요됐다. ‘드라이브 스루 관람’의 참맛은 안락함과 쾌적함이 어우러진 ‘신선놀음’으로 축약할 수 있다.
관람 소요시간은 약 30분. 천천히 주행을 이어가면 이 정도 걸린다. 변수가 있다. 중간 중간 마련된 ‘승차조망터’에 차를 대고 경치를 감상하다보면 지연될 수 있다.
‘비대면’에 신경 곤두세울 필요가 없다. 안내책자가 자동 발급되는 것처럼 이 ‘야외 전시장’엔 사람이 없다. 음료, 간식거리 등도 자판기로만 판매한다. 예술작품과 자연경관만이 대면 가능하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은 크라운해태가 3년 전부터 지역민들의 예술적 체험과 조각가 후원을 목적으로 자치단체들과 공동 주최하는 ‘견생조각전’ 참여 작가들의 작품과 서울국제조각페스타 아리랑어워드 수상작들이다. 130여 작가의 세계가 탁 트인 야외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독특하고 생소한 ‘차량 이동형 감상전’의 아이디어는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이 냈다.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을 응원할 방법을 찾는 가운데 나왔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크라운해태 관계자는 CNB에 “이번 전시를 위해 책자 공급 설비도 자체 개발했다”며 “청정 자연 속에서 안심하고 작품을 감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호텔음식까지 ‘승차 판매’
국립국어원은 지난 2015년 드라이브 스루를 ‘승차 구매’, 또는 ‘승차 구매점’으로 순화해 쓰자고 발표한 바 있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물건을 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판매자 입장인 기업에겐 ‘승차 판매’이다. 오래전부터 맥도날드, 스타벅스 같은 패스트푸드점과 커피전문점이 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업종에 상관없이 ‘승차 판매’를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4월 사이, 도심에서 신선한 수산물이 줄지어 차에 타는 광경이 연출됐다. 수협중앙회가 노량진수산시장, 강서공판장, 본사(서울 송파구)에서 광어회 등을 드라이브 스루로 판매한 것이다. 앱이나 전화를 통한 예약, 또는 사전 주문 없이도 부스에서 회를 건네받을 수 있도록 했다.
성과는 컸다. 노량진수산시장의 경우 3월 26일부터 18일 동안 1억2300만원 어치, 강서공판장은 4월 5일부터 닷새 동안 2500만원어치 회를 팔았다.
방문객 줄어든 특급 호텔이 선택한 타개책도 ‘승차 구매’ 방식이다. 파는 것은 먹거리다.
롯데호텔 서울이 지난 3월 업계 최초로 이 방식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양갈비와 랍스터, 단팥빵과 샌드위치 등 호텔 내 레스토랑, 베이커리 등에서 파는 메뉴로 ‘시그니처 박스’(도시락)를 구성해 선보였다. 홈페이지 등을 통해 예약한 시간에 호텔 1층의 픽업존에서 음식을 받아 갈 수 있게 했다.
롯데호텔은 당초 6월말까지로 계획했던 ‘드라이브 스루 서비스’ 기간을 오는 12월 31일까지로 연장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반응이 예상보다 크기 때문이다.
롯데호텔 측은 “코로나19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비즈니스 미팅이나 가족 행사 등 특별한 날을 위한 격식 있는 한 끼 식사로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해당 서비스와 상품을 출시한 이후 도시락 박스의 주문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차(車)에서 해결 ‘대세’
유통사들은 절차 간소화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방문 후 주문, 대기, 수령이 아닌 예약제를 통해 구매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여가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광주점, 대전점에서 자사 모바일 앱을 이용해 결제하고 상품 수령 시간을 설정한 뒤, 해당 점포 발렛파킹 라운지에서 차량에 탑승한 채로 상품을 받을 수 있는 ‘드라이브 픽’을 운영하고 있다.
이마트는 왕십리점에서 드라이브 스루를 운영 중이다. 전화로 주문(5만원 이상)을 한 뒤 약속한 시간에 1층 하역장에서 결제와 함께 물품을 수령하면 된다. 신선 식품도 구매 가능하다.
홈플러스는 금천점, 월드컵점 등 전국 26개 점포에서 ‘드라이브 픽업’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자사 온라인몰에서 주문 시 ‘드라이브 픽업’을 선택하면 전화로 수령 장소를 알려준다. 이후 안내받은 곳에 찾아가 상품을 받는 방식이다. 유통업계의 드라이브 스루는 대면 최소화가 임무인 첩보작전을 방불케 한다.
드라이브 스루의 질주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 유통기업 관계자는 CNB에 “‘승차 구매’에 대한 소비자들의 호응이 예상을 뛰어넘어 적용 상품군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비대면 문화가 익숙해지면서 차량에서 물건을 사거나 공연을 관람하는 것을 더욱 편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며 “‘K방역’으로 불리는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가 창의적이란 호평 속에 세계적 관심을 받았듯이 차를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소비, 또는 문화가 창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