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기자 | 2020.06.23 09:50:46
21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새 국회는 정쟁으로 얼룩진 지난 국회를 반면교사로 삼아 민생입법 완수를 지상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재벌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더불어민주당이 176석의 거대여당으로 출범한 만큼, 잠자고 있던 대기업 규제 법안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에 CNB는 주요 기업정책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한다. 세 번째 주제는 21대 국회에서 재추진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일부 폐지 논란이다. <편집자주>
공정위 권한 검찰로 대폭 이양
시민단체의 ‘고발 남용’우려도
재계, 거대여당 앞에서 한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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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가맹사업법, 대규모유통업법, 대리점법 및 표시광고법 위반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는 경우에만 검찰이 공소제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지난 1980년부터 유지되고 있다. 즉,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만 형사제재가 이뤄지는 것.
공정위의 ‘2019년도 통계연보’에 따르면 연도별 검찰 고발건수는 2016년 57건, 2017년 67건, 2018년 84건, 2019년 82건이며 담합사건으로 인한 고발만 보면 2016년 22건, 2017년 27건, 2018년 44건이었다.
하지만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전속고발권 일부 폐지가 포함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을 추진했지만 무산된 것을 이번에 다시 재등판시킨 것.
사회적 비난이 크고 담합사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성담합(가격담합, 공급 제한, 시장 분할, 입찰담합)에 대해서만 전속고발제를 폐지한다는 내용이 전과 동일하게 그대로 포함됐다. 이는 그동안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소극적으로 행사해 국민·소비자의 권리보호보다는 외려 기업을 감싸고 있다는 일부 지적에 따른 자기반성격 조치로 볼 수 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공정위의 고발의결 없이도 검사의 기소가 가능해 형사재판이 진행될 수 있다.
‘셀프신고’해도 감면 힘들어
그러나 전속고발제가 사라지면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가 무력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업간 담합은 은밀하게 이뤄지기에 인지가 매우 어렵다. 혐의를 발견하더라도 구체적·직접적 증거를 찾아내기 힘든 탓에 내부자의 자진신고가 필요하고 중요한 단서가 되기에 공정위는 리니언시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실제로 지난해 지방자치단체 등이 발주한 수입 현미 운송 용역 입찰에서 2000년부터 18년 동안 이뤄진 총 127건의 담합 행위가 적발돼 한진, 동방, 동부익스프레스, 셋방 등 4개 사업자가 검찰에 고발됐지만 CJ대한통운은 리니언시로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공정위는 2015년 4월~2017년 6월 기간 동안 조달청 등이 발주한 공공분야 전용 회선 사업 12건의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 예정사와 들러리사를 정하거나 수의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합의한 KT,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세종텔레콤에게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133억2700만원을 부과했고 KT만 검찰에 넘겼다.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는 자진신고로 고발을 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와중에 전속고발제를 없애면 리니언시가 위축돼 담합행위 적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자진신고자 감면제도에 의해 과징금과 시정조치를 감면받은 기업은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검찰에 직접 고발할 수 있어 공정위의 감면제도는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런 점에서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공정위는 법무부와 전속고발제 제도개선 협의를 진행한 끝에 자진신고 접수창구는 기존 공정위로 단일화하기로 합의했다. 일반적인 자진신고 사건은 공정위가 우선 조사하며, 원칙적으로 13개월 내에 조사를 마치고 관련자료 등을 검찰에 송부하고, 검찰은 형사면책 판단시 공정위 의견을 최대한 존중키로 한다는 밑그림을 그린 상황이다.
특히 ‘공정위·검찰 우선 조사(수사) 사건 선별기준’도 마련했는데 공정위는 가격담합, 생산량제한담합, 시장분할담합과 입찰담합 중 자진신고가 없는 사건을 먼저 조사키로 했고, 검찰은 자진신고 접수 사건 중 입찰담합 사건 및 공소시효가 1년 미만인 사건 중 검찰의 신속 수사가 필요한 사건을 맡기로 했다.
거대여당 등장에 법안 속도 ‘촉각’
한편, 공정위는 전속고발권 일부 폐지가 포함된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오는 7월 21일까지 입법예고해 관계 부처, 이해 관계자 등의 의견을 수렴한 후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별다른 논의 없이 자동폐기된 20대 국회 때와는 달리 이번 21대 국회는 176석의 거대여당으로 탄생한 더불어민주당의 위세가 만만치 않아 법 개정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당사자격인 재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은 전속고발권제도가 단순히 행위의 외형만으로 위법성 판단이 어려운 공정거래사건의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찰이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전제다.
더불어 경쟁사업자, 시민단체, 하도급업체 등의 고발권 남용과 단순 민사소송이 형사소송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물론 수사기관의 과도한 개입으로 기업활동에 큰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인수합병(M&A), 입찰 등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담합 고발’의 형태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염려도 나온다. 이에 재계는 공정위와 검찰 간 이견 발생 시 조정방안 및 고발남용 방지책 등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계단체 한 관계자는 CNB에 “전속고발권을 없애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업 경영활동을 크게 위축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문”이라며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재계가 고개를 젓고 있는 가운데 정부·여당은 강공 드라이브를 걸 모양새라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