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3사가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선100척 수주를 위한 슬롯 확보 계약을 체결하면서 수주 가뭄에 허덕이던 국내 조선업계에 단비가 내릴 조짐이다. 다만 LNG선 건조의 핵심기술인 화물창 관련 기술이 국산화가 되지 않아 프랑스 GTT에 거액의 로열티가 지급되고 이로 인해 국내 조선사의 마진률이 저조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조선업계가 핵심기술의 조기 확보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CNB=정의식 기자)
23.6조 LNG선 수주 ‘카타르 잭팟’
조선업계, 수주 가뭄 위기 넘겼지만…
‘화물창’ 핵심기술 확보 필요성 ‘대두’
‘각자도생’ 위험 더 커…‘통합’이 살 길
지난 1일 서울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서 카타르 국영 석유회사 카타르 페트롤리엄(QP)과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의 ‘카타르 LNG운반선 슬롯예약계약 MOA 서명식’이 열렸다.
코로나19 여파로 화상으로 진행된 이날 협약식에는 사드 쉐리다 알 카비 카타르 에너지 장관 겸 QP 대표와 칼리드 빈 할리파 알 따니 카타르가스 CEO, 가삼현 현대중공업 대표, 남준우 삼성중공업 대표, 이성근 대우조선해양 대표 등이 참석했다.
계약의 골자는 QP가 2027년까지 국내 조선 3사의 LNG선 건조공간(슬롯)의 상당부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대규모 선박 건조 사업의 경우 일단 슬롯을 확보한 뒤 추후에 정식 발주를 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어서 사실상의 수주 계약으로 간주된다.
QP 측에 따르면, 계약 규모는 100척 이상, 700억리얄(약 23조6000억원)에 달한다.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은 이번 계약 규모가 103척이고, 척당 가격이 1억8600만달러라고 추정했다.
다만 실제 수주 규모는 이보다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건조 계약은 빠르면 올해부터 2024년까지 약 5년간 순차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GTT 화물창 기술 로열티, 선가 5% 수준
코로나19 확산과 유가 급락 등으로 ‘수주 가뭄’에 직면했던 국내 조선업계는 이번 카타르 대량 수주 ‘잭팟’으로 향후 수년간의 일거리를 확보했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게다가 러시아, 모잠비크 등에서도 대형 LNG 프로젝트 발주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어 여러모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수주가 그닥 ‘실속’은 없다며, 자칫 ‘빛좋은 개살구’로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LNG선의 핵심기술을 국내 기업이 보유하지 못해 해외기업에 1척당 선가의 5% 가량(약 100억원)을 로열티로 지불하고 있다는 것.
LNG선은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의 액체 상태로 전환(액화)해 운송한다. 액화를 하면 부피가 600분의 1로 감소되므로 저장과 운송이 용이해진다. 이를 위한 핵심 기술은 화물창, 보냉재, 극저온펌프, 고압펌프, 극저온배관, 재액화 시스템 등이다.
이 중 가장 중요도가 높은 핵심 기술은 ‘화물창’으로 영하 160도 이하의 극저온에 견딜 수 있도록 특수한 재질과 구조로 제작된다. 내부 온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가스가 급격히 팽창해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물창 기술은 크게 멤브레인 탱크, 독립형 탱크 타입A·B·C 등으로 구분되는데, 대형 LNG선은 대부분 멤브레인 탱크를 사용한다. 멤브레인 탱크는 선체에 직접 시공하는 방식이어서 공간효율이 높고 건조비용 경감이 가능하며, 시야확보가 용이한 장점이 있다. 다만, 조선소 시공기술력이 부족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멤브레인 탱크 기술은 프랑스 GTT(Gaztranport & Technigaz) 사가 라이센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 모든 조선사들은 이 회사의 라이센스로 화물창을 건조하고 있다. 이번에 조선 3사가 100척의 LNG선을 건조한다고 가정하면, GTT는 약 1조원 이상을 로열티로 챙기게 된다. LNG선의 1척당 건조이익이 약 100억원~140억원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높은 금액이다.
‘한국형 LNG 화물창’ 갈 길 멀어…
이 때문에 조선업계는 오랫동안 ‘한국형 LNG 화물창’ 기술 확보에 집중해왔다. 지난 2014년 한국가스공사와 조선3사가 출자한 케이씨엘엔지테크(주)가 한국형 화물창 설계기술 ‘KC-1’을 개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KC-1은 육상 LNG탱크 기술 기반으로 제작됐고, GTT사의 Mark Ⅲ와 구조가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이 시공해 2018년 2월과 3월 사이에 인도한 SK세레니티, SK스피카 호를 운행한 결과 선박 외벽에서 결빙이 발생했다. 결국 운항을 중지하고 수리하는 상황으로 이어져 기술 완성도 입증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이후 KC-1 개발에 공동 참여한 조선3사는 독자 화물창 기술 확보에 나섰다. 현대중공업의 하이멕스, 대우조선해양의 솔리더스, 삼성중공업의 KCS 등이 개발됐고, 3사는 적극적 시장개척에 나섰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판매된 건 1건도 없다.
판매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트랙레코드(운용실적) 축적 부족’이다. 고가의 LNG선이 미검증되고, 신뢰도가 낮은 제품을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선택권을 가진 선주들 입장에서는 검증된 GTT의 기술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 결과적으로 3사의 독자 화물창 기술 경쟁은 이익보다는 개발 노력 중복, 트랙 레코드 축적 어려움 등 부담만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유상 KDB미래전략연구소 산업기술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은 “화물창 기술의 국산화는 상당수준 진행된 상황”이라며 “유일하게 트랙레코드를 보유한 KC-1을 중심으로 기술 교류 및 역량을 통합해 트랙레코드 축적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트랙레코드 축적을 위해 “우리 국적의 LNG선 교체 발주 시 국산 기자재를 채택하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CNB=정의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