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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이재용·정의선·구광모…재벌史 다시 쓰다

1·2세 시대 역사 속…4차산업혁명 나선 젊은 총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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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20.05.27 09:27:41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된 땅 위에서 재벌 신화를 쓴 재계 1·2세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최근 몇 년 새 기업 풍토가 크게 바뀌고 있다. 3.4세들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가운데, 기업 문화 또한 형식·권위 대신 소통·실용주의가 전면에 부상했다. CNB가 한국 재계의 과거·현재를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한강의 기적’ 이끈 1·2세대 역사 속
권위·형식 탈피한 실용주의 전면부상
“글로벌 1위되자” 소통 나선 3·4세들

 

1987년 2월 제26차 전경련 정기총회에서 18대 회장에 추대된 구자경 LG 회장(왼쪽)이 전임 회장인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으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LG 제공)
 

#1  창업주 시대 막 내려

재벌의 사전적 정의는 ‘재계(財界)에서 여러 개의 기업을 거느리며 막강한 재력과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 있는 기업인’이다. 통상 대주주인 ‘총수나 그 가족’을 지칭한다.

‘재벌’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전문경영인 중심의 기업과 구분짓기 위해 사용한 ‘자이바츠’라는 단어가 재벌의 시초였다.

<한국재벌사>의 저자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재벌은 1960~70년대에 크게 번창했다. 이전은 한국전쟁 직후라 재벌이 제대로 된 외형을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조국 근대화’의 기치 하에 한강의 기적을 일군 주요 대기업의 창업주 세대는 이제 역사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올해 1월 19일 별세한 롯데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은 1세대 경영인 가운데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했던 인물이다. 롯데그룹을 매출 83조원, 한국 재계 5위 재벌 기업으로 키워낸 그는 100세 맞이를 1년 앞둔 백수(白壽·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99년 3월 전경련 신임회장단 취임인사회. (왼쪽부터) 이건희 삼성 회장, 김우중 대우 회장, 김종필 국무총리, 정몽구 현대차 회장. (연합뉴스 제공)
 

신 명예회장 별세 한달 전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고가 전해졌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그의 저서 제목처럼 미국·유럽은 물론 아프리카, 동구권에 이르기까지 공격적으로 해외사업을 키운 김 전 회장은 창업 30여년 만에 대우를 자산규모 국내 2위의 재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러나 그의 성공 뒤에는 수십조원의 분식회계와 10조원 가량의 사기대출 등 부실 경영으로 대우를 파산으로 이끌었다는 그늘도 있다.

깅우중 전 회장이 세상을 등진 지 닷새 후에는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

구 명예회장은 LG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의 장남으로, 1970년 45세때 LG그룹 2대 회장에 올라 25년간 LG를 이끌었다. 취임 당시 연매출 270억원 규모이던 회사를 퇴임 시 매출 38조원의 재계 3위 그룹으로 키웠다. 70세가 되던 1995년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을 넘겨준 뒤 교육사업과 사회공헌활동에 전념해왔다.

이들보다 한참 앞서 세상을 떠난 창업주들도 많다.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이병철 삼성 회장과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현대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며 재벌 시대를 열었던 거목들은 이제 현세(現世)에선 볼 수 없게 됐다.

 

2세대 재계 총수 중 대표적 인물들.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왼쪽)과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 (사진=연합뉴스)
 

#2   2세대도 일선에서 물러나

이들의 다음 세대들도 점점 중심부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미 작고했거나 대부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2018년 5월 LG가(家) 3세 구본무 회장의 별세에 이어, 작년 4월에는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재계 1위 삼성을 이끌던 이건희(79) 삼성그룹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켜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은 뒤 6년째 투병 중이다.

범현대가(家)에서는 정주영 창업주의 장남인 정몽구(83) 현대차그룹 회장이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그룹을 지휘하는 총괄회장이지만,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대신 외아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대외 활동을 전담하며 경영 보폭을 넓혀가는 중이다.

정몽구 회장의 동생 정몽근(79)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장남인 정지선 회장에서 그룹을 맡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LG가(家)에서 갈라져 나온 GS가(家)의 허창수(73) 회장도 경영에서 물러났다. 허 회장은 2005년 3월 GS그룹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15년간 그룹의 성장 기반을 닦고 작년 연말 용퇴했다. 허 회장은 GS 창업주인 고 허만정 선생의 3남인 허준구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올해 86세인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은 3년전 아들 조현준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물려준 뒤 경영에서 손을 뗐다. 조 명예회장은 1981년 효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후 경영혁신과 주력 사업부문의 글로벌화를 이끌며 효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장,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한일경제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아직 현직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인물은 손경식 CJ그룹 회장 정도다. 손 회장은 올해 82세로 고령인 편이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을 맡아 활발히 ‘재계의 어른’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왼쪽)과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최근 만나서 양사의 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총수들끼리 사업 목적으로 만난 것은 재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사진은 두 사람이 지난해 신년회에서 악수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3   4050 젊은 총수들 전면 부상

1·2세대들의 뒤를 이어 지금은 40~50대 젊은 나이의 3·4세들이 재계를 이끌고 있다. 이들은 선대회장 시절의 권위와 형식주의를 과감히 탈피해 실용노선을 걷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대기업들 간의 교류다. 과거 한국 재계는 특유의 보수성과 경쟁심리 때문에 재벌 간 업무협력은 전무했다.

하지만 최근 재계 1·2위인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오너들이 서로 만나 사업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범현대가 3세로 현대자동차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알버트 비어만 사장, 상품담당 서보신 사장 등과 함께 지난 13일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찾았다. 삼성그룹 측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 삼성SDI 전영현 사장, 삼성종합기술원 황성우 사장 등이 현대차그룹 경영진을 맞았다.

양측은 차세대 전기차용 배터리인 전고체 배터리 개발 현황과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최근 전고체 배터리 관련 핵심 기술을 개발했고, 현대차는 세계 시장에서 전기차를 확대하고 있어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가 두 기업의 공통 관심사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재계 총수들이 모임 등에서 자리를 함께한 적은 있지만 사업 목적으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광모 LG 회장은 재계 최연소(78년생) 회장답게 소통과 디자인을 그룹경영의 모토로 삼고 있다. 구 회장이 지난 2월 LG전자 서초디자인경영센터를 방문해 미래형 커넥티드카 내부에 설치된 의류관리기를 살펴보고 있다. (LG 제공)

베일에 가려진 재벌 이미지를 탈피해 소통에 나선 총수들도 눈에 띈다.

2018년 6월 총수에 오른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재계 최연소(78년생) 회장답게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다.

일방적인 보고 체계를 토론 형식으로 바꾸고 직급 체계도 간소화했다. 연초에는 수백 명의 직원들이 집결하는 ‘강당 시무식’을 버리고 모바일과 PC 등 디지털을 이용해 새해 메시지를 전했다. 특히 구 회장은 직원들에게 자신을 ‘회장’이 아닌 ‘대표’로 불러 달라고 요구해 사내에서는 ‘구 대표’로 불리고 있다.

2017년 총수 자리에 오른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도 파격 행보로 눈길을 끈다.

이사회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해 그룹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며 지주사인 ㈜효성의 이사회 의장에서 스스로 물러난데 이어, 최근에는 주요 계열사의 기업설명회 자리에 직접 참석해 ‘컨설턴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작년 5월에는 효성그룹 ‘한마음 체육대회’에서 직접 축구 선수로 뛰어 주목받았다. 재계에서 총수가 직원들과 호프미팅을 갖거나 점심식사를 함께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직접 선수 자격으로 공을 찬 사례는 처음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3월 삼성전자 경북구미사업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차담회를 갖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4   재벌이길 포기? 기득권 내려놓다

재벌의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6일 대국민사과를 통해 “대한민국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며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했다.

과거 삼성의 전통으로 여겨졌던 ‘무노조 경영’ 원칙도 과감히 깼다.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 체제가 수립된 몇 년 전부터 계열사별로 줄줄이 노조가 설립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대국민사과에서 “노동 3권을 철저히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현장 소통도 강화하고 있다. 임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식사하고 ‘인증샷’ 요청에 흔쾌히 응하는가 하면, 사업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차담회를 가지는 등 격의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에서는 ‘순혈주의’가 사라졌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2018년 9월 그룹 사령탑에 오른 직후 외국인 인재들로 요직을 채웠다. 자동차 산업의 핵심인 연구개발(R&D)·디자인·판매 세 부문의 사장을 모두 외국인에게 맡긴 것. 글로벌 R&D는 BMW 출신 알버트 비어만 사장이, 디자인 분야는 폭스바겐 출신 피터 슈라이어 사장이,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닛산 최고성과책임자(CPO) 출신인 호세 무뇨스 사장이 이끌고 있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CNB에 “주요 대기업의 기업문화가 크게 바뀐 것은 사회·정치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면서 정경유착은 이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된데다, SNS를 기반으로 하는 소통 문화,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1·2세대들의 퇴진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글로벌 실용주의가 대세가 됐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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