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현장] 거장이 남긴 친숙함…KT&G, 앨런 플레처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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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현장] 거장이 남긴 친숙함…KT&G, 앨런 플레처 회고전

영국 디자인 신화의 첫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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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19.12.07 08:52:00

내년 2월 16일까지 KT&G 상상마당 홍대서 진행되는 '웰컴 투 마이 슈트디오!' 전시장 전경 (사진=선명규 기자)

늘 주변에서 봐 온 이미지들처럼 익숙하다. 표절 의혹 제기는 아니다. 교과서적이라 두고두고 회자될 뿐이다. 디자인계 신화로 불리는 영국 출신 디자이너 앨런 플레처(1931~2006)의 작품 500여점이 최근 한국을 찾았다. KT&G(케이티앤지) 상상마당 홍대에서 지난달 개막해 진행 중인 ‘웰컴 투 마이 스튜디오!’전을 통해서다. 그가 평생 남긴 방대한 작업물 중 대표작들이 엄선돼 나왔다. 연대기별로 정돈했기 때문에, 거장이 디자인에 바친 시간을 되짚어 볼 수 있다. (CNB=선명규 기자)

다섯 단계로 축약해 전시 구성
유족 소장 작품 500여점 나와
기시감 들 만큼 현시대에 영향

 


“선구자, 경계 없는 작업자,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는 고집쟁이”

지난 3일 전시장서 만난 김정현 KT&G 상상마당 큐레이터는 앨런 플레처를 이렇게 소개했다. 영국왕립예술학교에 재학하던 1956년 최초로 자청해 미국 학교로 건너난 교환학생, 클라이언트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자신만의 위트 있는 색채는 유지한 이가 앨런 플레처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예술가로서 50년간 남긴 흔적들이 총총히 나왔다.

전시는 5층에서 시작해 4층으로 이어진다. 한 디자이너의 삶을 층계를 내려가는 것으로 거슬러 조명한다. 구성은 다섯 단계다. 발자취에 따라 짧게는 3년, 길게는 20년으로 묶어 집약했다. 독창적인 포트폴리오북을 만들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초기부터 콜린 포브스, 밥 질, 케네스 그랜지, 멀빈 쿨란스키와 차린 디자인 스튜디오 ‘펜타그램’에서의 활약상까지 망라했다.

 

피렐리의 버스 광고 (사진=선명규 기자)

전시장에 들어서면 기시감이 먼저 들 수도 있다. 런던을 상징하는 붉은색 2층 버스의 차창에 비치는 승객들의 상반신, 그 아래 겉면에 그림으로 새겨진 다리들. 앨런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피렐리(Pirelli)’의 구두 광고 이미지가 벽에 커다랗게 붙었다. 사람들이 마치 실제 신발을 신고 앉아 있는 것처럼 정확히 각도를 맞춰 제작한 작품. 지금도 여러 광고나 포스터 등 인쇄매체에서 실제 사람과 이미지의 결합이란 변주로 자주 활용되는 아이디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쨍하게 들어오는 것은 달력이다. 이탈리아 사무기기 제조업체의 타자기 홍보용으로 만든 포스터인데, 강렬한 색감이 환각적인 팝아트를 연상케 한다. 김정현 큐레이터는 “당시만 해도 이런 과감한 컬러로 인쇄하는 게 흔치 않아서 업자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작업할 정도”였다며 “한눈에 숫자를 알아보기 어려워 달력의 기능을 제대로 하는 것은 아니나, 홍보용으로는 성공을 거뒀다”고 했다.

 

팝아트를 연상케 하는 이탈리아 사무기기 제조업체의 홍보용 포스터 (사진=선명규 기자)

창의력이 번뜩여서일까? 그의 창조물은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기도 했다. 수많은 아류를 낳았다. 이번 전시에도 나온 조개를 닮은 재떨이가 대표적인 경우. 움푹 파인 원을 따라 톱니바퀴처럼 뾰족뾰족 올라온 형태는 무수히 많은 카피제품의 원형이 됐다. 김 큐레이터는 “당시만 해도 저작권의 개념이 모호해 앨런의 작품이라고 명시하기 어려울 만큼 상업화 돼 뻗어나갔다”고 말했다.

전시장은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포춘 매거진 등 유수의 잡지 표지 디자인부터 리플릿, 브로슈어 등 종이에 새겨진 그의 유물 같은 디자인들이 원본 그대로 나왔다. 인쇄물이 대부분인데 관리상태가 좋다. 김 큐레이터는 “생전 다작한 것에 비하면 이번에 나온 작품은 극히 일부”라며 “작고 직전인 2006년 영국 디자인 뮤지엄에서 회고전이 열렸는데 이때 유족이 작품을 깔끔히 정리하고 보관에도 신경 쓴 듯 보인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앨런 플레처의 인쇄물, 상품 디자인 등 작품이 500여점 나왔다. (사진=선명규 기자)


노년에 자신에게로 돌아간 ‘거장’

5층이 의뢰인의 청탁을 받은 수용자의 면모를 드러내는 장이라면, 4층은 그의 예술세계를 담아낸 공간이다. 1990년대 들어 클라이언트의 요구에만 맞춰 작업하는 자신을 발견한 앨런 플레처는 펜타그램에서 나와 자택에 개인 스튜디오를 마련한다. 이 무렵 본인이 하고 싶은 것만,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겠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한 그다.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 이후 작업한 작품들이 이곳에 내걸렸다.

노년에 이르러 완성한 창작물인데 오히려 생기 있다. 수채화, 펜 글씨, 콜라주 등 기법의 다양화를 시도하면서 그가 못내 고집한 수작업 방식은 고수했다. 따라서 따뜻하고, 그래서 장인의 풍모가 전해진다.

특히 선으로 무심히 툭툭 그어 그린 야자수 그림이 눈에 띈다. 국내 관람객과의 접점일 수도 있는 이 작품은 그가 과거 제주도에 방문 했을 당시 모티브를 얻어 완성한 것. 지독한 여행가로 알려진 앨런 플레처가 한국에도 족적을 남긴 것이다.

김 큐레이터는 “앨런 플레처는 지금의 디자인 스타일을 20세기에 이미 구사했다”며 “현재까지도 영향력을 미치는 그가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로 불리는 이유기도 하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6일까지.

한편 ‘웰컴 투 마이 스튜디오!’는 KT&G 상상마당의 20세기 거장 시리즈 중 일곱 번째로 마련된 전시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 작가를 소개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그동안 2014년 로베르 두아노의 사진전, 2015년 레이먼 사비냑 원화전, 2016년 장 자끄 상뻬 원화전, 2017년 상반기 자끄 앙리 라띠그 사진전, 하반기 퀀틴 블레이크 원화전, 2018년 노만 파킨슨 사진전이 열렸다.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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