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 소득주도성장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혁신성장에 경제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규제개혁, 양질의 일자리 창출, 재벌지배구조 개편 등을 국정운영의 우선 과제로 추진 중이다. 이에 CNB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기업정책들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인터넷전문은행의 대주주 적격성 완화 특혜 논란이다. (CNB=이성호 기자)
KT·카카오 등 대주주 자격 시비
현재 기준은 시장 확장에 걸림돌
규제 풀어야 ‘제3은행’ 활성화돼
시민단체 “은산분리 취지 훼손”
지난달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안건 중 하나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김종석 의원 대표발의)’을 다뤘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개정안’은 인터넷전문은행(이하 인터넷은행)의 대주주 자격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인터넷은행은 시중은행 등과 마찬가지로 한도초과보유주주(대주주)가 되기 위해선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기본 조건은 일단 최근 5년간 금융관련법령,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조세범 처벌법’,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이 개정안은 이러한 한도초과보유주주 승인 요건 중에서 금융관련법령 위반만 남겨두고 나머지 법률 위반 요건을 제외토록 했는데, 이는 각종 규제 위반의 가능성에 노출된 산업자본의 특수성을 고려해 대주주 적격성 심사기준을 낮춘 것이다.
발목 잡힌 케이뱅크·카카오
이 같은 법안이 제시된 배경은 뭘까.
케이뱅크(K뱅크)·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들은 그동안 은산분리(은행과 산업자본 분리) 규제에 발목이 잡혀있었다.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은행지분을 10%로 제한하고 있고 이중에서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4%로 막아놓은 것.
따라서 케이뱅크의 설립주체인 KT의 지분은 10%(의결권 행사 4%)로 묶여 있었고 카카오뱅크의 카카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설립 취지와 맞지 않게 ICT 기업이 주도적으로 경영을 이끌고 갈 수 없었고 과감한 투자도 어려웠다. 특히 참여주주들이 지분 비율대로 일일이 참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증자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국회에서 특례법이 개정됐고 올해 1월부터 인터넷은행의 비금융사 주식 보유한도가 기존 4%에서 34%까지 확대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은행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그동안 숙원이었던 은산분리라는 거대한 장벽이 무너지자 KT와 카카오는 바로 대주주가 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KT와 카카오의 여정은 순탄하게 풀리지 않고 있다. 먼저 KT는 지난 2016년 지하철 광고 시스템 입찰 담합으로 받은 벌금형이 걸림돌이다. 여기에 더해 공공전용회선 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KT가 신청한 케이뱅크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중단한 상태다.
카카오의 경우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 외에 최근 합병한 카카오M(구 로엔엔터테인먼트)의 담합 관련 1억원 벌금형 전력에도 불구하고 금융위로부터 카카오의 한국카카오은행에 대한 주식보유한도 초과보유(34%) 승인을 받아냈다.
법제처가 한도초과보유 승인 심사 때 주식을 소유하지 않은 계열주는 심사대상이 아니라는 법령해석을 내놓은 점이 주효했다.
현재 카카오뱅크는 한국투자금융지주가 5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카카오는 18%를 가지고 있다. 나머지 국민은행(10%), SGI서울보증(4%), 이베이(4%), 넷마블(4%), 우정사업본부(4%), 텐센트(4%), YES24(2%) 등이 주주로 포진해 있다.
설립 당시 주주들이 체결한 지분 매매 약정에 따르면, 은산분리 규제가 풀릴 경우 카카오는 카카오뱅크의 지분율을 34%로 늘려 1대 주주가 되고, 한국투자금융지주는 34%보다 1주 적은 주식으로 2대 주주가 된다.
현재 금융위 허락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카카오에 16%의 지분을 넘기고, 잔여지분인 34%(-1주) 중에서 5%(-1주)만 남기고 29%를 한국투자증권의 자회사인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 양도키로 했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에서는 금융지주사가 금융사의 지분을 50% 이상 보유해 자회사로 편입하거나 아니면 5% 이내로 보유토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한국투자금융지주는 한국투자증권에 해당 지분을 넘기려 했으나 한투증권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어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한국투자밸류자산이 한투증권의 100% 자회사인 탓에 금융위가 대주주 승인(지분 10%, 25%, 33% 초과 시 각각 승인 필요)을 내줄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옥죄고 있던 은산분리가 해결됐지만 곧바로 대주주 적격성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 셈이다.
반대 목소리 커 법개정 난항
정부 역시 난처한 상황이다. 케이뱅크·카카오뱅크를 금융시장에 안착시키고 추가로 제3의 인터넷은행 사업자를 출현시키려는 정책을 펴고 있는 탓이다.
여당도 곤란하긴 매한가지다. 특혜 시비에도 불구하고 ‘은산분리 원칙 완화’ 쪽에 손을 들어줬는데 재차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와 여당은 대주주 자격 요건 완화를 위한 법 개정 검토에 나서기로 했고,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애초에 공정거래법 위반 등 요건을 대주주 적격성 심사기준에서 빼야 한다는 입장까지 내고 있다. 김종석 의원(자유한국당)의 ‘인터넷은행 개정안’이 제기된 배경이다.
하지만 개정안과 관련해 반대가 상당하다.
참여연대는 “정부와 여·야가 은산분리 원칙을 훼손한 뒤에도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가 원활하지 않자, 이제는 금융회사 전반의 지배구조 원칙을 훼손하겠다는 것”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이어 “혁신을 가장한 산업자본을 위한 특혜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며 “과거 저축은행 사태 등을 통해 보듯, 은행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주주의 적격성을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일부 정무위 소속 의원들도 반대하고 있다. 정무위 소속 추혜선 의원(정의당)은 “산업자본은 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높으니 법을 어겨도 금융사 대주주 자격을 박탈해선 안 된다는 것은 음주운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음주운전을 해도 운전면허증을 취소해선 안 된다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논리”라고 꼬집었다.
추 의원은 “인터넷은행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해도 대주주 자격을 부여하겠다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며 “법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경제력을 집중시키는 산업자본이 은행을 사금고처럼 이용해 그 부를 더욱 늘릴 수 있는 위험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강하게 선을 그었다.
정무위 법안소위 소속 여당 위원인 이학영 의원(더불어민주당)도 지난달 24일 이 개정안에 대한 심의에서 강력하게 반대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일반 은행뿐 아니라 금융투자, 보험, 상호저축은행 등 타 금융업권의 경우에도 공정거래법, 조세범 처벌법 등 위반 관련 요건을 한도초과보유주주 또는 대주주의 자격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터넷은행에 한해 이 요건을 완화할 경우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자칫 부적격자가 인터넷은행 지배력을 갖게 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이처럼 찬·반이 엇갈리고 있어 국회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검찰개혁·선거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태로 여야가 대치하고 있는데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 올해를 넘기면 사실상 20대 국회는 수명을 다하게 된다.
법안을 낸 김종석 의원실 관계자는 CNB에 “일부 의원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큰 이견차는 없었다”며 “다음 법안소위에서 재논의 될 예정인데 이때 통과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안소위 문턱을 넘더라도 상임위,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 상정까지는 갈 길이 멀다.
(CNB=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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