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기자 | 2019.09.09 09:01:28
문재인 정부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 소득주도성장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혁신성장에 경제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규제개혁, 양질의 일자리 창출, 재벌지배구조 개편 등을 국정운영의 우선 과제로 추진 중이다. 이에 CNB는 정부·국회의 주요 기업정책 이슈들을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추석 연휴를 맞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논란이다. (CNB=이성호 기자)
대형마트 노동자들 “휴무일 늘려 달라”
사측, ‘추석→의무휴업일수’에 끼워넣기
노동계 “추석은 별개 휴일…사측 꼼수”
‘휴무일 확장’ 법안 3년간 국회서 낮잠
“쉴 때는 쉬면서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노동자 측)
“추석 직전 의무휴업일을 추석 당일(9월 13일)로 변경해 달라”(사용자 측)
추석을 맞아 대형마트 노동자 측과 사용자 측이 대립구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앞서 이마트(신세계), 롯데마트(롯데쇼핑),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와 이들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최근 전국 시·군·자치구에 추석 직전 의무휴업일을 추석 당일인 13일로 변경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의무휴업은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됐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대형마트·준대규모점포에 대해서는 특별자치시장·시장 ·군수·구청장이 월 1일 이상 2일의 범위 내에서 의무휴업일을 정하도록 한 것. 이어 2013년 1월 개정법률에서는 매월 2일로 하되, 지자체장이 이해당사자(대형마트)와 합의를 거쳐 공휴일이 아닌 날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게 했다.
즉, 대형마트는 강제로 매달 2일씩 문을 닫아야 하는데, 문제는 대부분 지역이 추석 전주 일요일인 8일이나 추석 전날인 12일이 의무휴업일인 것. 업계에 따르면 토·일 이틀간의 매출이 월~금요일 5일간의 매출에 육박한 수준인데다가 특히 추석을 앞둔 일요일은 추석 전체 매출의 약 15%를 차지하는 대목인 탓에 의무휴업일 날짜를 바꿔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고, 서울·대구·부산·대전·광주 등에서는 변경 불가 방침으로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의 전국 약 400여개 점포 중에서 290여개 점포가 8일과 12일에 강제휴무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의 경우 추석 전날이자 일요일인 9월 23일이 의무휴업일로 지정되면서 전국 대형마트 277개 점포가 문을 닫은 바, 올해도 비슷한 수준으로 사실상 대형마트들의 바램은 결과적으로 무위에 그쳤다고 볼 수 있다.
‘뻔뻔한 요구’에 분노
반면, 큰 성과 없이 끝났지만 대형마트들의 추석 직전 의무휴업일 변경 요청은 노동자 및 시민사회단체들에게 강하게 비판받고 있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전국네트워크,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한국마트협회,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전국대리점살리기협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등에서는 앞서 성명을 내고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유통재벌의 탐욕”이라고 일갈했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명절휴업과 공동휴식권의 보장을 명시하고 있으며, 올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전원위원회 결정으로 산업자원통상부에 ‘유통산업발전법’에서 규정하는 대규모 점포 등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적용대상이나 범위 등 확대를 검토하라고 권고한 상태다.
따라서 노동자가 당연하게 쉬어야 하는 추석 당일을 의무휴업일과 맞바꾸겠다는 건 노동자의 휴식권을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추석 당일을 별도로 휴무하지 않은 채 의무휴업일로 채워 교묘하게 ‘명절휴업’을 피해가겠다는 꼼수라는 게 시민사회단체들의 주장이다.
또한 어차피 제대로 된 영업이 힘든 명절 당일을 의무휴업일과 거래하려는 행태는 ‘골목상권 보호’라는 의무휴업일 제도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권위에 따르면 유통업 종사자들은 휴무일이라도 매장이 영업일인 경우 및 주말·휴일 시 매장 내 재고 확인, 주문 요청, 유선상 고객 상담 등으로 인해 지속적인 연락을 받고 동료직원 대신 근무 등 휴무일정 조정 등으로 인해 휴일에도 온전한 휴식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주말에 근무하는 경우 각종 경조사나 모임 참여가 어렵고 자녀 돌봄에 공백이 생기는 등 인간관계, 유아 등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마트 사용자들이 ‘뻔뻔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추석 당일을 의무휴업일이 아닌 정기휴무일로 지정해 휴식일수를 늘려야 한다는 게 노동계의 입장이다.
‘유통법 개정안’ 국회 수년째 계류
이에 법 개정을 촉구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지난 4일에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전국네트워크,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우원식·이용득 국회의원, 민중당 김종훈 국회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유통업 종사자 건강권과 쉴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은 여전히 지자체에 따라 평일 의무휴업일로 대체됐고, 유통재벌은 헌법소원은 물론 법 개악을 위해 온갖 일들을 벌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책 권고까지 나온 이번 정기국회에서 한 달에 두 번인 대형유통매장의 의무휴업일을 주 1회로 늘리고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김종훈 의원, 서영교 의원, 이언주 의원 등 각각 대표발의)이 반드시 논의되고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강제휴무와 관련해서 민중당 김종훈 의원안은 설날과 추석날 당일은 무조건 의무휴업, 대형마트·준대규모점포는 매주 일요일(이해당사자와 합의를 거쳐 일요일 아닌 날로 지정 가능), 백화점도 매주 일요일, 시내면세점은 매월 일요일 중 하루를 쉬도록 적시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안은 설날과 추석날 당일은 반드시 의무휴업하고 설날·추석이 있는 달에는 공휴일 중 3일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토록 했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안 역시 대규모점포 등 의무휴업일을 월 4회로 확대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상당하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인권위 등에 따르면 근로자의 건강권 및 휴식권 보장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의한 의무휴업일 확대보다는 노동 관련 법률(근로기준법 등)의 내용을 준수토록 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또한, 왜 대규모점포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휴식권만 특별히 보장돼야 하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중소유통업 종사자 등 모든 노동자의 휴식권이 동등하게 보장돼야 한다면 독일의 상점폐점법과 같이 통일적으로 근로자의 휴식권을 보장토록 규율해야 한다는 것.
사용자 측은 응당 고개를 젓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체인스토어협회, 한국백화점협회, 한국면세점협회 등에서는 유통업 매출감소, 영업의 자유 침해 등을 이유로 의무휴업일 확대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노동자의 휴식권을 위해 백화점 면세점 등으로 의무휴업일 도입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유통산업의 효율적인 진흥, 균형 있는 발전, 소비자 보호라는 유통산업발전법 제정 목적에 부합하기 어렵다며 신중한 태도다.
국회가 공전하면서 이 개정안들은 수년 째 묵혀 있는 상황이지만, 매출 타격과 소비자 불편 그리고 노동자 쉴 권리 등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법안 논의 과정은 앞으로도 순탄치 않아 보인다.
한편, 김종훈 의원실 관계자는 CNB에 “2016년 11월에 제출한 법안이 여태까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뿐만 아니라 타 의원들이 제출한 유통산업규제 관련 법안 수십 건이 상임위에서 정리가 안 된 채 계류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쉴 권리가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기자회견도 열었지만, 추석 이후에도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함께 촉구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CNB=이성호 기자)
[관련기사]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①] 구멍 난 ‘일감몰아주기’ 규제…법망 조여질까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②] 베일 가려진 금융권 ‘가산금리’의 비밀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③] 회사 망하면 대표가 신불자 되는 연대보증제…폐지 안하나 못하나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④] 동전의 양면…중소기업 ‘연대보증 폐지’ 후폭풍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⑤] 재벌 들러리 된 공익법인, 나홀로 날 때 됐다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⑥]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족쇄 풀리나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⑦] 인터넷전문은행, ‘재벌개혁 vs 핀테크’ 갈림길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⑧] 제2의 ‘아이폰 고의 성능저하 사건’, 법으로 막는다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⑨] ‘BMW 화재’ 후폭풍…‘징벌적 손해배상제’ 속도 내나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⑩] 특허권 침해하면 10배 배상? ‘침묵의 카르텔’ 깨질까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⑪] 공정위 ‘전속고발권’의 두 얼굴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⑫] CU·GS25·세븐일레븐…추석 개점 ‘동전의 양면’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⑬] 국민연금의 일본 전범기업 투자, 왜 계속되나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⑭] 1999년 폐지된 ‘상품권법’ 부활? 찬반 논란 “왜”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⑮] 공매도 판 키운 국민연금…주식대여 접은 속내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⑯] 시중은행 ‘금리인하요구권’은 빛 좋은 개살구?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⑰] 숨통 트인 케이뱅크…대주주 적격성 논란은 ‘진행형’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⑱] 국회가 ‘재벌 경영권 보호’에 나선 이유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⑲] 재계, ‘독약’을 원한다? ‘포이즌 필’ 촉구하는 내막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⑳] ‘가맹점 단체협상권’ 카드수수료 분쟁 해법 될까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㉑] ‘가해기업의 자료제출 거부’ 법으로 막는다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㉒] 재벌개혁 공룡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말하다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23)] 잠자고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올해 깨어나나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24)] 재계 초긴장 ‘집중투표제’…양날의 검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25)] 빛바랜 문재인 공약…‘노동이사제’ 산으로 가나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26)] “감사 따로 뽑자” 대주주 견제 ‘뜨거운 감자’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27)] 기로에 선 ‘증권거래세’…주식시장 ‘뜨거운 감자’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28)] 산업·수출입은행 이전, ‘텃밭 챙기기’ 논란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29)] 대출금리 손본다지만…판단기준 모호해 ‘논란’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30)] 정치권 외풍에 흔들리는 국민연금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31)] 금융위, 사법권 본격 발동…문제는 없나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32)] ‘전자투표제’ 여전히 빛 못보는 이유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33)] 감사 선임 ‘3%룰’…엇갈리는 시선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34)] 뒤로 가는 재벌개혁…핵심법안들 올스톱 “왜”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35)] ‘실수로 잘못 보낸 돈’ 정부가 책임진다?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36)] “낼까 말까” 상속세에 발목 잡힌 총수들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37)] 또 뒷북…인터넷은행 대주주 자격 완화 ‘논란’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38)] 고액연봉자 공개 어디까지? 알권리 vs 경영권 침해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39)] ‘비리 총수 경영복귀 NO’ 재벌개혁 첫단추 꿰어졌나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40)] 또 의료민영화 유령이…8년 묵은 서발법, 찬반 “왜”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41)] 인터넷은행, 끝없는 논란 “왜”
[연중기획-기업정책 핫이슈(42)] 4차산업혁명인데 아직 종이서류? ‘보험청구 전산화’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