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기자 | 2019.09.17 09:22:38
문재인 정부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 소득주도성장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혁신성장에 경제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규제개혁, 양질의 일자리 창출, 재벌지배구조 개편 등을 국정운영의 우선 과제로 추진 중이다. 이에 CNB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기업정책들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의 지방이전 논란이다. (CNB=이성호 기자)
“지역균형발전 vs 선거용” 논란
의원들마다 “내 고향 유치해야”
취지는 뒷전…‘이해충돌’로 변질
활동을 재개한 국회 정무위원회가 쌓여 있던 법안들의 먼지를 털어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중소기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전체회의를 거쳐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됐다.
자유한국당 곽대훈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개정안의 골자는 IBK기업은행의 본점 소재지를 서울특별시에서 대구광역시로 변경하자는 것.
정무위에 따르면 앞서 금융공공기관 지방이전은 2014년 9월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한국예탁결제원이 부산으로, 같은 해 11월 신용보증기금(이하 신보)이 대구로 이사하는 등 부산·대구지역을 대상으로 이뤄진 바 있다.
개정안 취지를 보면 대구시가 전체 사업체 중 중소기업체의 비율이 99.95%에 달하고, 종사자의 97%가 속해있어 8개 광역시 중 그 비율이 가장 높다는 것. 게다가 신용보증기금 본점이 위치해 기업은행과의 연계를 통한 적극적 중소기업 자금지원이 이뤄질 경우 지역균형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는 논리다.
이 개정안은 현재 정무위 법안소위에 회부된 상태지만 심사 과정이 순탄치 않아 보인다. 기업은행 본점이 대구로 이사할 경우 수도권에 집적된 금융기관 및 산업체와의 효율적인 업무협력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실제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씨티은행 등 주요시중은행들은 모두 본점 소재지가 서울이다. 서울 역시 아직 국제적인 금융중심지로서 위상이 확고하지 않는데 금융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이 금융중심지 정책의 효과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
특히 금융위원회는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연계된 기업은행의 본점 소재지 조항 개정은 관계부처 논의 및 공론화 과정 등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돼야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상임위에 전달한 상태다.
국책은행 모시기 경쟁 “왜”
국책은행의 지방이전 법안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해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3월 대표발의한 ‘한국산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과 ‘한국수출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본점을 부산광역시에 두도록 했다.
같은 당 김두관 의원이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은 산업은행·수출입은행·기업은행 등에 대해 소재지를 서울시에 두도록 하는 규정을 삭제하고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의해 필요한 곳에 본점을 둘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아울러 지난 2월 김광수 의원(민주평화당)이 국회에 낸 산업은행법·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은 양 기관의 본점을 전라북도에 두도록 명시했다.
이들 법안에 대해 다른 정당 의원들도 공동발의자로 참여하고 있다. 국책은행 모셔오기를 위해 여·야를 가리지 않는 연대 구도가 만들어진 상황이다.
발의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국책은행 지방 이전은 국가균형발전 계획과 맞닿아 있다. 실제로 참여정부 당시 국정과제인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이 추진돼, 현재 152개의 공공기관이 이전을 완료한 상태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중단됐다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시즌2’를 추진 중이다.
송재호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최근 추가 이전 공공기관 대상이 약 200개 정도라고 언급한 바 있다.
현재 혁신도시와 공공기관 이전이 균형발전에 미친 성과를 체계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연구용역이 진행되고 있는데,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결과가 나오는 대로 각 혁신도시별로 보완이 필요한 사항은 없는지, 어떤 방식으로 추가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지 심층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상 수도권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원칙이며, 이는 법적인 절차와 사회적 공감대를 거쳐 추진돼야 하지만, 이에 앞서 과거 지방이전 정책에 대한 종합적인 성과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군불을 지피고 있다. 선봉장은 과거 노무현 정부 때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이해찬 당대표다.
지난해 9월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이 대표는 수도권에 소재한 공공기관 중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이전 대상이 되는 122개 기관(우체국시설관리단, 중소기업은행, 한국산업은행,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공항공사, 코레일네트웍스, 대한체육회, 대한적십자사, 한국환경공단, 학교법인 한국폴리텍,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국제협력단,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 대해 적합한 지역을 선정해 옮겨가도록 당정 간에 협의하겠다고 밝혔었다.
이 대표는 지난 8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시도지사 간담회 자리에서 “공공기관 이전도 차분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고, 다음날인 23일 당대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는 “지역분권과 균형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최근 세종의사당 연구용역이 끝났다. 분권과 균형발전의 중요한 계기로 삼아, 제대로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했다.
김종민·송갑석·심기준·최인호 등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같은 입장이다. 이들은 지난 8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공기관 추가 이전 관련 토론회’를 열고 “자치분권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의 실현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라며 “과거 혁신도시 건설발식을 뛰어 넘는 더욱 정교하고 강력한 공공기관 이전 시즌2를 이뤄내야 한다”며 힘을 모을 것을 결의했다.
민주당은 아예 122개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총선 공약으로까지 검토하고 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지자체장은 물론 지역 국회의원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기에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형국이다.
금융노조 “끝까지 반대”
한편, 국책은행을 비롯한 공공기관을 옮기려는 정치권의 시도를 국책은행 구성원들은 탐탁치않게 보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관계자는 CNB에 “국가균형발전 취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며 “그러나 국책은행을 옮기는 것이 과연 유용하고 올바른 수단인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금융공공기관들은 전국 단위 사업장으로 본점의 경우 전체인력의 10%정도 수준인데 국책은행의 성격이나 주변 금융여건들에 대한 고려 없이 무턱대고 지방으로 옮긴다고 해서 균형발전을 이루고 인위적으로 금융중심지가 된다는 것은 허황된 이상이라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무엇보다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졸속적인 시도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으며, 끝까지 반대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CNB=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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