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기자 | 2019.06.19 14:04:39
문재인 정부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 소득주도성장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혁신성장에 경제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규제개혁, 양질의 일자리 창출, 재벌지배구조 개편 등을 국정운영의 우선 과제로 추진 중이다. 이에 CNB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기업정책들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해 시행을 앞두고 있는 횡령·배임 등 경제범죄를 저지른 총수의 경영 복귀 차단책이다. (CNB=이성호 기자)
총수일가 비리의 피해범위 확대
비리 경영인 발붙일 곳 없게 돼
재계 “예외 인정해야” 강한 반발
문재인 정부가 취임 초부터 주창해왔지만 여태 제자리걸음이던 재벌개혁의 첫 단추가 마침내 꿰어졌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지난 5월 7일 공포돼 오는 11월 8일경부터 시행될 예정인 것. 이번에 바뀐 특경법 시행령 내용은 가히 파격적이다. 경제사범 취업제한 대상 기업에 ‘유죄판결된 범죄행위로 재산상 손해를 입은 기업체’까지 포함시킨 것이다.
일단 특경법에서는 5억원 이상 사기·공갈·횡령·배임, 5억원 이상 재산국외도피 등으로 유죄확정 시 일정기간 취업제한 및 인허가가 금지된다.
하지만 이는 사문화된 규정이다. 시행령에서는 주로 공범이나 범죄행위로 재산상 이득을 얻는 제3자와 관련된 기업체에 대해서만 취업을 제한했기 때문. 특정경제범죄의 경제적·사회적 파급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범죄행위자 본인이 출자한 기업체나 그 계열사 등은 취업제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모순이 발생돼 왔다는 얘기다.
실제로 과거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처벌을 받았지만 특별사면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은 현재 경영일선에 복귀한 상황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등에 따르면, 재벌 총수가 자신이 출자한 기업체 등의 회사를 운영하면서 업무상 횡령·배임죄를 저지르는 경우에 그 기업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돼 다른 주주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경영권을 쥐는 불합리한 측면이 있어 왔다.
이에 정부가 역대 정권이 시도하지 않은 과감한 메스를 꺼내 들었다.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범죄행위로 인해 재산상 손해를 입은 업체까지 확장시킴에 따라 기업의 임직원이 거액의 횡령·배임 등 경제범죄를 저지른 경우 다시 현역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강력한 저지선을 그은 것이다.
즉, 범죄행위자인 총수일가가 출자기업이나 계열사의 임원으로 재직하는 것을 일정기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오는 11월 8일 이후부터 경제범죄를 범해 형이 확정된 사람부터 적용되는데, 징역형의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날부터 5년까지, 징역형의 집행유예기간이 종료된 날부터 2년까지, 징역형의 선고유예기간 등에는 재직 중이던 곳까지 취업을 할 수 없도록 막았다.
또한 승인 없이 취업한 자, 해임요구 불응 기업체의 장은 형사처벌(징역 1년 이하 또는 벌금 500만원 이하)되고, 취업기관에 해임 요구 및 관계 기관에 인허가 취소 요구 조치까지 가능토록 했다.
아울러 법무부는 ‘경제사범 전담팀’을 통해 취업제한 등 위반여부 조사, 위반자에 대한 해임·인허가 취소 요구 및 형사고발 등을 진행함은 물론 취업승인 여부 결정 등을 심의하는 경제사범관리위원회 재도입, 취업제한 대상 기관 정비, 조사 수단 보완 등을 위한 관련 법령 개정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위법 소지 많아…과도한 처사”
사정이 이러자 재계는 긴장감이 역력하다.
반발이 심한데 무엇보다 특정경제범죄자가 출자하거나 재직하는 기업체 등에 대해 일률적으로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며, 현행 특경법에서 취업제한기간 동안 관허업의 허가 등을 받을 수 없게 하는 등 이미 제재가 존재하고 있어 과잉금지원칙에도 위배된다는 것이다.
특히 범죄행위자는 일단 유죄가 선고되면 ‘제3의 기업체에 일반 직원으로 취업’하는 것 외에는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기에 재기 불능 상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CNB에 “모법인 특경법에도 없는 내용을 하위법령(시행령)에 억지로 집어넣어 강행하는 것은 법률의 위임 및 죄형법정주의 위반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배임죄에 대한 기준이 애매한 가운데 이는 기본권 침해이자 경영권 박탈과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받아들이기 어렵고, 여기에 더해 합리적인 경영상의 판단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더라도 의무 위반으로 보지 않도록 하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현재 국회에는 ‘상법 개정안(자유한국당 권성동·윤상직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이 계류중이다. 이 개정안들은 경영진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어떠한 이해관계를 갖지 않고, 상당한 주의를 다해 회사에 최선의 이익이 된다고 선의로 믿어 경영상의 결정을 내렸을 시에는 비록 회사가 손해를 입었더라도 특별배임죄의 예외로 하거나 정상 참작토록 명시했다.
그러나 국회가 개점휴업으로 법안 논의는 아직까지 진척이 없는 상태인 탓에 이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형국이다.
전에 없던 강력한 법 집행이 초읽기에 들어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경제계에서는 자체 연구기관을 통해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으며, 동향 파악 후 적극적인 반발 대응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향후 추이가 예의주시된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