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만들면, 그가 올 것이다.(If you build it, he will come.)”
영화 ‘꿈의 구장(Field of Dream, 1989)’의 줄거리를 관통하는 문구다. 주인공 레이 킨셀라(케빈 코스트너)는 문득 옥수수밭 한가운데서 이 계시를 듣고 농지를 갈아엎어 야구장을 만든다. 이후 그의 야구장에는 전설적인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하나둘 찾아오고, 마침내 그는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사실 위 문구는 오랫동안 IT업계 종사자들을 사로잡아온 계시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서비스, 끝내주는 플랫폼을 만들면 사용자들이 자연스럽게 몰리고, 그 과정에서 이익이 발생해 사업자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된다는 믿음이다.
실제로 ‘꿈의 구장 이론’은 꽤 많은 상황에서 맞아떨어졌다. 인터넷 초기 시절 초고속인터넷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자 그를 활용한 수많은 사이트, 서비스가 만들어졌을 때, 스마트폰 등장으로 모바일 혁명이 시작됐을 때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시기마다 매번 새로운 킬러 컨텐츠(Killer Contents)가 나타나 사용자를 끌어모았다. 검색, 커뮤니티, 상거래, 게임 모든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데 성공한 사업자는 ‘플랫폼 사업자’로 등극, 전리품을 독식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믿음이 조금 흔들리고 있는 듯하다. 이른바 5G 시대 킬러 컨텐츠 부재 논란이다.
3G 시대에는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프로그램이 대중화를 이끌었고, 4G‧LTE 시대에는 유튜브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사용자들의 생활 패턴을 장악했다. 하지만 5G 시대의 경우 전에 없이 빠르고 효율적인 망은 깔렸는데, 딱히 이를 활용한 대중적 킬러 컨텐츠가 눈에 띄지 않아, 소비자들 역시 굳이 5G로 이동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외 이동통신사업자들 사이에서 5G가 4G와 별다른 차별성을 확보하지 못한 애매한 서비스로 남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팽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는 예전부터 5G 활성화의 가장 큰 장애물로 예상돼왔다. 예전과 달리 통신사업자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5G 킬러 컨텐츠를 소개하고 서비스하고 있는 것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재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이통사업자들이 5G의 킬러 컨텐츠로 제시하고 있는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 등이 과연 대중에게 킬러 컨텐츠로 받아들여질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일단 VR‧AR은 스마트폰 만으로는 구현이 어려워 별도의 장비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장비들의 비용이 만만치 않으며, 장비가 있다 해도 낮은 해상도와 어지럼증 문제 등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아 당장은 5G의 구세주가 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5G 킬러 컨텐츠 첫 후보, 구글 ‘스태디아’
그렇다면 가장 먼저 5G ‘꿈의 구장’의 주인공이 될 서비스는 무엇일까?
구글이 제시한 신개념 클라우드 게이밍 시스템 ‘스태디아(Stadia)’가 현재로선 가장 가능성 높은 후보로 예상된다. 지난 3월 20일 구글이 공개한 스태디아는 스트리밍을 활용한 게이밍 시스템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 모니터와 조이스틱 등 조작부만 있으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혁신적인 시스템이다. 게임을 구입할 필요도 없고, 게임기나 그래픽카드 등 게임을 구동하기 위한 비싼 하드웨어를 구입할 필요도 없는 것이 강점이다.
스태디아를 5G의 킬러 컨텐츠로 꼽는 건 5G의 핵심 강점인 속도와 저지연성(Low latency)을 활용하면서도 많은 사용자가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컨텐츠이기 때문이다.
특히 저지연성은 온라인게임을 즐길 때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일반적으로 게임을 원활히 즐기려면 지연속도가 10~50ms(mili second, 1000분의 1초) 사이여야 하는데, LTE나 와이파이, 유선망의 경우 이론적으로는 10ms지만 실제로는 100ms가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해외에 서버가 있는 온라인게임의 경우 200ms 이상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 경우 게이머들은 '게임 랙'이라 불리는 끊김, 지연 현상을 겪게 된다.
5G의 경우 이론상으로는 1ms라는 놀라운 지연속도를 보여주는데, 실제로는 10ms 내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 서버만 있다면 온라인게임 속도가 놀랍게 개선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구글 스태디아의 경우 각국에 게임서버를 둘 것으로 예상되므로, 5G와 연계될 경우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물론 스태디아 역시 실제 사용자 환경에서 검증된 것은 아니고, 모든 게임에 적용되지도 않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현 시점에서는 5G의 킬러 컨텐츠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서비스로 여겨진다.
그 다음은? 역시 ‘꿈의 구장’ 이론이다. 사용자들이 찾아올 것이고, 그들이 알아서 새로운 구장에 걸맞는 놀이 문화를 만들어낼 것이며, 이를 빠르게 포착해 멋진 플랫폼으로 가꾸는 기업이 새로운 스타로 등극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