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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100년-겨레와 함께한 기업③] 창업주 일가의 민족정신 잇는 교보생명

독립운동 자금 댄 대산 가문…해방 후엔 교육보험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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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9.04.18 11:26:14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외벽에 독립운동가 9인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사진=CNB포토뱅크)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현실에도 아랑곳 않고 ‘해방의 마중물’이 된 기업인들이 있다. 소화제를 팔아 독립군 자금을 댄 동화약품 민강 사장, 독립군 자금줄이 된 백산상회 설립에 참여한 허만정 GS그룹 창업주,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박승직 두산 창업주, 직접 광복군이 된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 등 숱한 기업인이 목숨을 걸고 일제에 항거했다. 이에 CNB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이들의 숭고한 발자취를 연재하고 있다. 세 번째는 온 집안이 독립운동에 헌신한 교보생명 창업주 일가 이야기다. (CNB=도기천 기자)

 

관련기사: [겨레와 함께한 기업①] 대한제국의 자존심 ‘동화약품’

             [겨레와 함께한 기업②] 유일한 박사 독립정신 잇는 유한양행·유한킴벌리
 

교보 창업주 일가, 일제침략에 항거
민족시인 이육사 만나 독립운동 투신
해방 후에는 보험사 차려 교육운동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외벽에 독특한 그림이 내걸렸다. 김구, 김상옥, 안창호, 남자현, 안중근, 윤봉길, 여운형, 이봉창, 유관순 등 독립열사 9인의 생전 모습을 현대적 기법으로 표현한 대형 래핑(Wrapping)이다. 가로 90미터, 세로 17미터에 이르는 초대형 초상화다.

앞서 3·1절 때는 100년전 태극기를 재현한 대형 태극기를 게시했다. 독립운동가 남상락 선생이 1919년 4·4만세운동 당시 충남 당진에서 사용한 자수 태극기로, 남 선생 부인이 흰 명주천에 홍·청·검정실로 수를 놓아 손바느질로 만든 것이다.

 

청년 시절 대산 신용호(가운데) 창업주의 형제들. 왼쪽은 셋째 형 신용원, 오른쪽은 넷째 형 신용복. (교보생명 제공)

교보생명이 이처럼 독립의 뜻을 기리고 있는 이유는 창업주 일가가 모두 민족운동에 헌신한 데서 비롯됐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조부 신예범, 백부 신용국, 선친 대산(大山) 신용호 창업주는 모두 일제강점기 때 나라를 되찾기 위해 애썼다.

신예범 선생은 야학을 열어 젊은이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일본인 지주의 농민수탈에 항의하는 소작쟁의를 주도했다.

대산의 큰형인 신용국 선생은 부친(신예범)의 영향으로 스무살 때 3.1만세운동에 뛰어든 후, 전남 영암의 대표적 농민항일운동인 ‘영암 영보 형제봉 사건’ 때 일본 소작인을 응징하고 항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6개월간 수감되는 등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객지로 떠돌았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11월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그에게 독립유공자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이육사와 운명적 만남…민족자본가의 길로

창업주 대산은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집에서 독학으로 초·중·고 과정을 마쳤다. 천일독서(千日讀書)를 통해 1백권의 책을 정독하고, 시장·부두·관공서 등을 둘러보는 현장학습으로 세상을 깨우친 것으로 유명하다.

스무 살에 중국으로 넘어간 대산은 사업가의 길에 들어선다. 여러 독립운동가를 만나 경제적인 도움을 주다가 독립사상가 신갑범 선생의 추천으로 민족시인 이육사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당시 독립군 자금을 모금하던 이육사는 대산에게 경술국치 이전에 벌어졌던 일들을 상세히 거론하며 사업의 중요성과 사업가의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고 전해진다.

대산이 “반드시 큰 사업가가 되어 독립운동자금을 내놓겠다”고 하자, 이육사는 “대사업가가 되어 헐벗은 동포들을 구제하는 민족자본가가 되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산은 1940년 베이징에 ‘북일공사’를 설립해 곡물 유통업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 이때 얻은 수익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신용호 창업주가 1958년 8월 7일 대한교육보험 개업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교보생명 제공)
 

가난한 서민의 꿈…한국최초 ‘교육보험’

일제 치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방 후에는 민족자본가로의 꿈을 키웠다. 특히 한국전쟁을 겪으며 피폐해진 조국을 재건하는 길은 오직 ‘교육’에 있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고, 이는 교육보험 사업에 나서게 된 배경이 됐다.

그는 치열한 연구 끝에 생명보험의 원리와 교육을 접목한 ‘교육보험’ 제도를 창안해 ‘교육보험회사’ 설립에 착수했다.

창립이념은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이었다. 이는 이육사 등 독립운동가들과 오랜 교류를 통해 형성된 민족의식에서 비롯됐다. 교육을 통해 나라의 미래를 이끌 인재를 키우고, 보험을 통해 자립경제의 바탕이 될 자본을 형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하지만 까다로운 행정 절차와 새로운 보험회사를 꺼리는 당국의 태도 때문에 난관에 부딪혔다. 대산은 포기하지 않고 당시 김현철 재무부장관 집 앞에서 반년을 기다린 끝에 그를 만나 설득할 수 있었다.

마침내 1958년 8월 7일 종로의 작은 사무실에서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가 출범했다.

창립과 동시에 ‘진학보험’(교육보험)을 출시했는데 당시로서는 어느 나라에도 없는 독창적인 보험상품이었다. 국민들에게 “매일 담배 한 갑 살 돈만 아끼면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이후 30년간 약300만명의 학생들이 학자금을 받아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개업식 당시 “25년 이내에 우리 회사를 세계적인 회사로 만들고, 서울의 제일 좋은 자리에 제일 좋은 사옥을 짓겠다”고 공언했던 대산의 약속은 앞당겨 지켜졌다. 1967년 창립 9년 만에 업계 정상에 올랐고, 1980년에 광화문에 교보빌딩을 세웠다.

대산이 이룬 보험업계 ‘최초’의 기록들은 한국 보험산업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1977년 국내 최초로 종업원퇴직적립보험을 개발해 퇴직연금시장을 선도했고, 1980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암보험으로 본격적인 보장성보험 시대의 막을 열었다.

이처럼 대산이 보험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며 우리나라 보험산업을 세계 8위권으로 성장시킨 바탕에는 뿌리깊은 민족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총을 들고 일제에 저항했던 무력투쟁의 역사가 책(교육)을 통한 민족공동체의 회복으로 이어졌던 것. 연간 5천만 명이 방문하는 ‘국민책방’ 교보문고는 한국을 방문하는 국빈들이 꼭 거쳐가는 대표적 명소이자 문화공간이 됐다.

 

신용호(왼쪽) 창업주가 1981년 6월 교보문고 개장기념식에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을 맞이하고 있다. (교보생명 제공)

 

혁신·도전으로 생보업계 변화 주도

부친의 뜻을 이은 지금의 신창재 회장은 1996년 서울대 의대 교수에서 교보생명으로 자리를 옮겨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는 2000년 대표이사에 오른 뒤 대대적인 변화와 혁신으로 국내 생보업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변신을 선도하면서도 선대가 일궈놓은 창업정신 계승에는 더 적극적이었다. 교보교육재단과 함께 체험중심·인성개발·지혜함양의 방법을 통해 참사람 육성을 표방한 ‘체·인·지 리더십 프로그램’은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이라는 창업이념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평가된다.

또한 1991년부터 광화문 교보사옥 외벽에 선보이고 있는 ‘광화문글판’은 시민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는 서울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계절마다 국내외 유명 시인들의 작품 글귀로 탈바꿈하고 있는데, 글판의 문안선정은 회사가 아닌 시민들을 대표하는 외부 위원들이 하고 있다.

신 회장은 대산 신용호 창업주가 1996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한 데 이어 22년만인 2018년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기업인 부자가 대(代)를 이어 수상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교보생명은 대산 일가의 민족교육정신을 기리기 위해 학술심포지엄, 백일독서캠페인, 심야책방, 북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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