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기자 | 2019.02.05 10:10:06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는 ‘더불어 잘사는 경제’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데 경제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제 보장, 본사의 횡포로부터 가맹점 보호,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상생, 재벌지배구조 개편 등을 국정운영의 우선 과제로 추진 중이다. 이에 CNB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기업정책들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상법 개정안 이슈 중의 하나인 ‘다중대표소송제도’다. (CNB=이성호 기자)
3년 전부터 차곡차곡 쌓인 법안들
단 1주라도 있으면 대표소송 가능
재계 “경영자율성 침해” 적극 반대
다중대표소송이란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의 이사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제도다.
종속회사에서 이사 등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 지배회사의 주주가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하는 것.
자회사의 손실이 모회사의 피해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모회사(지주회사, 지배회사)의 주주들에게 다중대표소송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국회에는 다중대표소송제를 담은 7개의 상법 개정안(김종인 의원, 채이배 의원, 노회찬 의원, 이종걸 의원, 오신환 의원, 이훈 의원, 윤상직 의원 각각 대표발의)이 계류 중이다.
이 개정안들을 분석한 채이배 의원(바른미래당)실에 따르면, 김종인·이종걸·오신환 의원안의 경우 상법상 모-자회사(50%초과 지분 보유) 관계에 다중대표소송을 적용토록 했고, 지배회사 주주가 소송을 제기하는 데 필요한 지분율은 비상장회사 1%, 상장회사 0.01%로 규정했다.
이훈 의원안 또한 모-자회사 관계에 적용하되 필요지분율은 상장 여부를 불문하고 단독주주권(주주가 단 1주라도 가지고 있으면 소송 등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으로 정했다. 채이배 의원안은 30%초과 지분 보유를 기준으로 지배출자-피출자회사 관계에 다중대표소송을 적용, 필요지분율은 비상장 회사 1%, 상장회사 0.001%다.
노회찬 의원안은 30%초과 지분 보유 기준에 ‘사실상 지배관계’ 기준을 추가해 대상을 보다 확대했으며 단독주주권을 소송 요건으로 명시했고, 윤상직 의원안은 완전모-자회사(100% 지분 보유) 관계에 소제기를 인정, 필요지분율은 상장 여부를 떠나 1%다.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은 2016년부터 차곡차곡 쌓여왔으나 그동안 진전을 보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가 법안 처리에 노력하겠다고 전격 합의하면서 시동이 켜지나 했으나 자유한국당에서는 상법 개정(다중대표소송제를 비롯해 감사위원 분리선임, 집중투표제·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이 기업 활동을 옥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올해 들어 다시금 고삐를 당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신년기자회견에서 “공정경제 법안의 조속한 입법을 위해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를 더욱 활성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법무부도 이 같은 기조에 발맞춰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의 상법 개정을 목표로 국회 입법을 위해 적극 나선다는 방침을 발표한 상태로 김종인·이종걸·오신환 의원안을 지지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재벌총수가 의도적으로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모회사의 부를 이전하더라도 모회사의 주주는 자회사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즉, 피지배회사에 대한 외부견제를 강화하고 지배회사 주주의 보호 등을 위해서 대표소송제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다중대표소송 도입을 적극 촉구하고 있다.
소송 악용 우려…경영권 ‘흔들’
이런 상황이다보니 재계에서는 바짝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빗발치는 소송으로 정상적인 경영 어려워져 상장 지주회사 전체가 흔들린다는 우려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법안별 다중대표소송 도입의 영향(2018년 11월 13일 기준)’ 자료에 의하면 김종인·오신환·이종걸 의원안인 ‘상장 모회사 지분 0.01% 이상 보유’ 및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50% 이상 보유’를 적용 시, 184억4000만원만 있으면 90개 상장 지주회사의 자회사 중 72.1%(408개)의 기업에 다중대표소송 제기가 가능하다.
5억8000만원으로 롯데지주 자회사 중 13개에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20억원만 있으면 자산규모 453조원 규모(2018년 6월말 기준)의 신한금융지주 자회사 14개에 소제기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타 개정안도 예를 들면 ▲노회찬안: LG 주식 1주만 소유해도 LG그룹 모든 계열회사(65개), GS 주식 1주만 있으면 GS그룹 모든 계열회사(40개) ▲채이배안: 1억9000만원만 있으면 SK그룹 자회사 중 14개 ▲윤상직안: 1조8440억원으로 90개 상장 지주회사의 자회사 중 40.5%(229개)의 기업에 제소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
한경연은 다중대표소송은 외국자본의 경영권 침탈 및 기업에게 또 하나의 족쇄가 될 것이며, 특히 이를 적용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고 미국·영국 등은 판례로 인정하지만 완전 모자회사 관계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모회사 주주들이 자회사 이사에 대한 소송을 걸 경우 경영 간섭을 야기해 독립적인 경영권을 침해할 수 있고 자회사 이사의 책임부담 증가로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단기수익을 노리는 투기자본이 모회사 지분을 취득해 자회사의 경영 개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국회 상임위에 전달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상법 등 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는 법 개정이 빠르게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경영 활동을 저해하지 않도록 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CNB에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현재까지 2차례 경영계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며 “다중대표소송제의 경우 계열회사에 대한 간섭 등 부작용 발생이 있을 수 있어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대한상공회의소도 소송 리스크가 확대되고 주주간 이해상충 소지가 있다는 경제계 입장을 국회 상임위에 제출한 상태다.
이밖에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따르면 지배회사의 주주는 종속회사 주주에 비해 적은 수의 지분으로도 자회사의 이사에 대한 대표소송이 가능해 모회사 주주와 자사 주주 간 평등권이 침해될 수 있다.
지배회사의 손해나 인과관계를 산정하기 어려워 종속회사의 손실에 대해 지배회사가 책임을 추궁하기 쉽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이처럼 찬반이 팽팽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시선은 국회로 모아진다. 일단 정부에서는 밀어 붙이고 있으나 보수야당은 경영권 보호장치가 없다며 반대하고 있어 실타래를 풀기는 여간 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경제계에서 경영권 방어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차등의결권(‘1주 1의결권’ 원칙을 벗어나 1주에 더 많은 의결권 부여),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 적대적 M&A에서 공격자를 제외한 주주들에게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 등과 맞물려 논의될지 여부는 지켜볼 일이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