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는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분쟁이 심화되고, 안으로는 내수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올해는 재계에 어느 때보다 힘든 한해였다. 내년에도 글로벌 불확실성 때문에 앞날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연말인사는 ‘성과주의’ ‘선택과집중’ ‘혁신인사’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에 CNB는 재계 ‘얼굴 이동’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보는 <재계 연말 인사>를 연재하고 있다. 두 번째는 LG그룹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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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이재용式 옥석가리기…삼성 스마트폰 핸들은 누가 잡나
40대 젊은 임원들로 ‘미래’ 대비
여성 발탁·외부인사 영입도 적극
파격선임 속 성과주의 원칙 고수
뚜껑을 연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인사는 파격적이었다. 또래인 40대 신선한 인물을 대거 기용하고, 외부인사 영입에도 적극 나서 순혈주의를 깼다. 주축계열사 5곳의 CEO들은 유임해 파격 속에서 균형을 맞추기도 했다. 구 회장의 실험은 ‘LG호(號)’를 어디로 이끌고 갈까?
CEO는 60대, 상무진은 40대
나이를 보면 ‘구心’이 읽힌다. LG그룹은 지난주 계열사별로 이사회를 진행해 2019년 임원 인사를 마쳤다. 그중 가장 눈이 가는 곳은 새로 선임된 상무들이다. 이번에 총 134명이 이 자리에 올랐는데 평균 나이가 48세밖에 안 된다. 그중 가장 어린 송시용 상무는 1979년생으로, 만으로 30대다. LG전자에 따르면 이번 상무 승진 규모는 지난 2004년 완료된 GS 등과의 계열분리 이후 최대다.
이 같은 ‘젊은 피’ 수혈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각 계열사별로 인재를 미리 발탁해 4차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는 한편 ‘CEO 후보풀’을 미리 넓혀놓자는 것.
그러면서 조직안정에도 무게를 실었다. 주력계열사 5곳은 경륜있는 기존 ‘60대 CEO 5인방’이 그대로 이끈다. ㈜LG 권영수, LG전자 조성진, LG디스플레이 한상범, LG유플러스 하현회, LG생활건강 차석용 등 대표이사 부회장이 유임돼 변동없이 자리를 지킨다.
이를 종합하면 ‘미래’와 ‘현재’를 동시에 품자는 전략으로 읽힌다.
외부 전문가 수혈로 인적쇄신
짙었던 순혈주의 이미지도 허물었다는 평가다. LG그룹은 이번 인사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과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재들을 영입해 요소요소에 포진시켰다.
먼저 LG화학 신임 대표이사로는 글로벌 기업 3M 출신 신학철 수석 부회장을 선임했다. 1984년 3M 한국지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신 부회장은 미국 본사의 비즈니스 그룹 부사장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전문 경영인으로 꼽힌다. 회사의 사업영역이 기존 석유화학 중심에서 소재, 배터리, 생명과학 등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사업의 글로벌화와 해외 마케팅 등에서 역량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주)LG는 3명의 외부 인물을 들였다. 우선 홍범식 베인&컴퍼니 대표를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을 담당하는 경영전략팀 사장으로 낙점했다. 자동차부품 팀장은 김형남 한국타이어 연구개발 본부장(부사장)이 맡는다. 김 부사장은 LG에서 육성 중인 자동차부품사업의 포트폴리오를 전략적으로 전개하고, 계열사 간 자동차부품 사업의 시너지를 높이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인사팀 인재육성 담당 상무로는 김이경 이베이코리아 인사부문장이 선임됐다.
LG전자는 VS사업본부 전무로 은석현 보쉬코리아 영업총괄상무를, LG경제연구원은 박진원 SBS 논설위원을 ICT 산업정책 연구담당 전무로 각각 영입했다.
여성 리더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수 년 째 여성 임원 확대를 추진해온 LG그룹은 올해도 7명을 신규 선임했다. 이로써 그룹 내 여성 임원은 29명이 됐다. 이는 지난 2014년 14명에서 두 배 이상 뛴 것이다. LG전자 임원인사팀장 이은정 상무, LG유플러스 CVM추진담당 전경혜 상무 등이 이번 인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외국인 발탁도 있었는데, LG전자 중국동북지역 영업담당인 쑨중쉰이 상무로 선임됐다.
성과주의 입각한 ‘실용’ 인사
외부 전문가 영입 등 깜짝 인사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론 철저한 성과주의에 따른 내부 승진이었다.
이번 임원인사의 총 승진자는 185명이다. 이례적 규모의 상무 승진을 제외하면, 나머지 임원 인사는 평년 수준인 51명이 위로 올라서면서 마무리 됐다. 사장 1명, 부사장 17명, 전무 33명이다. 지난해 사장 5명, 부사장 17명, 전무 40명이 승진했던 것과 비교하면 소폭 줄었고, 사장 5명, 부사장 13명, 전무 31명의 재작년 인사 보다는 조금 늘었다.
이번 인사의 유일한 사장 승진자는 김종현 LG화학 부사장이다. 1984년 LG화학에 입사한 김종현 사장은 경영전략담당, 소형전지사업부장, 자동차전지사업부장 등을 거쳐 올해부터 전지사업본부장을 맡았다. 여기서 자동차 전지 신규 수주를 주도해 사업 성장 기반을 확대한 성과를 인정받아 사장 자리에 오르게 됐다.
구광모 회장, 미래 사업(AI·자율주행) 새판 짜다
구광모 회장이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사업분야에 대한 조직 개편도 이뤄졌다. 당초 신성장 동력으로 집중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인공지능(AI)·로봇과 자율주행·전장 사업 강화를 위해 CEO 직속 기구인 ‘로봇사업센터’와 ‘자율주행사업태스크’를 신설했다.
AI 부문 연구개발(R&D) 강화를 목적으로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지역의 연구조직을 통합해 ‘북미 R&D 센터’도 만들었다. 구 회장이 그리는 ‘뉴 LG’의 밑그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LG그룹 관계자는 CNB에 “지속 성장을 만들어가기 위한 미래 준비와 성과를 중점적으로 고려했다”면서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 심화 등 어려운 경영환경을 돌파하기 위한 실용주의적 인사”라고 말했다.
(CNB=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