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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집안 갈등 없는 SK家… 최태원式 ‘공유 경영’의 뿌리는?

선대회장 뜻 이어 주식증여…대(代) 잇는 ‘형제 경영’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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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8.12.04 11:05:32

형제 간 분쟁으로 얼룩진 한국재벌사에서 최태원 SK 회장의 형제애가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최 회장은 최근 동생과 사촌들에게 1조원어치의 주식을 무상 증여했는데,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선대회장들의 우애를 기반으로 도약한 SK가(家)의 가풍이 배경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CNB가 ‘SK표 가치경영’의 뿌리를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8월 ‘최종현 전 SK 회장 20주기 추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따로 또 같이’ SK家 독특한 가풍
최태원, 친족에게 1조원 주식 증여
‘SK式 공유경제’는 선대에서 비롯


‘재벌(공정거래법상 대규모 기업집단)’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1970년대 이후 한국 재계는 숱한 가족 분쟁으로 얼룩져 왔다.

재벌 1세대의 상징적 인물인 고 이병철(삼성)·고 정주영(현대) 회장 등이 그룹을 이끌던 시절에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지배하는데다 사세를 넓히기 급급하다 보니 집안 갈등을 벌일 틈이 없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2~3세 시대가 본격 도래하면서 재계는 큰 혼란을 겪었다. 그룹이 자식들에게 상속되면서 사분오열되거나, 아예 형제 간에 등을 돌린 사례가 적지 않다. 현재도 일부 기업은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현대가(家)는 2000년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계열분리 사태를 겪으며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해상, 현대백화점 등으로 분화됐다. 롯데그룹은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장남이 연로한 부친을 앞세워 동생 신동빈 회장을 교체하려다 불발에 그친 뒤 지금까지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효성그룹에서는 아들이 아버지와 형을 검찰에 고발하는 일까지 벌어졌고, 금호가(家)는 형제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수년에 걸쳐 여러 건의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재계가 이처럼 비운의 가족사로 얼룩진 가운데,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SK㈜ 주식 1조원 어치(329만주, 4.68%)를 가족·친척들에게 무상 증여해 눈길을 끌고 있다. 동생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166만주)을 비롯해, 사촌 형인 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 유족(49만6808주), 사촌 형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과 그 가족(83만주)에게 주식을 나눠줬다.

앞서 최 회장은 고 최종현 선대회장 20주기를 맞아 설립한 최종현 학술원에 지난달 SK㈜ 주식 20만주(520억원 상당)를 출연하기도 했다.

최 회장의 여동생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도 오빠의 뜻에 공감해 SK㈜ 주식 13만3332주(0.19%)를 숙부(叔父)와 그 가족들에게 증여했다.

이번 증여는 최 회장 취임 20주년을 맞아 이뤄졌다. SK 측은 “그동안 지지해준 친족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고 책임 경영을 하기 위해 지분 증여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SK그룹 형제 경영진 4명이 지난달 12일 한국시리즈 6차전을 관람하며 SK팀을 응원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사진=SK그룹 제공)
 

큰집·작은집 2세들 ‘5형제’로 뭉쳐

최 회장 남매의 이런 행보는 형제애를 바탕으로 성장신화를 이룬 가풍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창업 이래 두 번의 승계과정에서 다른 재벌가들과 달리 잡음이 전혀 없었다.

SK의 전신인 선경그룹은 최 회장의 큰 아버지 고 최종건(1926~1973) 회장이 창업했다. 최 창업주는 1953년 수원에서 선경직물로 사업을 시작해 국내 대표적인 섬유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최 창업주가 1973년 별세하자 사업을 함께 하던 동생 고 최종현 회장(최태원 회장의 부친)이 회사를 맡았다. 이후 에너지, 화학, 정보통신 분야로 사업영역이 확장됐다.

최종현 회장은 조카(최 창업주의 자식)인 고 최윤원 회장, 최신원 회장, 최창원 부회장을 자신의 친아들처럼 돌봤다. 그의 아들들인 최태원 회장, 최재원 부회장과 함께 이들 5명의 2세들은 모두 친형제처럼 지냈다고 한다.

이후 최종현 회장이 1998년 별세하면서 최태원 회장이 30대의 젊은 나이에 그룹을 승계했는데, 당시 집안의 장자인 최윤원 회장(최 창업주의 장남)은 최태원 회장이 형제들 중 제일 뛰어나다며 그룹의 승계자로 추천했다. 가족·친지들 또한 만장일치로 최태원 회장에게 지분을 몰아줬다.

이런 점에서 재계에서는 최 회장 남매의 이번 지분 증여를 ‘미뤘던 분배’로 보고 있다. 최 회장은 최근 가족 모임에서 “IMF 등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부터 오늘날까지 함께하며 한결같이 성원해준 친족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지분증여를 결심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5명의 2세들 중 최윤원 회장은 고인이 되었지만, 나머지 네 사람은 그룹경영에 있어서는 물론 평소에도 끈끈한 우애를 과시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한국시리즈 6차전 때는 다함께 잠실 야구장을 찾아 SK팀을 응원했으며, 지난 8월 최종현 선대회장의 20주기 사진전과 추모전 때도 한자리에 모였다.

SK출신의 한 재계 관계자는 CNB에 “최종현 선대회장은 자기 자식이나 조카나 차별 없이 품에 안았다”며 “이런 가풍이 오늘날 ‘사촌 경영’이라는 SK만의 그룹 문화를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최종현 회장(가운데)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폐암수술 직후라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해 경제위기 극복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SK그룹 제공)

 

최종건·최종현 선대회장 유지 이어

이처럼 최태원 회장 일가가 작은 잡음조차 없이 20여년 간 그룹을 이끈 데는 선대회장의 경영철학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재계에서 ‘사회적 나눔’의 상징으로 통하는 기업인이다. 그는 생전 ‘사람을 키우듯 나무를 키우고 나무를 키우듯 사람을 키운다’며 인재양성에 헌신했다. 1974년 사재를 출연해 한국고등교육재단(이하 교육재단)을 설립해 매년 수십명을 선발해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고, 1973년 시작된 고교생 퀴즈 프로그램인 장학퀴즈를 단독 후원했다.

폐암으로 타계하기 직전에는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겨 울림을 줬다.

최태원 회장은 선대회장의 유지를 이어 1998년부터 교육재단 이사장을 맡아 장학사업에 힘쓰고 있다. 선친 때부터 현재까지 지원 받은 장학생은 3500여명에 이른다. SK는 일체의 대가나 요구 없이 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최종현 선대회장은 사후인 1998년에, 최태원 회장은 2017년에 각각 코리아 소사이어티(Korea Society)로부터 한미 간 우호와 협력의 상징인 ‘밴 플리트’상을 수상했다.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영예를 얻게 된 것은 상이 제정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밴 플리트상은 제2차세계대전과 6·25때 큰 공을 세운 제임스 밴 플리트(James Alward Van Fleet, 1892∼1992) 미 육군 장군을 기려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제정·시상하고 있는 상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재계에서 소탈하고 격 없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난 9월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최 회장이 평양 대동강변을 배경으로 구광모 LG 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부터)을 기념촬영 해주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특히 최 회장은 우리나라 사회적기업 시장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이른바 ‘10만 사회적기업 양성’의 비전을 갖고 있다. 그는 빈부격차와 실업 등 우리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공유 경제’라 믿고 있다.

SK는 전사적으로 이를 실행하고 있는데, SK에너지가 GS칼텍스 등과 합작한 주유소 인프라 기반 택배서비스 ‘홈픽’이 대표적이다. 전국 주유소들을 물류기지로 활용해 청년들의 창업 지원, 실버 택배 등 일자리를 창출하는 플랜인데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가 동참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협력사와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 육성을 위해 만든 공유인프라 포털도 비슷한 사례다.

금융네트워크 형태의 공유 프로젝트도 활발하다. SK는 매년 100여개 안팎의 사회적기업을 선정해 ‘사회성과 인센티브’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130개 기업에 73억원을 보탰다. 최근에는 신한금융그룹과 200억원 규모의 사회적 기업 전용 민간펀드를 만들어 유망한 회사들의 지원에 나섰다.

이처럼 최 회장이 친족에게 주식을 나눠준 데는 선대회장의 상생 정신과 여기서 비롯된 공유경제의 틀이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80~90년대 최종현 선대회장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홍주관(73) 전 SK증권 대표이사(선경증권 출신)는 CNB에 “선대회장들(최종건·최종현)의 선행을 자식들이 보고 배우며 자랐고, 이들이 오늘날 ‘따로 또 같이’라는 경영이념 아래 그룹을 이끌고 있다 보니,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소소한 갈등도 없다”며 “그런 면에서 보면 최태원 회장이 1조원의 주식을 나눠준 것이 특이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기업의 영리추구라는 의미에서 더 나아가 ‘나눔’과 ‘화합’을 강조한 선대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단 얘기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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