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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희망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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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18.12.03 16:29:51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

대지가 얌전하게 식어가던 지난 봄, 미국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향년 89세. 생전 그는 단출한 표어문자 시리즈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장 유명한 건 1960년대 연작으로 선보인 'LOVE'. 알파벳 'L'·'O'·'V'· 'E'를 두 개씩 쌓고, 'O'를 살짝 기울인 형태의 작품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의 문장이 박힌 소품들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스타’ 로버트에 대중은 열광했다. 하지만 구름 위로 떠오른 것도 잠시. 그를 심연으로 끌어당기는 일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LOVE'는 그의 작품이었으되, 온전히 그의 것은 아니었다. 저작권 등록을 미룬 새 'LOVE'는 아무렇게나 복사돼 퍼져나갔다. 당연히 ‘사랑’에 무임승차해 돈을 챙기는 사람도 많아졌다. ‘짝퉁’이 범람하는 동안 응분의 대가조차 받지 못했음에도 예술계는 그에게 ‘상업적’이라는 낙인을 찍어 상처를 준다.

‘사랑’에 다친 로버트는 돌연 사라진다. 1978년, 자신을 밤하늘 별처럼 떠받들던 거대 도시 뉴욕을 등지고 바이널헤이븐섬으로 들어가 칩거한다. ‘은둔 작가’란 별칭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다시 속세에 등장하기까지는 30년. 2008년 미국 대선 당시 버락 오마바 후보에게 'LOVE'와 비슷한 ‘HOPE’를 선물하면서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정치 구호로 ‘HOPE’를 내세운 오바마는 사상 첫 미국의 흑인 대통령이 된다. 외딴섬에서 로버트 인디애나가 소리없이 품은 희망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희망’이란 응당 이 정도 스케일에 적용하는 말이 아닐까? 역사에 남을 사건을 이루는 것처럼, 목놓아 갈구하던 일의 실현. 그래서 그것은 대개 가닿을 수 없는 욕망과 일치한다. 눈앞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으나, 언젠가 거머쥘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로 자위하다 지쳐 주저앉고 마는 것. 희망의 형상은 성사의 가능성이 희박해질수록 커진다. 이 단어가 싫은 이유는 티끌 같은 기대가 주는 허망함 때문이다.

그런데, ‘희망 회의주의자’에게 선각자들은 자꾸만 충고한다. 실현이 아니라 품는 과정에서 가치를 찾으라고.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루쉰은 단편 ‘고향’에서 말한다.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에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20년 전 영화 ‘쇼생크 탈출’을 기억하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탈옥한 앤디가 쏟아 붓는 비를 두 팔 벌려 맞아들이는 모습, 건물 지붕 보수 작업을 하던 수감자들이 교도관이 준 차디찬 맥주를 따스한 햇볕 아래서 자유로이 마시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앤디의 편지 속에 있다는 사실을 스무 살을 더 먹고서야 알게 됐다.

동료 수감자였던 레드에게 앤디는 출소하면 미리 일러둔 장소로 찾아와 상자를 열어보라고 한다. 그 안에는 돈다발과 편지가 들어있다. 젊은 시절 저지른 죄의 대가로, 가망없는 노구만을 이끌고 사회에 나온 레드는 이런 메시지를 읽는다. “기억해. 희망은 좋은 거야. 모든 것 중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몰라. 좋은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Hope is a good thing.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a good thing never dies).” 이윽고 결심한 레드는 앤디가 사는 자유의 나라로 그를 만나러 간다.

한 해가 저물어 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이 때, 두 제언은 희망이란 미래에만 있지 않고, 현재에도 있으며, 지나온 시간에도 흩날려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당초 간직했던 숱한 염원이 올 한해 걸어온 길에 얼마나 버려졌는지 모르겠다. ‘흑인 대통령’처럼 짐짓 허무맹랑한 꿈이라도 “사라지지 않는 가장 좋은 것”이라면 거둬들일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백세희 에세이 속, ‘참을 수 없이 울적한 순간’에도 생각나는 ‘떡볶이’ 같은 위로와 희망은 도처에 있다는 사실도 함께.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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