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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무단통치 10년 뒤에도 日 선의 믿다가 또 속은 3.1운동 이광수-최남선…21세기 우린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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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영태기자 |  2018.11.16 17:42:14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내년이면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얄궃은 기사가 어제(15일) 터져 나왔다. 유명한 역사 강사인 설민석 씨가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민족대표들에 대해 “낮술” “룸살롱” “친일” 등의 표현을 써가며 설명한 것에 대해 유족들이 설 씨를 고발해 명예훼손죄로 벌금 1400만 원 판결을 받았다는 기사였다.

법원의 판결은 설 씨의 발언에 대해 “허위로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러나 심하게 모욕적인 표현으로 후손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 또 ‘민족대표 대부분이 친일을 했다’는 표현은 사실과 달라 명예훼손에 해당하므로 총 1400만 원을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법원의 해석은, 설 씨의 주장 중 팩트와 다른 부분은 ‘민족대표 대부분이 친일을 했다’는 것뿐이고, 일부 친일을 한 경우가 있으며 또한 설 씨의 발언이 모두 팩트와 어긋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준 셈이다. 그래서 유족들은 ‘(설 씨의 발언을) 허위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판결에 대해 이미 항고한 상태라고 언론들은 전했다.

서명자 33명의 ‘대부분’ 친일을 했는지 여부는 논란거리겠지만, 3.1운동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최남선과, 이에 앞서 2월 8일 도쿄에서 2.8독립선언서를 쓰고 낭독한 이광수가 모두 ‘주요한 친일파’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광수, 최남선 두 사람(홍명희와 함께 ‘조선의 3대 천재’ 소리를 듣던)에 대해서는 “젊었을 때는 조선 독립을 위해 애썼지만, 일제의 횡포가 심해지면서 1930년대 후반 이후 말년에 친일을 했다”는 생각을 많은 한국인이 갖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의 평가, 즉 친일의 싹은 이미 두 사람이 쓴 독립선언서에 나와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일본 지식인 중 ‘양심적 친한파’로 알려진 전 도쿄대 교수 와다 하루키는 저서 ‘한일 100년사’에서 이광수의 2.28 독립선언서에 대해 “우스꽝스럽다”는 ‘난폭한’ 표현을 썼다. 2.8독립선언서에서 이광수가 펼친 논리, 즉 ‘러일전쟁에서 조선은 자신의 주권까지도 희생해가면서까지 일본과 손잡고 러시아에 맞섰는데 일본은 러시아에 이기고 나서는 조선을 배반하고 무력으로 조선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들었으니 괘씸하다’는 논리가 우스꽝스럽다는 얘기다.

하루키 교수는 이광수의 이 논리에 대해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은 병합 직전에 나온 것이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1919년의 2·8선언에 그런 논리를 되풀이하는 것은 문제다”(68쪽)라고 꼬집었다.

러일전쟁 연구 전문가인 하루키 교수는 단언한다. “러일전쟁을 연구해온 내가 보기로는 [중략] 일본은 조선의 주권을 빼앗기 위해서 러일전쟁을 한 것이다. 한반도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러시아와 싸웠다는 것은 선전 문구에 불과했다”고(67~68쪽).

 

와다 하루키 교수. (사진=위키피디아, 촬영 = suganuman)

그런 러일전쟁(1905년)에서 일본이 이긴 뒤 조선을 강제병합(1910년)하기 전의 안중근 의사라면 “이렇게 신의를 배반할 수 있냐?”고 항의할 수 있지만, 이미 1910년에 나라를 빼앗기고 10년간 무자비한 총독부 정치를 경험한 뒤인(그래서 민중의 분노가 3.1운동으로 터져나온) 1919년 시점에서도 이광수가 10년 전 안중근처럼 “일본이 이렇게 신의를 저버릴 수 있냐?”고 항의하는 게 너무 우스꽝스럽다는 게 친한파 하루키 교수의 한탄이다.

흔히 한 번 속는 건 속이는 사람이 나쁘지만, 똑같은 속임수에 두 번 이상 속는 건 속는 사람이 나쁘다고 한다.

이광수는 ‘조선 민족이 홋카이도의 아이누족처럼 미개한 민족이 될까’를 두려워했다. 미개한 토인으로 남는 걸 두려워했다. 그러나 역사적 팩트는, 일본제국주의는 조선과 홋카이도를 똑같은 방식으로 먹었다. ‘조선인=아이누’가 일본인이 아는 공식이며, 조선인은 이미 아이누와 똑같은 신세가 됐는데도 이광수는 “조선 민족은 아이누처럼 되서는 안 된다”며 민족을 개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니 요즘 말로 ‘썩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저명한 일본의 문학연구가-철학자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에 이렇게 썼다.
일본 식민지 정책의 원형은 홋카이도에 존재한다. 아이누와 일본인의 동조론 등장”(12쪽)이라고.

 

아이누족 남자의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즉 일본 본토(本州, 메인랜드)의 침략자들은 홋카이도를 식민지로 먹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아이누와 일본족은 역사적으로 동족(同祖同根: 조상이 같고 뿌리가 같다)이다. 그러니 우리와 나라를 합치는 게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논리를 폈고, 논리와 총칼을 함께 동원해 홋카이도를 일본 영토에 편입시켰다.

똑같은 ‘동조동근’ 논리를 들이대면서 조선을 일본이 잡아먹었지만, 홋카이도 식민지화 과정을 모르는 이광수를 비롯한 조선의 지식인들은 10년 전이나 10년 뒤나 한결같이 “일본을 믿었는데 일본은 왜 이러냐?”를 목놓아 외쳤다는 소리다.

이런 평가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은, 요즘도 한국인은 ‘외국을 먼저 믿는’ 착한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사례다. 얼마 전 미국의 대형 식품 관련 회사가 북한에 ‘몰래’ 들어가 모종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슬슬 퍼지더니 결국 그 주인공은 세계 최대의 곡물회사 중 하나인 카길로 드러났다. 카길을 북한에 보내 공작을 펼치던 와중에 미국 트럼프 정부는 철도 관련 남북 접촉은 물론 기업 의 사소한 접촉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러면 안 돼!”라는 경고를 여러 번 내보냈다.

 

카길 등 미국 업체의 '몰래 북한 방문'을 보도한 동아일보의 지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이럴 수 있다. 미국이 보기에, 한반도는 미국이 일본과 전쟁 끝에 해방시킨 땅이다. 남한인들은 상해 임시정부가 활동해 남한을 해방시킨 것으로 착각하도록 교육받고, 북한인들은 김일성 빨치산 부대가 일본군에 승리해 조선반도를 해방시킨 걸로 착각하도록 세뇌받지만, 역사적 팩트는 미국이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과 싸워 흘린 피,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원자폭탄 두 발이 일본의 옥쇄(죽을 때까지 싸운다) 의지를 꺾고 한반도를 해방시켰다. 물론 당시 소련의 참전 역시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기여하기는 했다. 그래서 미국 전략가들의 머릿속에는 ‘한반도 전체는 우리의 땅이며,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그 땅은 우리가 접수한다’는 게 아마도 상식일 것이다. 미국의 이런 생각은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북한을 자기 영역으로 생각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미국 기업을 북한에 들여보내 교섭을 벌이면서도 ‘제3자’인 남한에 대해서는 “어딜 넘봐!”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게 미국의 이익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 붕괴 시 한국과 미국 등 인접 4개국이 북한 영역을 넷으로 나눠 분할통제하는 방안이 검토됐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채널A TV 화면. 그러나 미국의 진짜 속마음은 "피흘려 일본제국주의를 패망시킨 것은 미국이므로, 북한 정권이 붕괴할 때 가장 우선권을 갖는 것은 미국"이란 사실은, 그간 부분적으로 알려진 바 있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한국의 이른바 보수 언론들이다. 미국에서 이런 신호를 보내면 바로 한국의 보수 언론들은 스피커의 볼륨을 높인다. “왜 미국 말을 안 듣고 한미동맹에 균열을 내 나라를 거덜내려고 하느냐”며 한국 정부를 혼내는 식의 보도들이다.

3.1운동 독립선언서 서명자들의 ‘대부분 친일’ 문제는 앞으로 법정 투쟁이 계속된다니 그 자체로 주목거리다. 그런데, 100년의 시간이 지나도록 아직도 한국인들은 ‘착한 정치인’을 지치지도 않으면서 찾고 있고, ‘착한 외국을 우선 무조건 믿어보자’는 태도를 버리기 싫어하니, 하루키 교수의 아들-손자 세대 학자들로부터도 “세 번, 네 번째까지 계속 속는 한국인들은 참말로 환장하게 우스꽝스럽다”는 평가를 받지 않을지 벌써부터 얼굴이 뜨끈뜨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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