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는 ‘더불어 잘사는 경제’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데 경제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제 보장, 본사의 횡포로부터 가맹점 보호,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상생, 재벌지배구조 개편 등을 국정운영의 우선 과제로 추진 중이다. 이에 CNB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기업정책들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국민연금공단의 주식대여 논란이다. (CNB=이성호 기자)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22일부터 국민연금의 주식 신규 대여를 중지했다. 사진은 23일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가운데)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공단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작전세력 뒷돈 댄다” 비난 커져
여론 거세자 일단 주식대여 중지
“증시활성화 역행” 반대 목소리도
“내부 토론을 거쳐 주식 신규 대여를 중지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최근 전주 공단본부에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같이 밝혔다. 이른바 ‘공매도’로 활용되는 주식 대여의 일시적 중단을 알린 것. 계속 중단할지 여부는 향후 검토해 결정할 예정이다
공매도(空賣渡, short selling)는 말 그대로 보유하고 있지 않는 증권을 차입해 매도하는 투자기법이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현재가 1만원인 A증권의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A증권을 빌려서 1만원에 공매도하고, 향후 실제로 5000원으로 떨어지면 시장에서 이 가격으로 재구입해 증권을 상환하면 주당 5000원의 시세차익이 발생하는 구조다.
크게 무차입공매도(소유하지 않은 증권의 매도)와 차입공매도(차입한 증권으로 결제하는 매도)로 나눠지는데 무차입공매도는 결제 불이행의 위험이 크고 투기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세계적으로 금지되거나 강하게 제한되고 있다. 반면, 차입공매도의 경우는 대부분 국가에서 인정되고 있는 일반적인 증권투자 거래방식이다.
국내에서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서 제한적으로 차입공매도를 허용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에서는 자본시장법은 물론 국민연금법에 따른 국민연금기금의 운용방법 중 하나로 ‘증권의 대여’가 규정되고 있어 대여거래를 중개기관을 거쳐 실행해 왔다.
장정숙 의원(민주평화당)에 따르면 연금공단의 2013년~2018년 6월까지 국내주식 대여 신규체결 수량은 총 24조8256억원이다. 이 기간에 주식대여를 통해 약 689억원의 수수료 수입을 얻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익의 포기를 놓고 저울질 하고 있는 것.
연금공단 측은 우선 지난달 22일부터 신규 대여거래를 중지했고 기존에 대여된 주식의 경우에는 차입기관과의 계약관계를 고려해 올해 연말까지 해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즉 당분간 정지한다는 얘기로 애초에 공단에서는 의결권행사를 위해 매년 12월말까지 전액 회수조치하고 있다.
이처럼 법상 하자가 없는 주식대차를 잠시라도 접는 이유는 뭘까.
일단 공매도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 부작용 우려가 큰 가운데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가 약 300개에 이르는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이 공매도 세력의 종잣돈 창구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장정숙 의원은 “국민연금이 주식대여를 통해 공매도의 판을 키웠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며 “이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은 피해를 보고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등에 따르면 공매도를 하는 투자자가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루머를 유포하는 등의 방식으로 인위적으로 특정 종목의 가격하락을 도모할 수 있으며, 이는 해당 종목의 주식을 보유한 일반투자자들의 손실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주가 하락 시기에 공매도까지 발생하는 경우에는 주가 하락폭이 더욱 커져 금융시장 변동성을 더욱 확대하고 일반투자자들의 손실이 더욱 가중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에서는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을 공매도 세력들에게 빌려주면, 이들은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이는 반면, 국민들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과 개인투자자의 손실로 나타나 국가경제와 주식시장까지 침체시킨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실련과 희망나눔 주주연대가 지난달 22일 리얼미터에 의뢰해 국민연금 주식대여 금지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찬성’(매우 찬성 47.7%, 찬성하는 편 28.4%) 응답이 76.1%로 집계됐다. ‘반대’(매우 반대 3.1%, 반대하는 편 10.0%) 응답은 13.1%에 불과했다.
주가가 떨어질 때 수익이 나는 주식 공매도 제도로 인해 주가하락을 부추기는 악성 루머가 확대, 이에 건전한 기업들조차 기업가치가 부당하게 떨어져 결국에는 미래 주력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주장에 대한 공감여부 조사에서는 ‘공감한다’(매우 공감 34.5%, 다소 공감 32.6%)는 응답이 67.1%였다.
▲국민연금 주식대여 금지에 대한 국민여론(조사기간: 10월 22일, 조사대상: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42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0%p). (자료=리얼미터)
‘주식대여 금지법안’ 탄력 받을까
이처럼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져 가고 있는 가운데 국회에는 관련법이 계류 중이다. 권미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국민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국민연금기금을 공매도에 활용하지 못하게 함이 골자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상당하다.
상임위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수익성 확보에 한계가 발생할 수 있고, 시장 유동성 확보 및 가격 결정에 있어서의 효율성 제고 등 공매도를 통한 긍정적 기능까지 지나치게 제약될 수 있다는 것.
유가증권 대차거래는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 주가 하락기에도 대여수수료를 통한 일정한 이익을 창출하게 할 수 있는 등 위험관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수익성의 원칙(가입자의 부담 완화를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수익을 추구해야 한다)에도 맞지 않는다.
아울러 연금공단에 따르면 일평균 대여잔고를 기준(금융투자협회 공시 통계 기준)으로 2017년도 국내주식 대여시장(66조4040억원)에서 국민연금 대여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월말 평균잔고 기준 약 4480억원)은 0.68%다.
이처럼 비중이 크지 않아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주거나 왜곡을 유발한다고 보기 곤란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연금공단 내에서 주식대여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국감 시즌을 맞아 뭇매를 당하자 ‘잠시 포기’라는 카드를 내민 셈인데 다시 진행할 지는 지켜볼 일이다.
공단 관계자는 CNB에 “국민연금의 주식 대여거래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다음에 재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현재 신규 대여거래를 중지했고 기존 것도 연말까지 회수할 예정임에 따라 해가 바뀌고 난 후 수익·안정성 등을 따져 최종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회에는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모든 차입공매도에 대해 ▲상환기한을 60일로 제한 ▲공매도를 하는 자(투자중개업자를 통하는 경우 포함)의 유상증자 참여 금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허용(코스닥시장 등에서 공매도 금지) 등 메스를 가한 ‘자본시장법 개정안(홍문표·박용진·김태흠 의원 각각 대표발의)’도 올라와 있다.
국민연금의 조치를 계기로 국민연금법 개정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맞물려 전반적인 공매도 제도가 손질될지 추이가 주목된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