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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오지라퍼·프로 불편러 만연한 세상에 ‘삐삐’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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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기자 |  2018.10.15 11:41:27

10주년 기념곡으로 ‘삐삐’를 발표한 가수 아이유.(사진=카카오M)

노래 제목이 ‘삐삐’라기에 90년대 대표 통신수단이었던 삐삐를 지칭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90년대 복고 감성을 담은 노래일 줄 알았는데 아이유가 꺼내놓은 ‘삐삐’는 2018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귀여운 경고음이었다.

 

아이유의 감성적인 목소리에 멜로디까지 경쾌하게 어우러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특히 “쟤는 대체 왜 저런 옷을 좋아한담. 기분을 알 수 없는 저 표정은 뭐람. 태가 달라진 건 아마 스트레스 때문인가” 등의 가사가 눈길을 끈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연예인인 아이유가 감당해야만 했던 일들이 가사에서 느껴진다. 특히나 데뷔 때부터 씌워진 ‘국민 여동생’ 이미지로 항상 착한 아이처럼 행동해야 했던 압박감에도 시달렸을 터. 하지만 어느덧 훌쩍 자란 아이유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뒤로 하고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거리 유지해” “정중히 사양할게요”라고 경고를 보낸다. 불편한 걸 불편하다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예의를 지키는 정중한 사양이다.

 

‘삐삐’ 노래는 아이유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겠지만 꼭 아이유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느껴진다. ‘삐삐’는 10일 오후 6시 발표 직후 국내 다수의 음원사이트에서 1위에 올랐고, 발표 23시간 만에 멜론 이용자수 142만을 돌파하며 멜론 역대 최고 이용자수(24시간 기준) 신기록을 세웠다. 여기엔 ‘믿고 듣는 아이유’의 힘도 있지만 가사에 공감한 사람들도 많다.

 

연예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타인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굉장히 ‘가깝게’ 살아간다. 인터넷만 켜도 당장 전 세계의 정보를 볼 수 있고, 여기에 댓글을 달며, SNS 등을 통해 바로 소통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 거리가 가까워도 너무 가까워진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됐지만,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않고 무차별적인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크게 오지라퍼, 프로 불편러, 악플러 등으로 이야기된다.

 

오지라퍼의 경우 “당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는 전제가 대부분이다. 공적인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지적받아야 할 상황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만, 사적인 영역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흔히 볼 수 있는 예로 상대방에게 “옷 되게 안 어울려” “다이어트 좀 해야겠다” 등 외모에 대한 지적을 한다거나 “연애는 언제 할 거야?” 등 훈수를 놓는 식이다. ‘비디오스타’에 출연 중인 김숙은 방송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뜬금없이 팔을 툭 치며 ‘언제 결혼할거야?’ ‘빨리 아이 가져야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개인의 사정은 타인이 알 수 없는 것이지 않냐. 이건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상대방을 생각한다는 이유로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과한 오지랖은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남길 수도 있는, 배려가 아닌 무례한 행동이다. “탐색하는 불빛” “오늘은 몇 점인가요?” “당신의 비밀이 뭔지 저마다의 사정 역시 정중히 사양할게요”라는 ‘삐삐’의 가사는 이런 오지라퍼들에게 정중하게 “선 넘지마”라고 경고하는 세련됨이 느껴진다.

 

프로 불편러는 겉으로 봤을 땐 합리적인 비판으로 보이는 것 같지만 심한 꼬투리를 잡을 때가 많다. 경우가 지나칠 경우 악플러로 대변되기도 한다. 논리도 이유도 없이 상대방을 상처주기 위한 목적으로 쏘아대는 말. 하지만 과거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만연했던 사회 분위기에서는 이를 참는 경우가 많았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참을 인(忍) 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지금은 “참을 인이 세 번이면 호구”라는 말이 더 유명하고, 연예인들도 악플러들을 선처 없이 고소하기 시작했다. 참고 넘어가면 괜찮다고, 방긋 웃던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 이야기를 할 거면 매너 좀 갖추고 이야기하자”고 정색하기 시작한 것.

 

개인적으로도 돌이켜보면 분명 듣기 싫었던 말들이 있었다. 예컨대 “너 얼굴 부었다. 몸이 안 좋아?” “피부가 푸석푸석해졌어” “주근깨가 더 많아졌다”는 말에도 방긋 웃으며 대처했고 “연애 좀 해야지”라는 말에도 “그러게요”라고 대처했다. 하지만 내 자신의 마음을 위해 이런 불편한 말들에 거절과 정색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것도 ‘정중한’ 거절. 무차별적으로 분노와 불편함을 쏟아내면 그저 악순환을 되풀이 하는 격이니. 직업적으로 오지랖이 넘치는 글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조차 오지랖 같지만, 아이유의 ‘삐삐’를 듣고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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