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는 ‘더불어 잘사는 경제’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데 경제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제 보장, 본사의 횡포로부터 가맹점 보호,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상생, 재벌지배구조 개편 등을 국정운영의 우선 과제로 추진 중이다. 이에 CNB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기업정책들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애플사가 신형 아이폰 판매를 늘리기 위해 소비자를 기만한 ‘아이폰 고의 성능저하 사건’에 따른 재발 방지 대책이다. 이제 막 법안 논의가 시작돼 시선이 쏠린다. (CNB=이성호 기자)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아이폰 고의 성능저하 사건’과 관련해 조만간 국과수에 아이폰 샘플을 추가로 제출할 예정이다. (사진=연합뉴스)
제품성능 변경시 ‘정보제공’ 의무화
국회 법사위, 관련법 개정 논의 중
삼성·LG전자·애플사 핸드폰에 적용
하반기 원구성을 마친 국회 정무위원회는 최근 전체회의를 열고 전재수 의원(더불어민주당)·신용현 의원(바른미래당)이 각각 지난 1월과 3월에 대표발의한 ‘소비자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상정, 검토보고 등을 거쳐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했다.
이 개정안들은 물품 등 성능 변경 시 사전 정보제공 의무화가 골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재수 의원안은 사업자가 물품 등을 공급한 후에 그 성능 등을 변경하려는 경우에는 해당 정보를 소비자에게 사전에 제공토록 명시했다.
신용현 의원안도 사업자의 정보제공 의무 대상에 이미 공급한 물품 등의 부품·소프트웨어 등의 변경에 따른 정보를 포함하도록 했다.
이 같은 개정안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른바 ‘아이폰 고의 성능저하 사건’에 따른 재발 방지 책 차원이다. 앞서 애플사는 구형 아이폰(6·SE·7시리즈)을 대상으로 iOS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하면서 일부러 성능 저하를 유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였다.
소비자들의 의심의 눈초리가 커지자 애플사는 지난해 12월 성명을 통해 “리튬 이온 배터리는 잔량이 부족하거나 추운 곳에 있을 시 전원공급에 차질이 발생, 기기를 보호하기 위해 갑자기 아이폰이 꺼질 수 있다”며 “갑작스러운 전원 종료를 막기 위해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iOS)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이폰의 두뇌에 해당해 통신 속도 및 명령부터 반응까지 소요되는 시간 등에 관여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기능을 떨어트린 것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이에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애플 대표인 팀쿡 및 애플코리아 대표인 다니엘 디시코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아이폰 사용자로 1차(1월) 109명, 2차(3월) 401명의 원고인단을 꾸려 손해배상(각 220만원, 교체비용 120만원+위자료 100원)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애플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시 속도·기능을 저하시킨다는 설명도 없었고, 제품판매 시 사용설명서에 표기도 전혀 하지 않아 불편과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애플사의 고의적인 행위로 인해 아이폰이 손괴됐고, 아이폰을 사용한 업무를 방해했다며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재물손괴 및 컴퓨터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형사고발했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소비자감시팀장은 CNB에 “소송은 아직까지 서면 공방 중으로 재판기일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형사고발건 관련해서는 지난 6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소송 의뢰인들이 사용하는 아이폰의 샘플을 요청해 여러 대를 제출했으나, 최근 수가 부족하다고 알려와 추가로 더 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과수에서 애플사의 아이폰을 특정해서 정밀검사 결과를 발표하려면 충분한 샘플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으로, 소비자주권 측에서는 향후 수사절차에 따른 이러한 검증데이터가 민사소송에서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밖에도 법무법인 한누리는 지난 3월 서울중앙지법에 애플 본사·애플코리아를 상대로 6만3767명을 원고로 하는 손해배상(원고 1인당 20만원, 총 127억5340만원) 청구 소송을 냈다.
▲국회에는 성능 변경 시 사전 정보제공 의무화를 골자로 한 ‘소비자기본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사진=CNB포토뱅크)
“강한 처벌규정 없으면 무용지물”
이처럼 소비자 소송의 결과가 어떻게 매듭지을지 예의주시 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사후 얘기다. 따라서 같은 사례가 반복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법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법은 사업자에게 물품 등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성실하고 정확하게 제공할 책무를 부여하고 있다. 반면 소비자가 물품을 구매한 이후에 부품을 교체하거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등의 경우 이와 관련한 정보를 제공할 책무는 부여치 않고 있다.
이번에 국회 정무위 법안소위에 회부된 ‘소비자 기본법 개정안’은 애플사 때문에 발의됐지만 법안심사절차를 거쳐 최종 통과될 경우 삼성전자·LG전자 등 모든 핸드폰 제조사에게 사전 정보제공 강제화가 적용된다.
정무위에 따르면 이 개정안은 4차 산업혁명시대에 사물인터넷(IoT) 등 새로운 형태의 기술 분야와 관련된 물품 등에 있어 의도적인 기능 저하로 소비자의 피해 발생 가능성이 예측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각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개정안과 관련해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항을 책무대상으로 명시, 의무이행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측면에서 동의하는 입장이다.
찬성은 하되 처벌 규정이 미약하면 “있으나 마나”하다는 견해도 있다.
소비자단체에서는 위반을 해도 얻는 이익이 더 많다면 기업에서는 이를 무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하위법령 등을 통해 어길 경우, 처벌 등 강력한 제재방안이 수반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편, 스마트폰 등은 시스템상 주기적·자동적으로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제조사가 고지를 했더라도 소비자가 그 세부내용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외려 면죄부를 줄 공산도 있어 보여 향후 법안 처리과정에 시선이 쏠린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