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는 ‘더불어 잘사는 경제’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데 경제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제 보장, 본사의 횡포로부터 가맹점 보호,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상생, 재벌지배구조 개편 등을 국정운영의 우선 과제로 추진 중이다. 이에 CNB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기업정책들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규제’다. 여당과 정부는 공익법인이 총수일가의 사익(私益)에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의결권 제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CNB=이성호 기자)
▲김상조(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표 재벌개혁이 완수될 수 있을 지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사진=이성호 기자)
대기업 오너일가가 공익법인 지배
계열사 주총 때마다 ‘거수기’ 역할
의결권 제한으로 지배력 약화시켜야
“사회공헌 위축될라” 우려 목소리도
공정거래위원회는 국정과제로 재벌 총수일가 전횡 방지 및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공정위가 가동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전면개정 특별위원회(기업집단법제 분과)’에서는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규제와 관련해 그동안 논의한 결과를 발표해 이목을 끌었다. 공익법인의 보유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는 원칙 금지하되 특수관계인과 합해 15%, 전체 공익법인 합산 5%내로 행사는 가능토록 하자고 제시한 것.
이 같은 제안이 나오게 된 배경은 뭘까.
공익법인이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대, 경영권 승계, 부당지원·사익편취 등에 이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판단에서다.
총수일가가 세제혜택을 받고 설립한 뒤 이사장 등의 직책에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고, 공익법인이 총수일가 또는 계열사와 내부거래를 하는 경우도 상당히 빈번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공익법인이란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으로서 사회 일반의 이익에 이바지하기 위해 학자금·장학금 또는 연구비의 보조나 지급, 학술, 자선에 관한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을 뜻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공익법인에 대한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일정 범위의 상속·증여에 대해 과세가액을 불산입해 세제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재 57개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가운데 51개 집단(삼성, 현대자동차, 에스케이, 엘지, 롯데, 포스코, 지에스, 한화, 현대중공업, 농협, 케이티, 두산, 한진, 씨제이, 부영, 엘에스, 대림, 금호아시아나, 대우조선해양, 미래에셋, 에쓰-오일, 현대백화점, 오씨아이, 효성, 영풍, 케이티앤지, 하림, 케이씨씨, 코오롱, 한국타이어, 교보생명보험, 중흥건설, DB, 동원, 한라, 세아, 태영, 한국지엠, 이랜드, 아모레퍼시픽, 태광, 동국제강, SM, 호반건설, 현대산업개발, 셀트리온, 카카오, 네이버, 삼천리, 하이트진로, 한솔)이 165개 공익법인을 보유하고 있다.
이 법인들은 총수일가가 세제혜택을 받고 설립한 뒤 이사장 등의 직책에서 지배하고 있으며, 그룹 내 핵심·2세 출자회사의 지분을 집중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자산구성 중 주식의 비중은 21.8%에 달해 전체 공익법인 대비 4배에 이르고 보유 주식의 대부분(74.1%)이 계열사 주식인 것으로 나타났으나, 수익에 대한 기여도는 1.15%에 불과했다.
동일인·친족·계열사 임원 등 특수관계인이 공익법인의 대표자(이사장, 대표이사)인 경우는 59.4%(98개)였다.
공익법인 설립 시 출연자는 계열회사→동일인→친족→비영리법인·임원 순으로 출연빈도가 높았고, 주식이 출연된 경우(38개 공익법인) 주식 출연자는 대부분 총수일가(30개, 78.9%)로 확인됐다.
또 공익법인은 보유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 시 모두 찬성한 것으로 파악됐고, 165개 중 2016년도 기준 동일인관련자와 자금거래·주식 등 증권거래, 부동산 등 자산거래, 상품용역 거래 중 어느 하나라도 있는 공익법인은 100개(60.6%)로 집계됐다.
그러나 고유목적 사업을 위한 수입·지출 비중은 30% 수준으로 전체 공익법인(60% 수준)의 절반에 그쳤다.
이에 공정위에서는 공익법인이 재벌가에 악용되지 않도록 메스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안에 의결권 제한(특수관계인과 합해 15%, 전체 공익법인 합산 5%내) 등을 포함시켜 조만간 국회에 입법안을 올린다는 복안이다.
국회에는 이미 관련법이 제출돼 있긴 하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박용진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도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이 골자다.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박영선 의원안은 해당 공익법인이 주식의 전부를 출자해 소유하는 회사인 경우에만 의결권 행사를 허용했다.
박용진 의원안은 법이 통과됨을 전제로 기존에 공익법인이 주식을 100% 소유한 회사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인정, 일부만을 보유하거나 시행 이후 주식의 전부를 출자해 소유 및 주식의 전부를 취득·보유하는 경우에는 의결권 행사를 제한토록 했다.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대표자 현황. (자료=공정위)
기부문화 위축, 과잉 규제 ‘부작용’
하지만 이 개정안들은 현재 상임위에 계류 중으로 법안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태다. 반대 의견도 상당하기 때문인데, 정무위에 따르면 대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주로 공익법인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의결권 규제는 기부 등 활동에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 제시되고 있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는 ‘상증세법’에 따라 공익법인의 주식의 취득·보유 등을 이미 제한하고 있음에도 추가적으로 의결권 행사를 막는 것은 과잉 규제일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을 상임위에 전달한 바 있다.
무엇보다 내부 지분율이 하락, 지배력 유지가 어려워지는 회사 등의 경영부담이 가중될 수 있기에 업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정한 사회를 위한 재벌개혁의 법적과제’ 세미나에 참석해 “대기업이 이미 공고히 차지하고 있는 그 자리와 그들의 불공정 관행을 더 이상 건드리지 않는 정치권력의 부작위는 기업에 대한 특혜가 될 수 있다”고 전제했다.
공익법인 등 편법적 지배력 강화방지, 총수일가의 전횡방지, 사익편취행위 및 부당내부거래 근절 등을 위해 법을 더 엄정히 집행하는 것은 물론 어떤 수단과 방법이 개혁에 더욱 효과적이고 합리적일지 고민하고 추진하고 있음을 강조한 얘기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의 경제력집중 완화와 불투명한 지배구조 개선 그리고 갑질근절 모두 정부의 당연한 역할로 더욱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며 다시 한 번 재벌개혁 의지를 피력, 향후 국회를 거쳐 완수될 수 있을지 추이가 예의주시 되고 있다.
(CNB=이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