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는 ‘더불어 잘사는 경제’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데 경제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제 보장, 본사의 횡포로부터 가맹점 보호, 대기업과 골목상권의 상생, 재벌지배구조 개편 등을 국정운영의 우선 과제로 추진 중이다. 이에 CNB는 문재인 정부의 주요 기업정책들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하고 있다. 이번 주제는 은행권의 대출금리 시스템이다. 최근 불거진 금리 조작 의혹을 계기로 대출금리 산정 체계의 문제점과 대책을 짚어봤다. (CNB=이성호 기자)
▲지난달 28일 경남소비자단체협의회는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5억원에 달하는 추가 대출이자를 받은 경남은행에 대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을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대출금리 산정체계 허점투성이
은행 마진 반영? 가산금리 의문
금융당국 뒤늦게 모범규준 마련
“자율경쟁 위축” 우려 목소리도
최근 일부 은행들이 부당하게 금리를 산정, 금융소비자에게 높은 이자를 부과한 것으로 드러나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소비자들은 그동안 부풀려진 이자를 꼬박꼬박 지출한 것으로 일각에서는 조작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경남은행은 1만2000여건의 가계 대출금리에 대해 대출자의 연소득을 입력치 않거나 적게 해 부채비율을 높게 산출, 가산금리가 0.25∼0.50%포인트 붙어 고객들로부터 약 25억원의 대출이자를 더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KEB하나은행도 최고금리 적용오류 건수는 총 252건(전체의 0.0036%, 가계대출 34건, 기업대출 18건, 개인사업자 대출 200건), 고객수로는 193명(가계대출 34명, 기업대출 159명)으로 환급 대상 이자금액은 약 1억5800만원으로 파악됐다.
한국씨티은행의 경우 고객에게 금리가 과다 청구된 대출은 총 27건, 고객 수로는 25명으로 과다 청구 이자 금액은 총 1100만원 수준이다. 이들 은행들은 하나같이 고의성은 없고 업무상 실수라며 이자 환급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2~5월까지 9개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대출금리 산정체계’의 적정성에 대한 점검을 실시해 이 같은 사례들을 적발했다. 시민단체들은 비슷한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전수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모범규준에 따른 금리결정체계. (자료=금감원)
고무줄 금리, 고의냐 실수냐 논란
이처럼 은행들이 과다한 이자를 부과한 배경에는 현 대출금리 산정체계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에 고객별 가산금리를 더한 다음 영업상황에 따른 우대금리 등의 추가 적용을 거쳐 확정된다.
기준금리는 금융채·CD금리·코픽스 등을 주로 활용해 시장금리 상황을 반영하는 데 반해, 가산금리는 각 은행별로 리스크관리비용·자금조달원가·마진(목표이익률) 등을 감안해 자율적으로 산정하고 있다. 특히 가산금리 책정은 영업기밀로 각 은행들은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이번 금감원 조사에서 수년간 가산금리를 재산정하지 않고 고정 값을 적용하거나, 경기불황기 때를 반영하는 등 합리적 근거 없이 인상한 사례들이 대거 확인된 것이다.
목표이익률 산정시 경영목표와 관계없는 과거 1년간 차주에게 할인해서 적용한 우대금리 평균값(이율)을 가산하는 방식으로 불합리하게 산정하거나, 내부위원회 심사를 거치지 않고 회계연도 중간에 목표이익률을 인상하는 등의 사례가 나타났다.
또 가산금리 항목으로 ‘부채비율 가산금리(총대출/연소득)’ 항목을 운영하면서 고객의 소득정보를 과소 입력하거나 차주가 담보를 제공했음에도 담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전산 입력해 가산금리가 높게 부과된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이와 관련 금융소비자단체에서는 은행들의 단순 착오가 아닌 고의성이 짙다고 보고 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CNB에 “사람이 하는 일이라 몇 개 점포에서 발생했다면 실수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경남은행의 경우 100여곳의 영업점에서 대출금리를 올려 받은 것으로 나타나 의심을 사기 충분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은행들이 정보의 비대칭성을 악용, 성과주의에 따라 조직적으로 은폐·묵인 하에 소비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며 “재발방지를 위해 투명하게 금리 산출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하고 궁극적으로 환급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은행의 주택자금대출 창구. (사진=연합뉴스)
‘영업기밀’ VS ‘소비자 보호’
이와 같이 이번에 은행들의 부적절성이 드러난 만큼 현 가산금리 체제에 메스가 가해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신용프리미엄 산정주기가 정해있지 않음에 따라 최소 연 1회 이상 적정성을 재평가해 변경하도록 하는 등 가산금리와 목표이익률이 시장상황과 경영목표를 반영해 합리적·체계적으로 산정 부과되도록 ‘대출금리 모범규준’을 개정할 방침이다.
특히 금융위원회·금감원·금융연구원·은행권 공동 ‘대출금리 제도개선 테스크포스(TF)’에서 개별은행의 특성 및 자율성도 함께 보장될 수 있도록 보완방안을 충분히 논의한 후 개선방안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또 금융소비자가 은행의 금리산정 내역을 보다 정확히 알 수 있도록 기준금리, 가산금리(합계) 및 부수거래 우대금리(항목별)를 명시한 ‘대출금리 산정내역서’를 소비자에게 제공해 투명성을 강화키로 했다.
은행별 주요 여신상품의 가산금리 변동현황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금리상승기에 취약 가계나 영세기업의 신용위험이 과도하게 평가돼 불공정하게 차별받는 사례가 포착되는 경우 즉시 현장점검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보다 촘촘히 대출금리 산정체계를 들여다보고 시정을 꾀한다는 전략인 것.
한편, 국회에는 지난해 3월 홍문표 의원(자유한국당)이 대표발의한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제출돼 있다.
이 개정안은 현재 금융당국이 내놓은 대책보다 더욱 강력하다. 은행이 대출금리를 변경할 경우 산출근거를 금융위에 제출, 승인을 받도록 해 과도한 가산금리의 책정을 막도록 함이 골자로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그동안 진전이 없었으나 정부의 정책의지와 맞물려 향후 법안논의에 탄력이 붙을 지 주목된다.
하지만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불게 되는 경우 부작용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국회정무위원회 등에 따르면 대출시장에서 승인 등 가격을 규제하게 되면 시장경쟁을 축소시키고 담합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 사업자 간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하고 금리 책정 과정에서 은행 간의 공동행위를 촉발해 이자율 상승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시중은행의 은행상품별 대출금리가 동일해져 금융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될 수도 있다.
더불어 자금원가, 대출의 위험, 마진 등 영업전략이 반영돼 결정되는 가산금리가 세부항목별로 게시될 경우 은행의 기밀이 노출돼 시장의 정상적인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업계에서는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CNB에 “이번 사태가 불거진 만큼 TF 등을 통해 정부에서 요구하는 부문에 있어서 응당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도 “가산금리 산정 내역 공개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납득이 되는 부문이라면 어느 정도 수용가능하지만 그 외(전면공개·세부공개 등)는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전했다.
이어 “경영상의 목적에 따라 금리가 정해지고 변경될 수 있는데 그럴 때 마다 승인 등을 받도록 한다면 아무래도 자율성이 침해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CNB=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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