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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같은 사건, 두 개의 판결…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국민연금

민·형사 재판부 각각 다른 판단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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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7.10.24 11:56:37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왼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법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을 둘러싼 민사재판에서 ‘합병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혐의 형사재판이 변곡점을 맞고 있다. 삼성이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당한 청탁을 했다는 특검의 논리가 빛바래졌다는 주장과 합병비율의 적정성만을 따진 민사소송이라 뇌물죄 유무를 판단하는 재판과는 별개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법리적 해석을 떠나 이 부회장이 재판 과정에서 입은 오명을 상당부분 벗게 됐다는 점이다. CNB가 이번 사안을 여러 각도에서 따져봤다. (CNB=도기천 기자)

‘이재용의 눈물’ 재판서 진위 밝혀져 
민사재판부 “합병과정 위법성 없다” 
법조계 “뇌물죄는 합병과 별개 사안”

“아무리 부족하고 못난 놈이라도 서민들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고 제 욕심을 채우겠나? 이 오해만은 풀어 달라”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8월 7일 1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울음까지 터트리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날 박영수 특별검사는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이 부회장이 여러 혐의 중 유독 국민연금을 언급한 이유는 이렇다. 특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이 최순실씨 모녀를 지원한 대가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국민연금관리공단을 통해 도움을 줬다고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삼성물산 주주들과 국민연금은 손실을 입었지만 삼성 오너 일가는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봤다는 게 특검 주장이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1심에서 실형을 받았다. 

정리하면 삼성이 사익을 위해 청와대를 통해 국민연금을 동원했다는 얘기다. 사실상 국민기업이나 마찬가지인 삼성이 월급쟁이 주머니에서 나온 국민연금을 건드린 파렴치한 기업으로 비춰졌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으로서는 검찰의 주장을 견디기 힘들었고, 결국 재판에서 눈물을 터트린 것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사진=CNB포토뱅크)


민사재판부, 특검 주장과 충돌

이 부회장의 이같은 하소연은 최소한 ‘합병’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진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함종식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삼성물산의 옛 주주였던 일성신약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합병무효 소송에서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일성신약은 그동안 특검과 비슷한 논리로 합병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피해보상을 요구해 왔다. 

이날 재판부는 삼성물산의 합병 목적이 부당하지 않으며 위법하지도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사 합병이 포괄적 승계작업의 일환이었다고 해도 지배구조 개편으로 인한 경영 안정화 등의 효과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당시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세계 유가 하락과 더불어 해외건설 사업부문에 대한 우려로 실적이 악화하는 상황이었던 만큼 레저나 패션, 식음료 등의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추진할 만한 동기가 있다고 봤다. 양사의 합병 공시 후 두 회사 주가가 상승하는 등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점도 눈여겨봤다. 

또 재판부는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과정에 있어서도 불법행위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앞서 기소된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심리한 형사재판부와 다른 판단이다. 

형사재판부는 홍 전 본부장에 대해 “여러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 기금에 불리한 합병 안건에 투자위 찬성을 끌어냈고, 그 결과 공단은 보유주식 가치가 감소하는 손해를 입게 됐다“며 배임 혐의를 인정해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번 민사재판에서는 “홍 전 본부장이 찬성 표결을 유도한 행위는 인정되지만 투자위의 찬성 의결 자체가 거액의 투자손실을 감수하거나 주주가치를 훼손한 것 같은 배임적 요소가 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국민연금 수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합병에 찬성했다는 투자위의 기존 입장이 일리가 있다고 본 것이다. 

특히 재판부가 “특정인의 지배력 강화가 법적으로 금지된 것이 아니다”고 지적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간 특검은 삼성이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해왔고, 이 과정에서 양사 합병이 이뤄진 것이라고 봤다. 합병으로 인해 오너 일가의 삼성물산 지분율이 올라가게 돼 그룹 경영이 이전보다 용이하게 됐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제일모직 대주주였던 총수일가는 합병안 통과로 삼성물산이 보유했던 삼성전자 지분 4.02%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런 행위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번 민사재판의 취지로만 보면 삼성이 경영상 이유로 정상적인 합병을 진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국민연금을 이용하지도, 손해를 끼치지도 않았다는 이 부회장의 주장을 민사재판부가 받쳐준 셈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적법하다는 민사재판부의 판단이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삼성 “청탁할 이유 사라진 셈”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은 쟁점과 법리가 달라 서로 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민사재판은 원고 측 주장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형사재판과는 증명의 정도나 접근 방법, 법리 전개 등이 다른 만큼 ‘단순 대입’ 하기는 어렵다는 것. 

앞서 특검(형사재판)이 이 부회장에게 유죄 판단을 내린 건 경영승계 작업에 도움을 받으려고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사재판부는 경영승계 작업 자체가 위법은 아니라고 봤다. 얼핏보면 두 개의 재판이 서로 모순돼 보이지만, 이는 목적 자체가 위법하지 않다고 해도 그 목적 달성을 위해 불법행위를 했다면 문제가 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CNB에 “합병이 적법하다고 해서 뇌물 혐의를 무죄로 볼 수는 없고, 반대로 합병 과정에서 뇌물을 줬다 해도 합병 자체가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며 “목적의 정당성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법적인 문제점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어느 쪽의 유·불리를 단순히 따지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반면 삼성 측은 합병과정이 합법적으로 이뤄졌고, 합병비율 또한 적법한 수준이라는 이번 판결이 결과적으로 합병 당위성을 인정한 것인 만큼, 이 부회장 재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청탁을 해야할만한 이유가 없었다는 논리다.
 
이 부회장뿐 아니라 재판을 받고 있는 국민연금 관련자들도 ‘위법성이 없다’는 이번 판결문을 증거로 제출, 재판부의 판단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법리 공방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이번 민사판결이 이 부회장과 삼성의 신뢰 회복에 긍정적인 효과를 끼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법조계 관계자는 CNB에 “이번 판결을 통해 이 부회장의 눈물의 호소가 적어도 거짓이 아니었음은 입증됨 셈”이라며 “뇌물죄는 청탁의 결과 여부를 떠나 행위만으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서로 간에 구두로 (특혜와 금품을) 약속한 부분은 입증하기가 매우 어려워 여러 정황을 갖고 판단하는데, 이런 점에서 정황상 삼성 측이 유리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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