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야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롯데몰 예정부지(오른쪽)의 지난 9일 모습. 5년 가까이 공사가 지연되면서 잡목이 우거져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강북 최대규모로 설계된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롯데복합쇼핑몰(이하 롯데몰)의 건립이 롯데와 동네 상인들 간의 갈등, 서울시와 롯데 간 소송전 등으로 5년 가까이 표류하면서 내년 지방선거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주민들의 롯데몰 유치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상생 협약’을 건축허가의 전제로 내건 서울시의 태도가 변할지 주목된다. CNB가 지난 8~10일 3일간 시와 롯데, 시·구의원, 주민단체, 상인회 등을 고루 만나 앞날을 예측해봤다. (CNB=도기천 기자)
대부분 주민 ‘입점 찬성’으로 돌아서
소송 배수진 친 롯데…서울시 외통수
지방선거 앞둔 박 시장, 돌파구 모색
“이미 수년전에 건립이 확정됐음에도 서울시가 일부 상인단체들에 휘둘려 허가를 지연하는 바람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속히 롯데몰이 들어와야 한다는 게 대부분 주민들의 바램인만큼,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에게 (롯데몰 건립을) 공약으로 내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부지역발전연합회 김병식 공동위원장)
“롯데몰이 문을 열면 골목 밥집들은 푸드코트에, 재래시장과 동네슈퍼는 각종 판매시설에 밀려날 수밖에 없다. 건립 허가에 앞서 품목제한, 의무휴업일 지정 등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라 지역상권에 끼칠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상암동 상인회 정광욱 총무)
롯데몰 건립을 둘러싼 논란은 5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12월 서울시는 상암DMC 택지개발지구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인 상업용지 3개 필지를 한꺼번에 ‘통매각’ 하기로 결정한다. 애초의 사업계획은 1개 필지씩 분할 매각이었지만, 유통대기업을 끌어 들이기 위해 쉬운 길을 택한 것.
롯데는 2013년 4월 서울시로부터 이 3개 필지를 1972억원에 사들였다. 롯데가 2014년 11월 서울시에 제출한 ‘특별계획구역(I3·I4·I5) 세부개발계획 결정(안)’에 따르면, 복합쇼핑몰의 부지 면적은 2만3741㎡, 영업면적은 23만1611m²(약7만200평)에 이른다. 표준규격 축구장(105m×68m) 32개 크기로 당시 한강 이북에서 최대 규모였다.
▲지난 9일 서울 상암동 롯데몰 예정부지와 주변 전경. (사진=도기천 기자)
롯데는 이 부지에 5000억원을 들여 13~20층 높이의 건물 3개동을 지어 백화점, 롯데시네마(영화관), 대형마트 등 판매시설을 비롯, 문화·숙박·업무·의료시설 등 다양한 업종을 입점 시킬 계획이었다.
롯데의 이 계획은 서울시와의 오랜 협의 끝에 나온 결과였다. 당초 롯데는 서울시에 ‘필지와 필지 사이에 있는 2개의 이면도로 및 지하공간을 점용면적에 포함해 달라’고 요구했었다. 롯데 입장에서는 거대복합쇼핑몰에 걸맞는 위상과 규모를 갖추려면 통합건축물이 절실했지만, 불하받은 3개 필지는 각각 도로로 분리돼 있어 하나의 건물로 지을 수가 없었기 때문. 각 필지의 규모는 6162㎡, 6319㎡, 8162㎡다. 이를 합치면 2만644㎡ 규모인데, 롯데는 여기다 도로면적 3097㎡을 보태 총 2만3741㎡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롯데 측이 제출한 건축설계도면을 다시 돌려보냈다. 시는 2013년 10월경 작성된 검토의견서에서 “롯데의 계획은 도로지상 및 지하 전 면적을 영리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공공의 이익에 반(反)한다”고 밝혔다.
결국 롯데는 다시 설계에 착수했고 2013년 10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무려 13개월간 서울시 관련부서와 마포구청, 시 산하 DMC관리위원회와 협상을 벌였다. 수십 차례 실무협의 끝에 시는 기존 도로를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각 필지(건물) 간 연결통로(구름다리)와 지하통로 개발을 ‘조건부 허용’하기로 롯데와 합의했다. 롯데의 계획안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후 서울시와 마포구는 주민공람을 마치고 본격적인 설계 논의에 착수했다. 시는 지하면적의 일정부분을 ‘공공기여 용도’로 사용하는 방안 등을 놓고 롯데와 협의를 벌였다.
▲롯데몰 예정부지와 마주보고 있는 상암동 먹자골목의 풍경. 이곳 상인들은 ‘롯데몰 입점 반대 비대위’를 결성해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5년간 사업 표류 왜?
하지만 지역 상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서울시는 태도를 바꾸게 된다. 시는 2016년 2월 ‘경제민주화 특별시’를 선언하면서 대형마트·복합쇼핑몰을 지으려는 사업자는 지자체에 건축허가를 받기 전에 기존 상인들과 상생 방안을 합의토록 방침을 정했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사업자는 건축물 예정지 반경 1km 이내 상인회와 영업개시 전까지 상생협약(지역협력계획서)을 맺으면 된다. 이는 시설물을 지은 뒤 사업허가 과정에서 협약서를 제출하면 된다는 의미로 해석돼, 통상 ‘선(先)건축 후(後)협약’ 순으로 플랜이 진행돼 왔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건축허가 전 상생합의’를 고집한 것은, 롯데몰이 기존 상권에 미칠 영향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상암동 상권은 크게 둘로 나눠져 있다. MBC글로벌미디어센터, YTN, 중앙·조선·동아일보의 종합편성채널 방송국, CJ E&M, LG CNS, LG유플러스, 누리꿈스퀘어 등이 들어서 있는 상암DMC 중심부와 한샘 사옥과 롯데몰 예정부지, ‘먹자골목’(개발보류지역) 등으로 구성된 후미(後尾) 상권이다.
따라서 롯데몰이 들어서면 100여개의 음식점·주점들로 형성된 먹자골목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또 5km 반경 내에 있는 8500여개의 상점과 재래시장, 3만여 명의 중소상인들의 간접적인 피해도 예상된다. 특히 마포농수산물시장, 마포구 망원시장, 은평구 증산종합시장, 은평구 수일시장 등은 롯데복합쇼핑몰과 직선거리 1km 이내에 있다. 상인단체들은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등과 함께 ‘롯데쇼핑몰 입점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해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시 상생협력팀 관계자는 CNB에 “건축허가가 난 뒤에는 사업주가 상생협약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우가 잦다는 점을 고려했으며, 관련법에 영업허가 전까지 상생협약을 맺도록 되어 있는데 이를 도시계획(건축허가) 단계에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후 지역상인연합회와 롯데, 서울시는 ‘상생 협력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지금까지 13차례에 걸쳐 협의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시는 롯데 측에 쇼핑몰 3개동 중 1개동은 ‘비판매시설’(호텔, 영화관 등)로 하자는 중재안을 냈지만 롯데는 당초 계획했던 쇼핑몰 위상에 어긋난다며 거부했다. 롯데는 대신 지역상인들의 영업 피해 우려 등을 고려해 대형마트와 SSM은 입점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상인회가 거부해 협상이 결렬됐다.
결국 롯데는 법원으로 갔다. 지난 4월초 서울시를 상대로 인․허가 지연에 대한 책임을 묻는 행정소송(부작위 위법 확인 소송)을 냈다.
롯데 측은 “부지를 판매시설용으로 비싼 가격에 판매해놓고 지금에 와서 면적의 3분의 1을 아예 판매시설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서부지역발전연합회’를 구성해 롯데몰 입점을 촉구하는 청원을 진행 중이다. 지난달 23일 주민 300여명이 건축허가를 보류한 서울시를 비난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서부지역발전연합회 제공)
박 시장, 울산 코스트코 전철 밟나
이렇게 여러 곡절을 겪으면서 판세는 조금씩 롯데에게 기울고 있다. 주민들이 대대적인 롯데몰 입점 운동으로 시를 압박하고 있는데다, 소송 또한 과거 판례로 볼 때 롯데가 유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롯데몰 인근의 상암, 성산, 중동, 수색, 증산, 남가좌, 북가좌동 아파트 주민들은 롯데가 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자 ‘서부지역발전연합회’를 구성해 입점을 촉구하는 청원을 진행 중이다. 주민 7000여명 명의의 서명부를 시에 제출한데 이어, 지난달에는 300여명이 참석한 집회까지 열었다. 신종갑·백남환 마포구의원 등 해당지역 정치인들도 입점 요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들은 “롯데몰을 통해 5000여명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기대되는데다, 서울 서부지역 소비자들이 다양한 편의시설과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다 이번 소송과 비슷한 사례인 울산의 코스트코 재판 결과도 롯데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울산지법 민사12부(한경근 부장판사)는 지난달 14일 울산 북구가 윤종오 의원(당시 북구청장)을 상대로 제소한 코스트코 구상권 청구소송 1심에서 1억140만원을 물어내라고 판결했다. 이는 윤 의원이 북구청장 재직시절인 2010년 외국계 대형마트인 코스트코의 건축허가 신청을 영세상인 보호를 이유로 몇 차례 반려한데 대한 책임을 일부 물은 것이다.
앞서 코스트코 설립을 추진한 유통조합 측은 북구청과 윤 의원을 상대로 사업 지연에 따른 손해보상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북구가 배상금에 이자까지 포함해 5억6000만원을 조합 측에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북구는 당시 구청장이던 윤 의원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이번에 일부 승소한 것이다.
이 사례는 롯데와 소송을 벌이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상당한 압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서울시가 패소할 경우, 마찬가지 법 논리로 박 시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점도 3선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박 시장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공사 가림막이 쳐진 롯데몰 예정부지. 이 상태로 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사진=도기천 기자)
서울시-롯데 극적 타결 가능성
그렇더라도 롯데가 서울시와 끝까지 ‘치킨 게임’을 벌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롯데 입장에서는 소송이 길어지면 사업이 최소 1~2년 더 지연될 수 있는데다, 기업 이미지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롯데는 표면적으로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비공식채널을 통해 시와 협의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서북부 지역에서 롯데와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유통 ‘빅3’가 대전(大戰)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보니 롯데로서는 핵심 축인 상암에서의 롯데몰 건립이 절실하다. 더구나 롯데의 앙숙인 신세계는 지난 8월 상암DMC와 불과 10여Km 떨어진 곳에 강북 최대규모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고양’을 개점한 상태다.
롯데몰 부지는 지하철 6호선, 공항철도, 경의선이 모두 지나가는 트리플 역세권인데다, 상암과 은평구 수색지구를 잇는 매머드급 개발의 한복판에 있다. 인접한 은평구와 경기 고양시에서는 대규모 뉴타운·택지개발이 한창이다.
망원시장 상인 출신인 김진철 서울시의원은 CNB 기자와 만나 “롯데가 최고 노른자위 땅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 상인들은 아무도 없다”며 “서울시와 물밑에서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상생협력팀 관계자도 “기존 안(3개동 중 1개동을 비판매시설로 사용)을 무조건 고수하는 건 아니다. 롯데와 상인들 간의 합의 여하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앞뒤 상황으로 볼 때, 행정소송 판결이 나오기 전에 양측이 극적인 합의를 할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진다. 선거를 앞둔 서울시와 사업재개를 원하는 롯데의 입장이 맞물려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신종갑 마포구의원(상암․성산2)은 CNB에 “롯데가 행정소송에서 승소하게 되면 롯데몰 건립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게 된다. 그 전에 시와 롯데, 상인회가 서로 조금씩 양보해 타협점을 찾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책이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이런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의 모호한 규정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진철 시의원은 “이미 건축이 진행된 상태에서 상생협약을 맺도록 한 현행법은 상인들에게 백기투항 하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건축허가 전에 중소상인보호를 위한 상권영향평가와 공청회 실시 등 민주적인 의견수렴절차를 거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