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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외국 기업 생리대 ‘좋은느낌’에 묻는다…“한국 소비자에게는 그래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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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유림기자 |  2017.09.21 15:15:33

▲김만구 강원대 교수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생리대 업계 1위 유한킴벌리의 중형 생리대에서 발암물질 1, 2군이 가장 많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대한민국은 ‘케미포비아’로 뒤덮이고 있다. 화학을 뜻하는 Chemical과 혐오를 뜻하는 Fobia가 합해져서, 생활화학제품을 혐오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의 평온한 일상을 깨트린 유해 화학성분 논란의 시작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지난 2011년 한 달에 1~2명씩 정체불명의 폐 질환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었다. 

환경부의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질환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6년이나 흘렀지만, 아직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해결해야 될 부분이 산더미처럼 남아있는 상황이다. 

올해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 치약부터 살충제 계란까지 각종 생활 물품에서 독성 물질들이 검출되면서 소비자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필수품 ‘생리대’ 발암 물질 파동은 전국을 발칵 뒤집어놨다. 

여성은 40년 동안 약 1만여개의 생리대를 사용한다. 특히 생리대는 자궁과 질에 최대한 접근하기 때문에 여성의 건강뿐만 아니라 임산과 출산, 난임, 불임의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여성환경연대와 강원대 김만구 교수팀에 따르면 유해물질이 검출된 ‘중형 생리대’는 ▲유한킴벌리의 ‘좋은느낌2 울트라중형 날개형에이’ ▲엘지유니참의 ‘바디피트 볼록맞춤 울트라슬림날개형’ ▲‘바디피트 귀애랑 울트라슬림날개형’ ▲P&G의 ‘위스퍼 보송보송케어 울트라날개형’ ▲㈜트리플라이프의 ‘그나랜시크릿 면생리대’ ▲깨끗한나라의 ‘순수한면 울트라슈퍼가드’ 등이다. 

‘팬티라이너’는 ▲‘좋은느낌 좋은순면라이너’ ▲화이트 애니데이 로즈마리향’ ▲‘화이트 애니데이 순면커버 일반’ 등 유한킴벌리 제품이 3가지가 포함돼있다. 또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베이비파우더향(수퍼롱)’ ▲‘릴리안 로즈향(수퍼롱)’ 등이 있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모든 생리대 기업들이 포함돼있다. 황당한 사실은 김 교수팀과 여성환경연대는 지난 3월 해당 실험 결과를 처음 발표했을 당시 기업명과 브랜드를 익명 처리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5개월이 흘러 지난달 한 언론을 통해 유해 물질을 가장 많이 함유한 제품은 ‘깨끗한 나라’ 생리대라고 밝혀졌다. 보도에 따르면 김 교수는 “TVOC 배출 1위 제품이 릴리안”이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릴리안 생리대에서 검출된 TVOC는 평균의 1.5배, 최저 검출 제품의 2.7배였고, 팬티라이너에서는 최저 검출 제품과 비교해 9.7배에 달하는 TVOC가 나왔다”며 “특히 벤젠류(벤젠고리가 들어간 방향족류)가 많이 검출됐는데 이는 향을 내는데 쓰이는 성분”이라고 설명했다.

TVOC는 액체 또는 고체 형태의 물질에서 ‘가스형태’로 방출되는 수만가지의 화합물을 통칭하는 용어다. 일반 가정에서는 페인트, 접착제, 건축자재와 마감재료, 청소용액, 담배연기 등을 통해 노출된다.
 
주 발생물질은 벤젠, 톨루엔, 자일렌, 에틸렌, 스타이렌, 아세트알데하이드 등 인체에 해로운 성분이 대부분이다. 피부 접촉이나 호흡기 흡입을 통해 접촉될 경우 피로감, 정신착란, 두통, 구토, 현기증 등을 유발한다.

심한 경우에는 각종 암, 신경계와 생식기능 장애도 일으킨다. 국제암연구소는 해당 물질들을 발암성 물질로 규정하고 있으며, 환경부는 1급 발암성 또 백혈병, 의식 불명 등을 주요 증상으로 밝히고 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생리 기간에 발생하는 특유의 냄새를 알고 있다. 이는 생리 때문이 아니라, 생리가 화학물질로 범벅된 위생패드를 만나서 생기는 악취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유한킴벌리 등 제조사들은 생리대 때문에 나는 불편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또다시 유해물질을 첨가한 셈이다.

여성들은 큰 충격에 빠졌고, 생리대 부작용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논란이 확산되면서 실험에 포함된 모든 제품의 실명이 공개됐고, 오히려 국제암연구소(IARC)가 규정한 1, 2군 발암물질 총량이 가장 높은 생리대는 ‘유한킴벌리’ 제품으로 밝혀졌다. 

반면 TVOC 총량은 높지만, 1, 2군 발암 물질이 가장 적게 함유하고 있던 제품은 ‘깨끗한 나라’였다. 게다가 유한킴벌리와 여성환경연대, 김 교수 연구팀의 유착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유해성 논란을 넘어 진실 공방으로 옮겨갔다. 

실제로 유한킴벌리의 상무이사 K씨가 여성환경연대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이 유한킴벌리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의 장학생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또 여성환경연대가 의뢰한 강원대 연구팀의 에코피스리더십센터는 지난 2014년 유한킴벌리로부터 1억원의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환경연대 측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유한킴벌리 임원 1인은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시민사회로부터 신뢰받는 여성 기업인 개인의 자격으로 추천받고 참여했다”며 “유한킴벌리 임원이 여성환경연대 이사라는 사실이 생리대 검출실험과 공개 여부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라고 밝혔다.

유한킴벌리 측 역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 시니어 일자리 창출, 여성권익, 지역사회 봉사 등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해 왔다. 이러한 활동에 임직원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경우가 있으며, K상무를 포함한 여러 임직원이 NGO에 자원봉사자나 임원으로 참여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유한킴벌리는 발암 물질 논란과 관련해 공식사과는 커녕 명쾌한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반대로 처음 실명이 공개됐다는 이유로 집중 포화를 맞은 한국 기업 ‘깨끗한 나라’는 1, 2군 발암물질을 가장 적게 함유했지만, 공식 사과와 함께 모든 제품의 환불 절차까지 진행했다. 

유한킴벌리 측은 발암물질 생리대 1위 논란과 관련해 “해당 시험결과를 인용한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1, 2군 발암물질의 경우 타사의 팬티라이너 제품에서 가장 많이 검출됐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완전 궤변으로 느껴졌다. 팬티라이너와 생리대는 품목이 엄연히 다르다. 팬티라이너는 공산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식약처의 관리 대상이 아닐뿐더러, 팬티라이너 발암물질 1위 제품(릴리안)과 생리대 발암물질 1위(좋은느낌)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 유한킴벌리의 대응을 보면서 영국 기업 옥시레킷벤키저가 오버랩 된다.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 살균제는 수많은 우리 국민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지난해 검찰 조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무대응과 꼬리 자르기식으로 일관했다. 

유한킴벌리 역시 미국 킴벌리 본사가 관계사 헝가리 법인을 내세워 7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 기업이다. 

만약 유한킴벌리가 미국 현지에서 발암 물질 1, 2군 다량 함유 생리대로 선정됐다면 지금 같은 대응으로 일관할까?

글로벌 기업의 ‘한국 홀대’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북미지역에서 판매를 중단한 서랍장의 리콜을 거부한 ‘이케아’,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져 미국에서는 보상안을 내놨지만 한국엔 적용할 수 없다고 밝힌 ‘폭스바겐’, 국내 카드사에 일방적인 해외수수로 인상을 통보한 ‘비자카드’ 등 국내 소비자 무시가 아예 일상화돼 있다. 

외국계 기업이 역차별 정책을 유독 한국에서만 펼치는 이유가 뭘까. 국내에는 집단소송제가 없기 때문이다. 

집단소송제는 영미법의 관습법에 기초한 것으로 정부가 소비자를 위한 규제를 미리 만들지 않아도, 기업들이 소송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에 더 심혈을 기울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현지에서는 수십년간 암유발 화장품을 판매한 존슨앤드존슨(한국에서는 존슨즈베이비)이 2명의 피해자에 1억2700만달러(1462억원)를 배상하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 

반면 한국은 2005년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이 도입된 것이 최초다. 하지만 법이 제정되고 12년간 관련 소송이 9건에 그쳤고, 올해 7월 최초로 투자자가 승소 판결을 받은 사례가 나올 만큼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적극적인 리콜과 보상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외국계 기업에게 이득인 상황이다. 정부의 방관과 미비한 국내 규정은 결국 이들의 ‘배짱’만 키워준 셈이다. 유한킴벌리 역시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가 두렵지 않은 모양이다.

(CNB=김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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