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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업계 역대급 효자제품 ⑧] “이 소리가 아닙니다” 반세기 목 건강 지킴이, 보령제약 ‘용각산’

1967년 첫 출시, 50년 세월 ‘기관지 개선제’로 자리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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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유림기자 |  2017.09.20 10:59:06

▲1960년대 말 용각산 신문광고. (사진=보령제약)


제약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산업 중의 하나이자 국민 건강의 영원한 동반자다. 최근에는 신약개발 열풍이 불면서 우리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다. 제약사들이 장수한 배경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히트제품이 있었다. 이에 CNB는 수십년 세월 서민과 함께 해온 ‘효자제품’들을 취재해 <연중기획>으로 연재하고 있다. 추억을 돌아보고 건강을 챙기는 데 작은 도움이 되고자 함이다. 여덟 번째 이야기는 보령제약의 ‘용각산’이다. (CNB=김유림 기자)

한일 기술제휴, 국민건강 획기적 개선
연구개발 올인해 ‘용각산 신화’ 탄생
젊은 취향 ‘스틱형 1회용 포장’ 발전 

기침은 우리 몸을 보호하는 방어기전 중 하나다. 기도를 통해 유해 물질이나 이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폐와 기도의 해로운 물질과 분비물을 바깥으로 배출해 기관지를 깨끗하게 유지해준다. 

어르신들이 폐렴으로 인한 사망이 많은 이유도 기침할 수 있는 기운이 없어 가래를 효과적으로 배출하지 못해 병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도한 기침은 기관지 점막에 상처를 내고, 숙면까지 방해하며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 

최근에는 중국발 미세먼지로 특별한 기관지 병이 없어도 기침이 잦은 젊은층이 늘어나고 있다. 머리카락 굵기의 1/10 정도인 미세먼지는 일반적인 먼지처럼 코털이나 기관지 점막에서 거르지 못하고, 코와 구강, 기관지에 축적된다. 지속적으로 흡입하게 되면 기관지 점막이 건조해지면서 세균이 쉽게 침투할 수 있으며, 만성 폐질환이 있는 사람은 폐렴과 같은 감염성 질환에 취약해진다. 

▲1960년대 용각산 신문광고. (사진=보령제약)


가래기침이 계속되거나 가래의 배출능력이 떨어질 경우 ‘진해거담제(鎭咳祛痰)’를 많이 찾는다. ‘진해’는 원인과 관계없이 기침을 가라앉히며, ‘거담’은 끈끈한 점액을 녹이는데 도움을 주어 묽게 된 분비물을 기도 밖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진해거담제는 가루약이나 시럽의 형태다. 호흡기 질환이 좋지 않아 복용하는 약인만큼 삼키기 어려운 알약 형태는 거의 없다.  

대표적으로 동그랗고 납작한 은색 뚜껑에 하얀색 씁쓸한 가루가 들어있는 ‘용각산(龍角散)’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용각산의 출발은 2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왕을 치료하는 의사였던 후지이 겐엔은 길경가루, 행인, 감초, 세네가 등 한약재를 바탕으로 용각산을 처음 개발했다. 

이후 그의 아들 겐신이 양의학을 배워 서양의 생약을 도입해 개량했으며, 겐신의 아들인 후지이 쇼테이지가 약방을 통해 일반 사람들에게 판매를 시작했다. 메이지 27년(1894년) 약제사가 된 쇼테이지의 아들 도쿠사부로가 가루분말 형태로 개발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1960년대 용각산 신문광고. (사진=보령제약)


용산각의 주재료인 ‘길경(도라지의 약재명)’은 음식뿐만 아니라 폐와 기관지를 다스리는데 널리 쓰이는 한약재다. ‘동의보감’에는 길경이 들어가는 처방이 280여 가지나 되며, ‘명의별록’에는 오장을 이롭게 하고 부족한 피를 보충하며 속을 덥게 하고 음식을 잘 소화시킨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사포닌 성분이 풍부해 기관지에서 생성되는 분비액인 뮤신(mucin)의 양을 증가시켜 가래의 배출을 용이하게 하고 기관지 내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에는 일제강점기 전후로 ‘등정득삼랑’이라는 회사가 수입하면서 들어오게 됐다. 1950년대 정부에서 밀수 금지 품목으로 정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다 1960년대 보령제약이 기술제휴를 거쳐 공식적인 국내 판매가 시작됐다. 

보령제약의 창업주 김승호 회장은 1963년 보령약품을 세우며 본격적으로 제약산업에 뛰어들었다. 1966년 지금의 보령제약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고, 그 해 일본 용각산社와 기술제휴를 맺기 위해 뛰어다녔다. 

▲용각산 기술협상 당시 성수동 공장부지를 시찰하고 있는 김승호(가운데) 보령제약 명예회장. (사진=보령제약)


당시 용각산社는 생산설비 현황, 기술 도입 후 신규로 설치할 설비, 생산시설을 보령에 요구했다. 용각산의 성공을 확신했던 김 회장은 막 계약을 마친 허허벌판의 성수동 공장부지로 용각산社 임원을 데려가 그곳에서 펼쳐질 보령제약의 미래를 설명, 설득하며 계약을 성공시켰다. 

1967년 6월 우여곡절 끝에 용각산이 발매됐지만, 기대와는 달리 전혀 팔리지 않았다. “일본 제품보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구설수에 휘말렸기 때문. 알고보니 문제는 포장상태였다. 일본보다 떨어지는 용기제작 기술로 오해가 생긴 것이다.

김 회장은 곧바로 첫 출하물량 5만개를 모두 수거해 폐기했고, 일본 원제품과 똑같은 수준의 용기와 포장으로 다시 만들어 영업사원들과 함께 소비자를 직접 찾아 다녔다. 이와 함께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서 광고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김 회장은 출시 이듬해인 1968년 전체 매출(9442만원)의 32%(3056만원)를 광고에 투자했으며, 몇 년간 30% 내외의 광고비를 집행했다. 

▲일본 용각산社을 방문해 제조 과정을 배우고 있는 김승호(왼쪽에서 둘째) 보령제약 명예회장. (사진=보령제약)


당시 의약품 시장을 주도하던 제약사들이 광고비에 투자한 비용은 대략 매출의 10~15%였다. 신생기업이 그들의 두 배를 광고에 쏟아 부으니 모두 무모하다고 말렸지만, 김 회장은 용각산의 효능을 믿고 밀어붙였다. 

그 결과 용각산의 미세분말 제형의 특징을 살린 “이 소리가 아닙니다~”로 시작하는 문구는 전 국민에게 각인됐으며, 의약품 광고업계에서는 지금까지 명광고로 회자되고 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용각산은 변화를 맞는다. 용산각은 미세한 분말을 아주 작은 수저로 떠먹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쓴맛과 생약성분 특유의 냄새 때문에 젊은층의 수요는 잡지 못했다.

▲용각산 패밀리 제품 이미지. (사진=보령제약)


이에 보령제약은 2001년 ‘용각산’을 개선한 ‘용각산쿨’을 내놓았다. 용각산쿨은 스틱에 들어 있는 과립형 제제로 1회용 포장으로 만들어 복용의 편의성을 높이고 맛도 개선했다. 또한 기존의 용각산보다 길경가루, 세네가, 행인, 감초의 함량을 높였고, 인삼과 아선약도 추가했다. 

보령제약 관계자는 CNB에 “50년의 역사를 지닌 용각산은 소비자가 언제나 곁에 두고 생필품처럼 이용할 수 있는 브랜드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앞으로 목건강 관리는 물론, 삶의 질을 높여 나갈 수 있는 호흡기 전문 브랜드로서 제2의 전성기를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보령제약에 따르면 용각산과 용각산쿨을 복용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 없이 복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용각산은 목 점막에 직접 작용하는 약으로 물과 함께 복용하게 되면 희석이 될 뿐 아니라, 위로 바로 넘어가게 되어 효과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CNB=김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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