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약품 활명수 초창기 이미지. (사진=동화약품)
제약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산업 중의 하나이자 국민 건강의 영원한 동반자다. 최근에는 신약개발 열풍이 불면서 우리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다. 제약사들이 장수한 배경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히트제품이 있었다. 이에 CNB는 수십년 세월 서민과 함께 해온 ‘효자제품’들을 취재해 <연중기획>으로 연재하고 있다. 추억을 돌아보고 건강을 챙기는 데 작은 도움이 되고자 함이다. 다섯 번째는 이야기는 동화약품의 ‘까스활명수’다. (CNB=김유림 기자)
일제치하 활명수, 독립운동 자금줄
4세대 째 사랑 받는 서민 소화제
가난한 나라 찾아 식수정화 사업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이자 양약인 ‘활명수(活命水)’. 아선약, 육계, 정향 등 11가지 성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급체, 토사곽란 등 각종 소화불량에 뛰어난 효능을 나타내며, 현재까지 84억병이 팔렸다.
‘활명수’의 탄생은 18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왕조 고종임금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던 당시 궁중선전관 민병호 선생은 궁중에서만 복용되던 생약의 비방을 일반 국민에까지 널리 보급 하고자 서양의학을 접목해 ‘활명수’를 선보였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동화약품의 역대 CEO들. (사진=동화약품)
그해 민병호 선생의 아들인 창업주 민강 선생은 활명수를 대중화하기 위해 서울 순화동 5번지에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을 설립했다. 특히 민강 선생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이후 활명수를 독립운동의 자금줄로 활용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으로 이동할 때 고가의 활명수를 지참했다가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 또 서울 중구 동화약품 본사는 상해 임시정부의 연락부로 활용됐다. 지금도 동화약품 사옥 앞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 연통부를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현재 활명수는 시장점유율(지난해 기준) 70%를 차지하고 있다. 신제품이 나와도 10년을 버티기 힘든 제약 시장에서 120년간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약효’가 검증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1936년 동화약방(현 동화약품) 활명수 광고. (사진=동화약품)
“부채표가 없으면 활명수 아니다”
그러나 부채표 활명수도 고비가 존재한다. 1965년 삼성제약이 ‘까스명수’를 내놓으면서 1위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까스명수는 액체 소화제에 탄산가스를 주입한 제품이었다. 당시 콜라 같은 탄산음료가 인기를 끌던 것에 착안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동안 쏟아져 나왔던 수많은 ‘미투 상품’과 달리 까스명수를 향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후 동화약품은 곧바로 활명수의 시즌2를 열었다. ‘까스활명수’를 신제품으로 내놓았고, 차별화된 마케팅을 통해 2년 만에 1위 자리를 재탈환하게 된다. 동화약품은 1990년대까지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통해 오리지널 제품임을 강조했고,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성공했다.
▲우리나라 최초 애니메이션 광고로 디자인한 까스활명수 패키지. (사진=동화약품)
활명수는 개발 당시부터 일제강점기, 현대에 이르기까지 ‘생명을 살리는 물’ 역할을 하면서 여전히 소비자 곁을 지키고 있다. 현재는 일반의약품인 활명수, 까스활명수, 미인활명수, 꼬마활명수와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까스活(활) 등 총 5가지 제품이 있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CNB에 “올해 120살이 되는 활명수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최장수 의약품으로 앞으로도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사명감과 사회적 책임을 더욱 충실히 이행해 나갈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동화약품은 활명수의 의미를 딴 ‘생명을 살리는 물’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식수 정화 사업과 우물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CNB=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