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동 우황청심원 초창기 이미지. (사진=광동제약)
제약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산업 중의 하나이자 국민 건강의 영원한 동반자다. 최근에는 신약개발 열풍이 불면서 우리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다. 제약사들이 장수한 배경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히트제품이 있었다. 이에 CNB는 수십년 세월 서민과 함께 해온 ‘효자제품’들을 취재해 <연중기획>으로 연재하고 있다. 추억을 돌아보고 건강을 챙기는 데 작은 도움이 되고자 함이다. 전편의 동국제약 ‘마데카솔’에 이어 두 번째는 이야기는 광동제약의 ‘우황청심원’이다. (CNB=김유림 기자)
화학성분 아닌 순수원료로 제작
‘동의보감’ 처방법 그대로 승계
故최수부 창업주 직접 약재 선별
우황청심원은 집안에 어르신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뒷목 잡고 쓰러질 때, 부부싸움을 하다가 심한 충격을 받아 갑자기 어지러울 때, 수능 시험과 면접을 앞두고 떨림이 심할 때 한국인이 가장 먼저 찾는 가정용 상비약이다.
중국에도 우황청심환(丸)이 있지만 우황청심원(元)과 엄연히 다르다. 중국의 우황청심환은 3세기경 쓰여진 의서 금궤요략을 토대로 20여종 안팎의 약재로 제조되고 있으며, 현대에는 야생동물 보호법에 의해 구할 수 없는 약재가 많아 예전보다 약효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또 워낙 땅이 넓어 지역별로 각각 다른 동양의학이 발전했고, 청심환 역시 수십가지의 종류를 가지고 있다.
▲세월호 미수습자로 추정되는 유해 발견 소식이 전해진 지난 3월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 주차된 미수습자 가족들 차량 안에 광동제약의 우황청심원이 상비약으로 놓여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한국은 1610년 허준이 동의보감에 서술한 한약재 30여개를 이용한 처방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비록 중국의 의서에서 비롯하였지만 청심원 중에 가장 원방에 가까운 처방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황, 사향, 주사, 석웅황, 서각, 감초, 계피, 작약, 꿀 등이 들어가며, 소의 담낭에 생긴 결정인 우황을 중심으로 약재들을 잘게 빻아서 둥글게 뭉쳐 금박을 입혀 만든 것이다.
동의보감에는 중풍 초기에 갑자기 쓰러져 의식이 혼탁하고 가래가 끓고, 혀가 굳어지고, 손발이 마비되거나 눈과 입이 삐뚤어지는 등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복용해 정신을 차리게 하고 되살리는 약이라고 나와 있다.
이렇게 수백년 이어온 우리 민족의 명방은 현재 10여 곳의 제약사가 일반의약품으로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특히 그 중 점유율 3분의 2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광동제약의 우황청심원은 허준의 동의보감 처방전을 그대로 재현한 의약품이다.
▲광동 우황청심원 옛날 지면광고. (사진=광동제약)
한방을 현대 과학화하여 대표 상품으로 키우겠다는 고 최수부 창업주의 결심 아래 밤낮 없는 연구와 효능 실험을 거쳐 1973년 제조 허가를 취득, 1974년 ‘거북표 원방우황청심원’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청심원 시장은 “제비 몰러 나간다~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 광고로 유명한 조선무약의 솔표가 장악하고 있었지만, 거북표는 출시하자마자 고객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최고경영자가 손수 약제를 고르고 제조유통 과정까지 관리하며 정성을 기울인 만큼 효능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회장이 직접 TV출연…당시엔 파격
특히 최 창업주가 직접 TV 광고에 출연해 “최씨 고집으로 직접 원료를 골라왔다”고 강조하는 멘트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당시 기업주의 CF 출연은 파격적인 시도였지만 그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후 광동은 1990년 ‘효소 처리에 의한 우황청심원 제조 방법’에 대한 특허 출원에 성공, 이듬해 마시는 우황청심원 현탁액을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환 형태의 약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 이를 성인 기준 1회 복용량인 30ml의 액체로 만들어 체내 흡수율도 높였다. 기존의 청심원은 한약 특유의 냄새와 쓴맛이 나는 단점이 있지만, 현탁액은 마시기 편하고 효과도 빨라 젊은 고객층을 끌어들이는 데 일등공신으로 작용했다.
▲광동 우황청심원 TV 광고에 직접 출연한 최수부 광동제약 창업주. (사진=광동제약)
2000년대 초반까지 거북표와 솔표는 청심원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며 라이벌 관계를 이어왔다. 그러나 광동제약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R&D에 매진했고, ‘영묘향(사향고양이 분비물)’ 개발에 성공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1993년 한국이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면서, 청심원의 주성분인 사향(사향노루의 생식기에 붙어있는 사향선을 건조시킨 약재)의 수급이 힘들어졌다. 이에 광동은 원처방 한방 원리에 최대한 충실하기 위해 2000년 영묘향을 사향대체제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과학적으로도 그 효과가 입증됐다.
실제로 2000년 생약학회지에 발표된 논문 ‘사항함유 우황청심원액과 영묘향함유 우황청심원액의 혈압강하작용 및 적출심장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약리효능비교’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고농도 영묘향과 사향함유 우황청심원액간의 효력비교에 있어 통계상 의미 있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스트레스 등 긴장에 의한 불편함을 없애는 증상을 호전시키는데 사향 함유 청심원과 영묘향 함유 제품 모두 뛰어난 효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광동 우황청심원 현재 이미지. (사진=광동제약)
반면 다른 제약사들은 ‘L-무스콘’이라는 화학 성분을 대체제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L-무스콘은 빛을 받으면 자동 휘산(揮散)하는 경향이 있어 물질이 불안정하고, 40여종에 달하는 천연사향의 성분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어 ‘영묘향’보다 시장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광동제약 우황청심원은 2000년대 중반부터 압도적인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또 지난해 매출 372억원을 기록하며, 전체 일반의약품 중 가장 많이 팔린 제품 4위에 올랐다.
최 창업주는 지난 2013년 타계 전까지 매주 경기 평택시 송탄공장으로 내려가 직접 우황청심원에 들어가는 약재를 살폈다. 최 창업주는 “약재가 약효를 좌우하기 때문에 아무리 비싸더라도 좋은 약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약품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한 치의 소홀함도 있을 수 없다”며 손수 약재를 고르는 이유를 밝혔다.
광동제약 관계자는 CNB에 “우리 선조들의 구급처방약이었던 우황청심원은 한방 과학화를 표방하며 출범한 광동제약의 대표 제품”이라며 “40년 넘게 쌓인 노하우로 내 가족이 복용한다는 생각으로 한약재 선별부터 제조 과정까지 엄격하게 관리하며 정성을 다하여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우황청심원은 ‘기사회생의 영약’이라는 유명세 때문에 만병통치약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많다.
광동제약 관계자는 “약국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인 만큼 약국에서 약사를 통해 복용 가능 여부와 적정 복용량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CNB=김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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