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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문재인 정부’ 개막, 재계 기로에 서다

여소야대 반쪽 정부, 재벌개혁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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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7.05.10 08:54:34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자신의 당선이 확실시된 9일 자정께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지지자들과 환호하고 있다. (왼쪽부터)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문 대통령,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시대가 열리면서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벌개혁을 화두로 내걸고 대선에서 승리한 만큼 그동안 대기업들이 반대해온 각종 규제법안들이 탄력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총수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 삼성과 롯데그룹은 물론, 경영승계, 사업재편을 진행 중인 기업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CNB가 ‘문재인표 재벌정책’의 향배를 심층 분석했다. (CNB=도기천 기자)  

재벌개혁 내건 文정부 출범
일부 공약 심상정보다 ‘왼쪽’
총수 재판 중인 기업들 촉각
“연정 못하면 공염불” 전망도

“결국 올 것이 왔다. 대관팀을 중심으로 새정부의 대기업 정책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있다. 촛불정국에서 형성된 반(反)재벌정서가 더 커지지 않을까 우려된다.”(A대기업 고위임원)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의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 되던 지난달부터 주요 대기업들은 대관부서를 중심으로 촉각을 곤두 세웠다. 그가 내건 경제공약은 물론, 재벌개혁의 사령탑에 누가 선임될 것인지까지 여러 변수를 놓고 고민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문 대통령의 재벌정책이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기본적인 입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대기업들에게 법인세 인하 등 많은 혜택이 돌아간 만큼, 지금부터는 성장의 열매를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이 나눠 갖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가 ‘정경유착’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현재의 재벌을 적폐·구태세력으로 규정해 개혁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촛불민심 또한 재벌개혁을 적폐 청산의 1순위로 꼽고 있다. 그는 TV토론 등에서 “재벌이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재벌의 불법경영승계 및 부당특혜 근절, 문어발식 확장 방지, 전면적인 지배구조 혁신, 주주권(투명성) 강화 등을 약속했다. 다만 큰 혼란이 예상되는 만큼 최상위 4대 재벌(범삼성·현대차·LG·SK그룹)부터 시작해 점차 개혁 범위를 넓힐 생각이다.      

이렇게 되면 우선 대주주 일가가 순환출자 등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그동안 기업들은 2,3세로의 경영승계를 위해 계열공익법인, 자사주, 우회출자 등을 통해 지배력을 높여왔다. 앞으로는 이런 류의 편법증여에 대한 감시가 강화될 예정이다. 

오너 일가에 대한 주주들의 견제도 세진다. 그동안 대부분 기업들의 정기주주총회는 3월 하순의 금요일에 집중돼 왔다. 그러다보니 두 곳 이상의 주식을 가진 주주는 한 회사의 주총 밖에 참석할 수 없었다. 매년 새로 선출되는 사외이사들이 총수 일가의 ‘거수기’라는 지적을 받아 왔지만, 소액주주들이 이에 제동을 걸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문 대통령은 우선 전자투표제를 도입해 오너 일가의 전횡을 감시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전자투표는 주총장에 가지 않고 컴퓨터·스마트폰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온라인 투표다. 2010년 5월에 시행됐지만 도입 여부를 기업자율에 맡겨둔 탓에 아직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또 모회사 주주가 불법 행위를 한 자회사(또는 손자회사) 임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낼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 주총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주주에게 이사 수만큼 의결권 개수를 부여하는 집중투표제 등도 검토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벌개혁의 범위를 우선 재계순위 상위권 대기업부터 시작해 점차 넓힐 생각이다. (왼쪽부터) 구본무 LG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금산분리 강화’ 4차산업혁명 걸림돌

문 대통령은 특히 재벌의 금융자본 소유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은행·보험·증권·제2금융을 대주주의 지배로부터 독립시키겠다는 취지의 은산분리(금산분리) 강화 원칙을 천명한 상태다. 

은산분리는 비금융회사(산업자본)가 금융사 지분을 10% 이상 보유(의결권은 4%이내)할 수 없다는 이른바 ‘10% 룰’을 이른다. 재벌그룹이 금융계열사를 동원해 자신들이 지배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소위 ‘은행의 사금고화’ 현상을 막기 위한 취지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양그룹이 계열사인 동양증권을 통해 수조원대에 이르는 부실 회사채(CP)를 발행해 5만여 명의 피해자를 낳은 2013년 ‘동양 사태’를 계기로 재벌의 금융사 소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돼 왔다.   

문 대통령은 국회의 은산분리 완화 움직임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으며, 한 발 더나가 계열사 간 자본 출자가 적정범위를 넘지 않는지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통합금융감독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뜨거운 감자’인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 여부도 관심사다. 집단소송제는 한 명의 피해자가 가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손해를 인정받으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나머지 피해자들은 별도의 소송 없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은 다수 소비자들의 피해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집단소송제를 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몇 년 새 연이어 발생한 대형 소비자 사건들로 인해 필요성이 부각됐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태, 생명보험사들의 자살보험금 미지급 논란, 카드 3사(KB국민카드·NH농협카드·롯데카드)의 고객 정보 대량 유출사건 등이 배경이 됐다. 그동안 국회에서 몇 차례 도입 논의가 있었지만 기업들의 반발로 법안이 상정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소비자 분야에 한해 제도 시행이 필요하다는 ‘조건부 찬성’ 입장이다. 하지만 말이 조건부지 사실상 모든 분야에 도입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다. 지금까지 발생한 대형 피해 사건들이 전부 유통·금융 등 소비자 영역이라는 점에서다. 

기업이 실제 소비자가 입은 피해액보다 더 많은 배상을 하도록 한 ‘징벌적 손해배상’도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은 이를 공약에 넣지는 않았지만 지난달 ‘대선후보 강연회’에서 “나쁜 기업이 더 이상 시장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를 현행 3배에서 10배로 높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경실련·금융소비자연대·서울YMCA·소비자시민모임·소비자와 함께·언론개혁시민연대·진보네트워크센터·참여연대·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9개 단체가 보낸 질의서에서도 문 대통령은 집단소송제·징벌적 손해배상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지난 겨울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최순실과 재계 간의 유착관계를 비판하며 재벌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주주권 강화, 진보정당 보다 적극적

문 대통령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온 핸드폰 기본요금 폐지에도 적극적이다. 시민·소비자단체는 SKT·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들이 부과하고 있는 약 1만1000원의 기본료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부터 ‘기본료 폐지’를 약속해왔다. 

일감몰아주기, 부당내부거래, 납품단가후려치기 등 재벌의 ‘갑질’ 횡포에 대해서는 기존 민주당 산하 기구인 ‘을(乙)지로위원회’를 강화하는 한편 검찰·경찰·국세청·공정위·감사원 등 권력기관이 망라된 범정부 차원의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수사를 철저히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재벌 총수의 사면에 대해서도 무관용 원칙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최근 대선토론회에서 “반시장범죄를 저지른 재벌은 엄벌해야 한다. 사면권은 국민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행사 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비리 혐의로 재판 중인 기업총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이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이 여소야대 정국에서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계는 정치권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진=CNB포토뱅크,연합뉴스)


과반득표 못해…‘반쪽 개혁’ 되나  

이 같은 문 대통령의 재벌 정책은 대선 상대였던 안철수(국민의당), 홍준표(자유한국당), 유승민(바른정당) 후보 보다 훨씬 왼쪽에 있다. 심지어 주주권리 강화, 핸드폰 기본료 폐지 등에 있어서는 진보정당 후보였던 심상정 정의당 대표보다도 적극적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약속한 대로 재벌개혁이 진행될 경우, 구여권 및 재계와의 상당한 마찰이 예상된다. 문 대통령이 속한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수가 119석(전체의석의 39.8%)에 불과한데다, 이번 대선의 특성상 대통령 인수위원회 없이 정부가 출범하기 때문에 정권 초기부터 각종 잡음이 일 우려가 있다.  

우선 재계는 문재인 정부의 은산분리 강화 방침에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은 ICT기업을 통해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보급한다는 목표 하에 작년 초부터 인터넷전문은행 개점을 추진해왔다. 국회도 이에 부응해 산업자본의 의결권 있는 은행지분 소유를 34%~50%까지 대폭 늘리는 내용의 관련법안들을 상정했다. 

이런 가운데 KT, 우리은행, GS리테일, NH투자증권, KG이니시스 등이 컨소시엄을 이룬 ‘K뱅크’와 카카오 주도로 한국투자금융지주·국민은행, 넷마블게임즈, 이베이 등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카카오뱅크’가 최근 출범했거나 출범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탄핵과 조기 대선 정국에서 법안 처리는 물 건너갔고, 지금은 오히려 은산분리를 강화하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이대로라면 ‘K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은산분리 장벽에 막혀 경영권을 주도적으로 행사할 수 없고 과감한 투자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또 금융당국의 사업자 추가 모집(2차사업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런 측면에서 ICT 대기업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CNB에 “은행법(은산분리)이 핀테크 산업을 가로막고 있는 모양새”라며 “법개정 없이 4차산업혁명을 말하는 것은 ‘창과 방패’(모순) 같은 얘기”라고 꼬집었다. 

핸드폰 기본료 폐지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현실적인 우려가 있다. 애초 기본료는 통신사들의 망 구축·관리 등에 소요되는 초기비용을 소비자가 분담하자는 취지에서 생성됐다. 따라서 기본료가 없어지면 5G나 AI·VR 등 신규 서비스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 우려가 있다. 또 통신사들이 기본료 폐지에 따른 연7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서비스 요금을 인상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에서 대선 후보들 중 가장 진보적인 심상정 대표조차도 기본료 폐지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심 대표는 이동통신서비스를 보편적 서비스로 지정해 통신요금 자체를 인하하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이통시장이 포화 상태인 상황에서 강제적인 가격 인하가 시행된다면 4차산업 자체가 크게 위축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전자투표제 도입도 꺼리는 분위기다. 이 제도가 의무화되면 투기자본 등의 악의적 루머 공격 때 투표 쏠림이 나타나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이밖에 집단소송제는 기업이 패소할 시 막대한 경제적인 부담을 지게 된다는 점과 소송 남발로 인한 사회적 문제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또한 적용 대상 기업의 기준이 모호하고, 민법과 형법에 의한 이중 처벌 등이 법리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  

▲문 대통령의 득표율이 과반에 못 미친데다, 그가 속한 민주당 의석수가 전체의석의 39.8%에 불과해 공동정부(연정)가 성사돼야 재벌개혁도 속도를 내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9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벌 운명, 文 정치력에 달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문재인표 재벌개혁’이 변죽만 울리다 끝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결국 공동정부(연정)의 성사 여부에 재벌의 운명이 달린 것으로 판단했다.  

대중문화평론가 구병두 교수(서경대)는 CNB에 “문 대통령이 과반 득표를 얻지 못한데다 민주당 의석수가 절반에 못 미친다는 점에서 공동정부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재벌개혁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며 “당장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이 마음을 열기는 힘들어 보이는 만큼 (재벌개혁이) 속도를 내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대선 기간 내내 대척점을 형성한 문재인-안철수 간 앙금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문재인 캠프의 정세현 조직특보는 CNB 기자와 만나 “만약 공약대로 재벌정책이 진행된다면 엄청난 반발과 진통이 따르게 된다. 문 대통령이 당선 직후 통합을 강조하며 야당(자유한국당 등) 당사부터 찾아가겠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라며 “결국 정치권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앞에는 개혁과 통합이라는 두 개의 길이 놓여 있다. 통합에 방점을 두면 개혁은 그만큼 후퇴할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식 리더쉽’이 어떤 식으로 힘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두 길은 하나로 합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재벌개혁은 그의 정치력을 시험할 첫 번째 대상이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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