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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업의 ‘메세나 쏠림 현상’ 해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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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  2017.05.08 16:56:20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이 다양한 장르로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크라운해태가 체코 프라하에서 개최한 '한국의 풍류' 공연 모습 (크라운해태 제공)

대뜸 하는 취미에 대한 고백이다. 나의 연극 취향은 분명하다. 무명배우가 나오고 입소문을 덜 탄 작품을 선호한다. 점차 대중들이 알아봐주는 데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영화나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가끔 그림도 그린다. 물감을 휘휘 저어 새하얀 도화지를 채우는 행위는, 늘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만 그 자체만으로 창조적이라 신기함을 느낀다. 아르놀트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기자는 정치와 본격적인 문학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는다”고 했던가. 일상에서 정치적 상황을 표류하다 소설적 상상을 하는 일은 발칙해서 가둬두기 어렵다. 그래서 이 같은 상상을 적기도 한다. 나의 취미 안에서 문화예술은 다양하면서 변형 가능하다는 데 가치가 있다.

놀이가 일이 되어 깊이 관찰하게 된 건 몇 해 전 문화부에 배정받고 나서다. 새내기 문화부 기자에겐 “되도록 알려지지 않고, 작은 규모의 문화예술 단체(인)”를 취재하란 지시가 떨어졌다. 문화계 속살을 들여다보기에 그만한 취재처가 없다나.

그때의 기억은 크게 두 가지 장면으로 가슴에 고여 있다.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무료 인형극을 여는 극단 단원들이 헝겊 인형을 정성스레 어루만지던 모습. 그들은 장사 시작 전 고깃집을 빌려 연습하고 있었다. 또 하나는 은퇴 후 사비를 들여 전통문화를 연구하던 노신사의 반짝이던 눈빛. 열정을 머금은 그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우리는 그들 모두를 문화예술인이라 불렀다. 

때마침 공교롭게도 한 스타작가의 밀려드는 스폰서십을 취재하게 됐다. 알려지기로는 이미 여러 단체에서 막대한 후원을 받고 있었지만, 명성에 힘입고자 돈을 더 대려는 단체가 줄 서 있었다는 내용을, 나는 취재를 통해 알게 됐다. 대기 중인 후원자는 지자체·기업 할 것 없이 다양했다. 

사람들은 그를, 그가 몸담은 예술장르를 주류라 불렀다. 기름기 머금은 고깃집 테이블을 무대삼아 연습하던 극단이나 사명감 하나로 제2의 삶을 시작한 노신사는 비주류로 일컬어지는 무명으로서, 후원을 자처한 이는 없었다. 이 대목에 이르러 드는 생각 하나. 지원의 과잉과 효율적인 분배, 어느 쪽에 더 의미가 있는가.

지난 7개월간 기업들의 메세나 활동을 취재하며 각 문화예술 장르를 바라보는 온도차를 확인했다.

[연중기획-문화가 경제]를 연재하는 동안 약 40개 기업에 의뢰해 자료를 받았다. 이 가운데 ‘미술’ ‘클래식’이라는 열쇳말이 들어가는 지원활동을 추려봤더니 미술(14개)과 클래식(13개)이 타 분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문학계를 응원하기 위해 ‘삶의 향기 동서문학상’을 제정한 동서식품, 전통문화를 현세대와 전세계에 알리고 있는 크라운해태 정도가 지원분야와 형식에 있어서 ‘특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최근 2년간 발표된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 조사’를 보면 문화예술 각 분야에 대한 지원 차이를 확연히 볼 수 있다. ‘2015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 조사’(※한국메세나협회는 통상 7월에 전년도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결과에 따르면 분야별 지원금액은 인프라(958억9200만원)를 제외하고 클래식이 201억40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미술 전시 164억9000만원과 문화예술교육 110억1000만원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전통예술은 31억3600만원, 무용은 32억3400만명, 문학은 35억4600만원 지원받는 데 그쳤다.  

전년도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4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 조사’에서도 ‘클래식’과 ‘미술’ 장르에 지원이 집중돼 있었다. 기업들이 클래식에 204억95000만원을, 미술전시에 126억9500만원을 쓸 때, 무용(28억1700만원), 연극(49억4200만원), 문학(44억1700만원), 국악(61억3300만원), 뮤지컬(51억1200만원), 영상·미디어(45억8200만원)는 상대적으로 적은 지원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풍족이 아닌 결핍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 기회의 공평함을 논한다. 한 쪽이 부풀면 다른 한 쪽엔 그림자가 드리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 결핍이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풍족한 부분을 도려내 부족한 부분을 채우자는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은 한 두 장르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생각보다 방대하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건 문화예술에 얄팍한 취미가 있는 누군가와, 이웃을 위해 헝겊 인형을 한 땀 한 땀 손바느질하고, 고문서와 밤새 씨름하는 무명 예술인들이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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