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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격랑의 삼성號, 이재용·미전실 그 후

총수 공백 두 달…‘위기와 기회’ 갈림길에 선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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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7.04.19 15:13:49

연일 최고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표정이 밝지 않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이후 인수합병(M&A)과 투자가 사실상 올스톱 상태인데다, 사령탑 역할을 해온 미래전략실(미전실)의 해체로 조직편제가 혼선을 겪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전자-바이오-금융 3대축을 중심으로 수직계열화를 완성하고자 했던 지배구조 혁신에도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위기의 삼성호(號)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CNB=도기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4번째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M&A·투자·사업재편 ‘올스톱’
계열사 각자도생, 시너지 無
혼란 속 ‘협의체 구성’ 주장도

삼성전자가 지난 7일 공시한 1분기 영업이익(잠정실적)은 역대 두 번째로 많은 9조9천억원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48.2%(3조2200억원), 전분기 대비 7.38%(6800억원) 증가한 수치다. 이 중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6조원 넘게 차지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글로벌 산업지형이 ‘IT중심’으로 바뀌면서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수요증가 및 가격상승이 이어지고 있는데, 삼성이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 반도체의 슈퍼호황에다 최신형 스마트폰 ‘갤럭시 S8’의 가세로 2분기 흑자 규모는 사상 최고치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런데도 삼성 수뇌부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반도체 의존율이 지나치게 높은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재로 그룹의 성장 엔진이 멈춰 섰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17일 뇌물공여 혐의 등으로 구속된 상태다. 검찰은 삼성이 최순실씨가 실소유주인 미르·K스포츠재단에 건넨 298억원을 ‘뇌물’로 보고 있다. 자금 출연의 대가로 청와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국민연금을 통해 도움을 줬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서울 서초동 삼성 본사 사옥. (사진=연합뉴스)


미래 성장엔진 멈춰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삼성전자의 주요 투자는 제자리걸음이다. 글로벌 업계가 4차 산업혁명으로 요동치고 있지만 앞으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듯한 모습이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 최대 전장기업 ‘하만(Harman)’을 무려 9조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인수해 놓고도 후속 플랜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하만은 지난해 매출 70억 달러, 영업이익 7억 달러를 기록한 세계최대 전장 기업이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모든 전자전기·전자회로를 일컫는 전장부품은 자율주행 기술의 성장과 함께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장 시장규모가 연 평균 13%씩 증가해 2025년 1864억달러(215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래먹거리로 전장사업을 점찍은 삼성그룹은 작년 11월 삼성전자를 통해 9조4000억원에 하만을 인수했는데, 하만이 현대차와 거래하고 있는 만큼 삼성으로서는 현대자동차그룹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황승호 현대차그룹 부사장은 최근 제주에서 열린 ‘제4회 국제전기자동차 엑스포’에서 “자율주행차 사업에 있어 완성차 업체로서 부족한 부분은 ICT 업계와의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협력해 나갈 것”이라며 삼성과의 공조를 시사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이렇다 할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병상에 있는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지난 3년 간 계열사 사업재편과 매머드급 M&A 등 쇄신을 주도해왔다. 특유의 ‘선택과 집중’ 전략을 내세워 삼성의 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전면에 등장한 건 2014년 5월경이다. 그해 이 부회장은 비디오앱 서비스 개발업체 ‘셀비’ 인수를 시작으로 미국 공조전문 유통회사 ‘콰이어트사이드’, 캐나다 모바일 클라우드 솔루션업체 ‘프린터온’, 미국 사물인터넷 플랫폼 개발회사 ‘스마트싱스’, 서버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소프트웨어 업체 ‘프록시멀 데이터’ 등을 사들였다.

이듬해에는 브라질 최대 프린트 서비스 업체 ‘심프레스’, 미국 모바일 결제 솔루션업체 ‘루프페이’, 미국 상업용 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업체 ‘예스코일렉트로닉스’ 등을 인수합병 했다. 

작년에는 M&A와 투자가 최고조에 달했다. 하만을 인수한 것을 비롯,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업체 ‘조이언트’와 캐나다 디지털광고 스타트업 ‘애드기어’를 사들이고,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에 5100억원 상당의 지분 투자를 했다. 또 미국 럭셔리 가전 브랜드 ‘데이코’를 품에 안은 데 이어 인공지능(AI) 플랫폼 개발기업인 ‘비브랩스’를 사들였고, 삼성전자 프린터사업부는 미국 HP(휴렛팩커드)에 매각했다.

이후 이 부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출국금지 조치로 발이 묶인 상태에서 검찰과 국회, 박영수 특검팀에 불려 다니기 바빴고, 결국 뇌물공여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의 M&A와 투자도 ‘올스톱’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투병 중인 지난 3년간 사업재편과 매머드급 M&A를 성사시키며 쇄신을 주도해왔다. 사진은 갤럭시노트7 배터리 발화 문제가 불거진 2016년 9월 21일 갤럭시노트7을 손에 쥔 채 서초동 삼성사옥으로 출근하고 있는 이 부회장의 모습. 배터리가 위험하지 않다는 걸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사진=연합뉴스)

재계 “남 얘기 아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공백이 산업 전반에 끼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재계 한 고위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국내 수출을 주도하고 있고, 호실적으로 증시를 견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의 기업 얘기가 아니다”며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이 들어가는 대형 M&A나 신사업 투자는 총수의 결단과 실행력이 요구되는 분야인 만큼 이 부회장의 공백에 따른 리스크가 커 보인다”고 말했다.

더구나 삼성이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 사업이 언제까지 황금알을 낳을지도 의문이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모바일 D램 가격이 부담스러운 수준으로 높아져 수요둔화가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등이 장기적으로 수요 감소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중국정부는 2025년까지 1조 위안(약 17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산업을 일으킬 계획이다. 이는 자체 생산을 크게 늘리겠다는 것으로 세계시장에서 공급과잉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이 부회장의 부재는 M&A와 투자 뿐 아니라 사업 재편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삼성의 경영혁신은 2013년 연말 제일모직의 패션사업부문을 삼성에버랜드에 넘기면서 시동을 걸었다. 2014년엔 삼성SDS, 삼성에버랜드, 제일모직, 삼성SDI 등 핵심계열사들이 줄줄이 합병·이전 등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2015년에는 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 등 4곳을 한화에 매각한 데 이어 삼성SDI의 케미컬 부문 등 3곳을 롯데에 넘기는 등 방위·화학 사업을 정리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도 성사시켰다.  

앞으로의 큰 그림은 삼성전자 중심의 전자 계열사와 삼성생명 중심의 금융 계열사, 그룹 차원 신수종 사업인 바이오 분야 등 3대 축을 중심으로 수직계열화를 완성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TV와 가전 등 주력 4축을 기반으로 일부 사업은 매각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는 확장하는 작업이 계속돼 왔다.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등 건설·중공업 분야의 재편도 과제다. 삼성생명의 중간 금융지주회사 전환, 삼성전자를 투자회사(홀딩스)와 사업회사로 분할하는 등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드는 일도 남아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부재로 앞날이 안개속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24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지주회사 전환은 지금으로써는 실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특히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전실의 해체는 앞날에 대한 우려를 더하고 있다. 미전실은 이 부회장이 기소된 날인 2월 28일 전격 해체됐다. 

미전실을 이끌었던 최지성 전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차장(사장), 7명의 팀장은 모두 퇴사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던 사장단 회의도 사라졌다. 매년 12월 미전실을 통해 발표됐던 사장단과 임원 인사가 5개월째 시행되지 못하고 있고, 조직개편도 미뤄지고 있다. 미전실 소속 임직원 중 적지 않은 수는 아직 보직을 받지 못하고 대기상태에 있다. 

삼성의 사회공헌 활동도 위축됐다. 종전에는 그룹이 각 계열사로부터 분담금을 거둬들여 다양한 기부활동 등을 했으나 미전실이 사라진 이후 계열사들이 관련 비용을 줄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10억원이 넘는 기부금이나 후원금, 출연금 등을 낼 때는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거치고 해당 내용을 공시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는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데 따른 반성에서 나온 조치다. 

▲오너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삼성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는 여전하다. 18일 서울 광화문 KT스퀘어에서 열린 갤럭시S8 및 S8플러스 사전개통 행사에서 예약가입자들이 줄지어 개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 상황은 위기이자 기회”

미전실 폐지 이후 삼성 계열사들은 각사 이사회 중심으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컬처혁신 2.0’을 선언하며 조직문화 혁신에 나서고 있다. 직급과 호칭, 회의와 보고, 제안 방식, 야근 관행 등을 쇄신해 임직원의 창의력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다. 지난달부터 부장~사원 등 5단계로 이뤄진 직급을 CL(경력개발단계) 1~4 등 4단계로 단순화했으며, 보고체계를 간소화하고 출퇴근, 야근을 효율성 있게 조절했다. 

삼성생명·화재·카드 등 금융계열사 임원들은 지난달 13일부터 출근 시간을 오전 6시 30분에서 8∼9시로 조정했다. 2012년 7월 미전실을 시작으로 전 계열사 임원이 시행해왔던 조기출근제를 사실상 폐지한 것이다. 삼성전자나 삼성디스플레이 등에서는 삼성 계열사만 고집하지 않고 외부 업체들과의 경쟁을 통해 납품사를 선정하는 사례도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획일적 삼성’을 벗어나 미국 실리콘밸리의 IT기업처럼 유연하고 가벼워지자는 시도로 평가된다. 

강명재 한국외대 경영학부 겸임교수는 CNB와의 통화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은 삼성 구성원들에게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주고 있다. 그룹차원의 대규모 투자와 구조조정, 계열사 간 시너지를 일으키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겠지만, 획일적인 조직문화에서 탈피해 계열사별 특성에 맞는 효율적인 기업문화를 새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우선은 과거 총수 공백을 겪었던 CJ나 SK의 사례처럼 계열사 수장들이 함께하는 논의기구 설립이 시급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삼성 관계자는 CNB에 “이 부회장 구속과 미전실 해체로 그룹 전체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점차 각사 별로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정착해 나갈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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