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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진짜 적폐는 대기업만 봐주는 제도들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 결국 소비자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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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이성호기자 |  2017.04.13 14:04:13

▲(사진=CNB포토뉴스)

지난 2014년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던 카드 3사(KB국민카드, NH농협카드, 롯데카드)의 개인정보 대량유출 사건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당시 사건은 무려 약 1억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성명·주민번호·휴대전화번호·주소·직장명 등 개인정보는 물론 결제계좌·연소득 등 신용정보가 새나갔다. 막대한 유출건수로 인해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된 사태였다. 

이에 전국적으로 개인 또는 집단으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에서는 카드사들에게 고작 1인당 1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이마저도 불복해 항소, 지금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현행 제도들이 얼마나 소비자에게 불리하고 대기업에게 유리한 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동안 소비자단체들이 쉼 없이 개선을 요구해온 제도들의 문제점이 이 사건에 그대로 녹아난 것이다. 

우선 이번에도 어김없이 소멸시효제도가 소송의 걸림돌이 됐다. 소멸시효는 소비자가 일정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청구권이 소멸되는 제도다. 기업들이 이를 악용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최근 1년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자살보험금 지급 거부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삼성·교보·한화생명 등 내로라하는 대표 브랜드 생보사들이 소멸시효가 지났다면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고 이에 금감원이 이들 기업에게 철퇴를 내렸다. 법 따로 징계 따로인  희한한 현실이 벌어졌고 빅3는 징계를 코앞에 둔 시점에 보험금 지급을 결정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소멸시효를 의식한 카드사들이 재판을 최대한 길게 끌었다. 그러는 사이 올해 1월 8일자로 소멸시효 3년이 완성돼버렸다. 

금융소비자연맹이 소멸시효 직전인 1월 7일 추가소송을 제기했지만 참여자가 2000여명에 불과했다. 앞서 재판을 제기해 소송이 진행 중인 경우를 전부 포함하더라고 최종적으로 보상을 받게 될 사람은 수십만명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국민이 카드 1~2개씩은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전 국민이 피해자인데도 보상받는 이는 소멸시효로 인해 ‘새 발의 피’가 된 것이다. 그나마도 법원이 제시한 배상액은 1인당 10만원 안팎이다. 

두 번째는 소송을 제기한 사람만 보상받을 수 있는 현실이 여전히 개선되고 있지 않는 점이다. 미국·영국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집단소송제도가 수년 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집단소송제는 피해를 입은 소비자 중 일부가 기업 등 가해자를 상대로 승소를 하면 동일한 피해를 입은 나머지 소비자들도 별도의 소송 없이 그 판결의 효력(기판력)으로 인해 모두 구제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이 제도가 대기업들의 반대로 도입되지 못해 이번에도 소송을 제기한 극소수 소비자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징벌적손해배상제도가 매우 약하다는 점도 이번 카드사 개인정보유출 사태에서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징벌적손배소는 가해자의 행위가 고의적·악의적·반사회적 의도로 불법행위를 한 경우 피해자에게 입증된 재산상 손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의 배상을 하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는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과 함께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함으로써 불법행위가 반복되는 상황을 막고 다른 사람이나 기업 등이 유사한 부당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 

실제로 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국가들의 기업 도덕수준이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훨씬 높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카드사들이 외부업체에 아웃소싱을 줬다가 개인정보가 유출된 데서 비롯됐다. 보안관리를 허술하게 해온 것으로, 명백한 카드사의 실책이다. 그럼에도 국가가 이들에게 내린 벌금은 고작 국민카드·농협카드는 1500만원, 롯데카드 1000만원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카드사들은 못 낸다며 항소한 상태다. 

이처럼 기업의 잘못으로 소비자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기업은 별 타격을 안 받는다. 설령 소송에 패소하더라도 소송을 제기한 사람에게만 보상 해주면 되고, 그밖에 불이익은 거의 없다. 이는 기업들이 불법행위를 해도 용인해주는 구조다.

경실련·금융소비자연대·서울YMCA·소비자시민모임·소비자와 함께·언론개혁시민연대·진보네트워크센터·참여연대·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9개 시민·소비자단체들은 지난달 대선 주자들에게 소비자권리를 위한 개혁과제에 징벌배상제·집단소송제를 반드시 공약해줄 것을 요구했다.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이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해주길 바란다. 

“기업활동을 제한하지 말라”는 재계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일 게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어린 생명들을 먼저 생각하길 바란다. 그때 이런 제도들이 있었으면 기업이 그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겠는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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