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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못다 핀 롯데의 꿈…신동빈, 위기와 도전의 교차로에 서다

창립 50년 한국롯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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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7.04.05 10:55:32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롯데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신동빈 회장이 기념사하고 있다. (롯데그룹 제공)

롯데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창립 50년을 맞아 숙원인 롯데월드타워를 개장하며 ‘뉴롯데’를 선언했다. 롯데는 현재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탈세·횡령 재판으로 번진데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위기와 도전의 교차로 한복판에 서 있는 롯데의 지난 반세기를 CNB가 되돌아 봤다. (CNB=도기천 기자)

가족 간 분쟁 깊은 생채기 남겨
30년 숙원 월드타워 씁쓸한 개장
신동빈 시대 열렸지만 살얼음판 
  
한국롯데의 모태인 롯데제과가 한국 사업을 시작한 지 50년이 되는 날인 지난 3일, 롯데그룹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생애주기 가치 창조자(Lifetime Value Creator)’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다. 고객의 모든 생애주기에 걸쳐 최고의 가치를 선사하겠다는 것이다. 

롯데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숙원인 롯데월드타워 개장식(그랜드 오픈)도 성대하게 열렸다. 세계에서 6번째,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신 총괄회장의 ‘뉴 롯데’를 향한 수십년 꿈이 고스란히 담긴 이 123층짜리 작품을 두고 롯데는 경제효과가 7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은 끝내 개장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도 불참했다. 롯데그룹은 개장을 며칠 앞두고 이들에게 초대장을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만이 행사장을 지켰다.   

신 총괄회장은 1988년 잠실 땅을 매입, 롯데월드타워 건립에 착수했지만 공군이 인근 서울공항 군용기와 충돌 가능성을 들어 반대하면서 진척을 보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서울공항 활주로 방향 변경 비용 등을 기부 채납하는 조건으로 건축허가를 받았다. 이날 정식개장까지 30년이 걸린 셈이다. 

▲0년간 한국 롯데그룹을 이끈 신격호(95) 총괄회장의 젊은 시절과 최근 모습. 신 총괄회장은 경영권 갈등과 건강문제로 ‘50주년 기념식’에 끝내 참석하지 못했다. (롯데그룹 제공)


‘롯데 신화’ 창조한 청년 신격호

1922년 10월 경남 울산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난 신 총괄회장은 1942년 관부 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우유배달을 하며 고학생활을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 작은 공장 하나를 세웠지만 폭격으로 공장이 전소되는 시련을 겪는다. 허물어진 공장에서 비누를 만들며 재기에 성공한 뒤, 일본에 주둔한 미군을 상대로 껌을 생산·공급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없어서 못 팔던 게 껌인 시절이다 보니 ‘청년 신격호’는 큰 돈을 벌었고,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를 세웠다. 이 회사가 ‘롯데’다. 

이후 신 총괄회장은 초콜릿 생산에 착수했다. 당시 초콜릿 산업은 ‘중공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제조방식이 까다로웠다. 신 총괄회장은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와 초콜릿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이후 롯데는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듭했다. 

일본에서 종합제과기업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신 총괄회장의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조국이 있었다. 그의 꿈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대한민국에서 과자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한·일 수교 이후 한국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해 한국에 진출했다. 1970년대에는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을 세워 국내 식품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어 롯데호텔과 롯데쇼핑이 설립돼 척박한 국내 유통·관광 산업이 처음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또 호남석유화학과 롯데건설 등으로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제과로 시작해 호텔·관광, 유통, 화학 등으로 덩치를 키운 롯데그룹은 오늘날 재계 5위권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1970년대 롯데제과 판매직원들이 거리홍보를 하고 있는 모습. (롯데그룹 제공)


수사·재판·사드…안팎 위기

하지만 지금 롯데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안으로는 가족 간 갈등과 검찰 수사, 밖으로는 중국의 사드 보복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있다. 

롯데의 위기는 신 총괄회장을 등에 업은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회장 간의 경영권 다툼에서 비롯됐다. 

이들 형제는 2013년경부터 롯데제과 롯데손해보험 롯데푸드 등 계열사 주식을 매입하며 지분경쟁을 벌였다. 그러다 신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그룹의 주요 임원직에서 해임되면서 분쟁이 마무리되는듯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이 2015년 7월 신 전 부회장,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신동빈 회장의 측근들을 해임하면서 다시 분쟁이 점화됐다.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은 한·일 양국에서 서로 간에 해임무효, 손해배상청구, 가처분, 업무방해, 재물은닉, 명예훼손 등 여러 소송을 벌였다. 신 전 부회장은 한국롯데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일본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를 통해 경영권을 장악하려 했지만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반대로 신 회장은 이 과정에서 주주들의 신임을 확인했고, 롯데그룹의 실질적인 경영자로 인정받았다. 

▲롯데가(家) 경영권 다툼 여파로 40여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신격호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 서미경씨의 최근 모습(왼쪽)와 미스롯데 시절 모습. (사진=CNB포토뱅크)


신 회장을 중심으로 롯데는 재정비에 들어갔지만 형제 간 분쟁은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95세 고령인 신 총괄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사실상 물러났으며, 가족 간 다툼 과정에서 탈세·횡령 등이 드러나 형사재판에 넘겨졌다. 롯데가(家)의 불행한 가정사도 세상에 알려졌다.    

법원이 최근 신 총괄회장에 대해 한정후견인(법정대리인) 지정을 결정한 이유는 신 전 부회장이 ‘아버지가 자신을 후계자로 낙점했다’며 내놓은 자료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결국 자식들 간의 다툼이 아버지를 뒤안길로 물러나게 한 것이다. 

여기에다 삼부자(三父子)는 비리 혐의로 나란히 기소됐다. 형제 간 갈등 와중에 횡령·탈세 등의 혐의가 드러난 탓이다. 신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이미 구속기소 된 상태며, 신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인 서미경씨(58)도 법정에 섰다.   

서씨의 등장으로 롯데 일가의 불운한 가족사도 세상에 공개됐다. 미스롯데 출신의 여배우였던 서씨는 스물두살 때인 1981년, 37살이나 많은 신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으로 낙점됐다. 당시 신 총괄회장에겐 이미 본처(시게미쓰 하츠코)와 전처(첫번째 부인 고 노순화)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집안 내 반발이 심했고, 끝내 서씨는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오랜 세월 동안 숨어 지내다시피하다 이번 재판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검찰 수사와 재판,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롯데는 최대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롯데백화점 소공점에 붙은 “당신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 중국어 홍보물. (사진=CNB포토뱅크)


폐쇄성이 망친 롯데, 투명하게 바꿔야

롯데는 이 같은 상처들을 치유하며 신동빈 회장 체제를 빠르게 강화하고 있다. 롯데월드타워의 개장과 함께 ‘포스트 신격호’ 시대를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형사재판은 다른 차원의 얘기다. 이미 불거진 신 총괄회장의 수백억원대 탈세·횡령 혐의로부터 신 회장은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다 롯데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의혹으로 삼성, SK, CJ 등과 함께 검찰 수사대상에 올라 있다. 이는 ‘집안 내 교통정리’와는 별개로 사법부의 판단 여부에 따라 롯데가 크게 흔들릴 수 있는 사안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의 계속되는 사드 보복이 롯데쇼핑, 롯데면세점, 롯데마트 등 유통계열사들의 실적을 크게 악화시키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99개 롯데마트 점포 중 80여 곳이 개점휴업 상태며, 중국인들의 ‘반(反)롯데’ 움직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처럼 가장 어려운 시기에 신동빈 회장은 롯데호(號)를 운항하게 됐다. 롯데 위기의 근원이 한국 재벌의 폐쇄적인 소유·지배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뉴롯데’의 비전은 미래지향적인 소통형 리더십에서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대중문화평론가 구병두 교수(서경대)는 CNB에 “총괄회장의 지시서로 임원 인사를 좌우해온 독재적인 행태, 작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순환출자 등 왕권 국가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들이 결국 큰 위기를 불러왔다”며 “회사가 내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민주적인 프로세스를 강화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롯데에게 가장 급한 일”라고 지적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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