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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민간인 박근혜에게 지지자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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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윤지원기자 |  2017.03.13 18:08:29

▲10일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저녁 삼성동 사저 앞에 도착해 지지자들 사이에서 웃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D-Day

10일 오전,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을 선고했다. 이견이 없는 8:0의 만장일치 선고였다. 선고 직후 각계각층의 성명이 발표되었다. 탄핵 인용을 주장하던 쪽에서는 헌재의 바른 판단을 환영한다고 밝혔고, 기각을 주장하던 쪽에서는 일부 불복해야 한다는 입장들도 있었으나 대체로 승복한다는 입장이 많이 나왔다. 헌재 탄핵 심판 과정 내내 첨예하게 대립하던 양측이지만 선고가 난 후에는 ‘갈등을 봉합하고 미래를 함께 준비하자’는 취지의 목소리가 가장 많았다.

그런데, 정작 입장을 발표해야 할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는 아무런 입장도 발표하지 않고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위치한 안국역 네거리 인근에서는 선고일 며칠 전부터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탄핵 기각 요구 집회가 이어졌다. 10일 선고 직후 이들의 집회 현장은 과격 폭력 시위 현장으로 변모했다. 한 집회 참석자가 경찰 버스를 강제로 탈취해서 차벽을 들이받는 과정에서 버스 위에 실려 있던 대형 스피커가 떨어졌다. 스피커는 버스 아래에 있던 70대 남성을 덮쳤고, 그는 살아남지 못했다. 당일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 몇 사람이 더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고, 끝내 두 명이 더 사망하고 말았다. 언론인들을 향한 무차별 폭력도 자행되었다.

폭력 사태에 관한 뉴스는 몇 시간이나 이어졌다. 그 사이 세 사람이 사망하고 십 수 명이 부상을 당하거나 쓰러져 병원으로 향했다. 누군가가 파면을 당한 일 때문에 벌어진 일 치고는 너무나 크고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들을 그토록 흥분하게 만든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는 어떠한 메시지도 나오지 않았다.


D+1

다음날 경찰은 전날 사망한 세 사람에 대한 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스피커 추락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 외의 두 사람의 사인은 노환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집회 현장에서의 폭력적 행위에 대해 엄중히 대처하겠다고 선언하고 집회 주최측의 자발적인 단속을 요청했다.

저녁에는 광화문광장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각각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열렸다. 이날 촛불 집회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인용을 자축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전날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시작됐다.

태극기 집회에서는 여전히 거친 발언이 쏟아졌지만, 폭력적인 행동은 자제하자는 목소리를 내며 전날보다 차분하게 집회를 마쳤다. 축하 집회와 불복 요구 집회가 끝나고 밤이 깊었지만, 아직 청와대에 머물고 있던 민간인 박 씨로부터는 어떠한 메시지도 나오지 않았다.

D+2

12일, 태극기는 안국역 네거리가 아닌 박 씨의 사저가 위치한 삼성동으로 몰려갔다. 광장이 아닌 주택가에 모여든 이들은 “탄핵 불복”을 외치며 자신들이 지지하는 박 씨를 감싸는 목소리를 드높였다.

저녁이 되어서야 박 씨는 청와대를 떠나 사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렸을 때, 탄핵 선고 이후 처음으로 언론에 노출된 박 씨는 웃고 있었다. 머리는 평소 공식 석상에 나설 때와 마찬가지로 공들인 올린 머리였다. 

박 씨는 윤상현, 김진태 의원 등 사저 앞에 도열해 있던 친박 정치인들과 잠시 얼굴을 가까이 하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사저로 들어갔다. 수많은 언론과 지지자들이 모여 있었지만 박 씨는 끝내 자신의 입으로는 어떤 입장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민경욱 자유 한국당 대변인이 박 씨의 메시지를 대신 전했다. 

민 대변인이 밝힌 박 씨의 입장은 이랬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대국민 사과는 커녕 자신의 파면을 지속적으로 요구한 촛불 민심을 향한 사과가 아니었다. 헌재 선고에 대한 겸허한 승복의 의사도 아니었다. 자신이 그렇게 사랑한다던 대한민국의 앞날에 대한 당부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언론이 “사실상 불복 선언”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정확히 불복하겠다고 선언하는 워딩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대신해서 목 놓아 울며 불복을 외치다 사망한 세 사람의 국민에 대한 애도의 메시지가 없었다. 

박 씨의 짧은 전언은 자신을 탄핵으로 이끈 진실이 왜곡되어 있으며 자신은 여전히 억울한 피해자라는 것만 암시하고 있다.

시간이 걸리도록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게 한 것은 박 씨 자신이다. 그간 언론과 특검과 헌재는 박 씨에게 진실이든 변명이든 나서서 밝히라는 요구를 여러 차례 했다. 기회를 주고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하고, 기한을 정해주고, 미루고, 엄포를 놓아도, 내내 입을 꼭 다물고 진실을 은폐하려고 애쓴 것은 박 씨 자신이다. 자기 입으로 대국민 담화를 통해 검찰 수사와 헌재 심판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최선을 다해 이 약속을 어긴 것은 박 씨 자신이다. 그리고 헌재는 박 씨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헌법을 수호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으로 해석했다며 탄핵 인용의 중대한 이유로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 운운한 박 씨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뻔뻔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박 씨의 짧은 메시지에 분노가 치미는 더 큰 이유는, 그가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뻔뻔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국민의 죽음에 대해 여전히 무책임한 태도, 무감각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일곱 시간의 행적과 관련된 탄핵 사유는 비록 헌재에서 기각되었지만, 그것이 다수 국민의 큰 분노를 이끌어 낸 중대한 과오임에는 변함없다. 그런데 자신의 탄핵 문제로 인해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고로 사망한 국민에 대해서 박 씨는 또다시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탄핵 선고일 며칠 전부터 안국역 네거리에 모여들어 탄핵 기각을 요구한 박 씨 지지자들은 분명 이 나라 국민이다. 헌재의 준엄한 결정에 불복한다며 폭력을 자행하고, 기자를 무차별 폭행하며 언론 자유를 침해했더라도 여전히 그들은 국민이다. 국민이 자신으로 인해 촛불과 깃발로 분열되고, 기어코 폭력 사태로 번진 데다 심지어 세 사람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사과는 커녕 그들의 희생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는 그의 정신세계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민 대변인은 박 씨가 사저로 들어가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밝혔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눈물이었겠는가?

자신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억울함과 회한의 눈물이었을 수는 있을지언정 꽃샘추위에도 거리로 나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온갖 비난을 들어가며, 할복과 분신을 각오한다며, 우리 대통령님은 죄가 없다며, 끝까지 편 들어주는 지지자들에 대한 감사나 미안함이나 고마움, 그리고 끝내 불미스러운 사고로 사망한 국민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유감을 나타내는 눈물은 결코 아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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