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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미술계의 상생이란 무엇인가?

"미술 시장의 젊은 변모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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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연수기자 |  2017.02.21 19:08:42

▲한국화랑협회의 대표적 행사인 '화랑미술제'.(사진=화랑미술제 홈페이지)


이화익 신임 화랑협회장과 인터뷰를 했다(http://www.aaart.co.kr/news/article.html?no=4256). 신임 회장은 반복되는 질문에도 성실하고 유연하게 답했다. 하지만,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면 질문과 대답이 묘하게 어긋나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고백컨대, 그 이유는 기자의 질문에 객관적 입장이 아닌 화랑협회에 특정한 요구 사항이 숨어있었고, 그 요구는 화랑협회 스스로가 정의하고 있는 정체성이라든지 목표 및 계획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자는 작품 구매자들에게 선보이는 장르의 ‘다양성’을 키워드로 관련한 질문을 두, 세 번 가량 반복했다. 그 배경에는 상업화랑 및 아트페어에서 유통되는 작품들이 평면회화처럼 물질로 귀결되는 작품들 위주로 유통되는 시장구조와 그 외의 개념-설치-입체 작업들이 미술관 혹은 독립 전시 공간들에서 선보이고 있는 상황이 있다. 그리고 미술관 대안 공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전문 큐레이터들에 의해 선택돼서 선보이고 꽤 첨단에 있는 철학-사회적 개념들과 그 흐름을 같이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시장의 진입을 목표로 하는 작가들이 시장의 트렌드에 맞춰 작업을 선보이거나, 후자의 작업들을 선보이는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세계를 펼칠 때, 정부의 지원금 시스템에 많은 의존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현재 젊은 작가 및 기획자들은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말하기, 글쓰기 능력을 갖추고, 지원금을 받은 후에도 영수증과 보고서 등을 작성하는 데 작업 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지원금으로 작업 생활을 지속하는 데 물론 한계가 있다. 자신의 결과물이 새로운 작품으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는 시스템을 위한 답이 시장에 있진 않을까? 시장에 유통되는 작업들이 더 다양해진다면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 연구에 더 몰두할 수 있지 않을까?

시장의 책임?

화랑협회는 현재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당장 미술 시장을 회복시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했다. ‘사치품’처럼 여겨지는 미술작품에 경기 불황의 여파가 직접적으로 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 신임회장은 한국의 집이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일반적인 주거 환경과 콜렉터들이 전통적으로 회화 작품을 찾아왔다는 것으로 장르의 다양성을 위한 방안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사실, 이런 답은 이전에 한 옥션의 경매사와의 인터뷰에서도 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팔지 않는 것인가? 팔더라도 왜 평면에 한정돼 있는가?’ 라는 질문에 그는 시장은 유통-판매의 기능을 하고, 콜렉터들이 평면 작업을 주로 찾는다는 답을 한 적이 있었다. 

어제(20일) 열린 서울시립미술관의 연간 계획을 발표하는 최효준 신임관장의 말에서 미술관과 시장(화랑, 옥션)의 차이는 조금 이해가 가는 듯했다. 최 신임관장은 문화 향유 인구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 전략을 이야기하며, “세일즈(판매)가 만든 것을 파는 것이라면 마케팅은 팔릴 것을 만드는 것”이라고 전했다. 미술관이 교육과 역사를 정리해나가고 전파하는 목적성이 있다면, 시장은 만들어진 것을 판매하는 것에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시장이 판매의 목적에 도달하는 것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지원금 따먹기’ ‘콜렉터와 인맥 쌓기’로 특화돼 막상 결과물은 조야하기 짝이 없는 작품들이 시장과 미술계 전반에도 분명 존재하며, 정체성을 잃은 채 도구화되고 없어져버리는 작품들 또한 존재한다. 그 손해는 고스란히 관객 및 작품 구매자가 떠안는다.

결국은 닭과 달걀의 관계라고 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진짜를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한 대중’을 탓하기도 한다. 역할의 한계를 판매-유통에 둔 시장의 탓, 더 이상 시스템의 변혁을 꿈꾸지 못하는 창작자들의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역할을 하는 이들이 모든 종류의 사회-집단을 이루는 대다수이며, 이들 개인의 조그만 인식의 변화가 커다란 변화의 시작임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조금은 먼 예일 수도 있지만, 소위 ‘삼성맨’의 이야기를 들었다. 변화를 바라며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에 나가서 촛불을 들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문구를 발견할 때마다 속이 상했단다. 그것은 그의 가족-일가친척들도 마찬가지였다. ‘삼성공화국’이란 말을 들을 만큼 한 다리 건너면, 삼성 다니는 사람 하나 정도는 안다. 그렇게 따지면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 모인 사람들 중 삼성 혹은 계열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이 신임회장과의 인터뷰를 마치며 덧붙인, 조금 더 다양한 장르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시장에 선보일 수 있도록 신경써달라는 부탁은 여전히 기자 개인의 요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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