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섭기자 | 2017.01.19 12:30:06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18일 심문부터 18시간 동안 ‘마라톤 검토’를 끝낸 뒤 19일 새벽 5시께 새벽 4시 50분께 고심 끝에 영장을 기각해 특검팀은 이 부회장 구속 시 이를 근거로 내달 초까지 박근혜 대통령을 뇌물죄로 대면조사한 뒤 기소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 출범후 최대 위기에 봉착한 양상이다.
조 판사는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즉 법원은 박 대통령이 국민연금을 통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도왔고, 그 대가로 삼성은 미르-K스포츠재단과 최순실 딸 정유라 지원에 433억원을 지원했다는 특검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결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에 특검은 향후 면세점 선정 및 사면 등을 둘러싸고 박 대통령 측과 긴밀히 교감한 정황이 있는 SK, 롯데, CJ 등 다른 대기업들에 대한 수사를 통해 박 대통령의 뇌물죄를 입증한다는 계획이나, 이들 기업에 대한 수사 역시 대가성 입증이 최대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적잖은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영장 기각이 결정된 후인 오전 6시14분께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 정문을 천천히 걸어 나온 뒤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미리 준비돼 있던 체어맨 차량에 탑승한 뒤 임직원들이 밤샘 대기한 서초동 사옥으로 향했으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총수가 구속될 위기에 처했던 삼성은 영장 기각 소식에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특검은 영장 기각 사실을 전달받은 뒤 2시간 만인 오전 7시께 수뇌부가 모인 가운데 상당히 무겁고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긴급회의를 해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재청구, 불구속 수사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향후 수사 방향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수사팀 내부에선 박 대통령을 본격적으로 겨냥하기도 전에 수사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대로 물러설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수사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그동안의 수사 결과를 스스로 부정할 이유가 없다며 내용을 보완해 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안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어차피 박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인 만큼 멀리 보고 차분하게 시간을 두고 증거 자료와 진술, 법리 등을 원점에서 종합적으로 재검토해보자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충실한 추가 수사를 통해 뇌물죄 입증 요소를 더 촘촘하고 치밀하게 구성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러한 ‘신중론’의 배경에는 국내 최대 기업의 경영 공백이나 국가 경제에 대한 우려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영장을 재청구했다가 다시 기각될 경우 거센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 등이 거론된다.
특검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영장 기각으로 수사가 끝난 게 아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동안 해온 대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만 보고 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