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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블랙리스트? 문화계도 그대들의 이름을 기억한다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응하는 문화계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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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기자⁄ 2017.01.09 17:03:13

▲지난달 29일 ‘박근혜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가 정부의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과 관련해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사퇴를 촉구했다.(사진=연합뉴스)

만화 ‘데스노트(Death Note)’는 등장 당시 파격이었다. 노트에 이름을 적기만 하면 30초 안에 심장마비로 그 사람이 죽는다는 설정. 진짜 죽음을 다루는 노트다. 데스노트는 영화, 뮤지컬로도 만들어졌고 현재 국내에서도 공연되고 있다. 소재 자체는 흥미로울지도 모르지만 한 인간이 자신만의 정의를 잣대로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결정한다는 것 자체는 역시 잔인하다. 사람들은 “말이 돼?” 하고 웃어  넘겼다. “만화니까 가능하지” 하며. 그런데 데스노트를 뛰어넘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현실에 펼쳐지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이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일었다. 청와대가 문화예술계에서 검열해야 할 9473명의 명단을 작성해 문화체육관광부로 내려 보냈다는 것.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면 정부의 각종 지원에서 배제 대상이 되거나 제약을 받았다는 발언도 나왔다. 여기에 의혹 당사자들의 “아니다”라는 부인만이 이어졌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관련해 다양한 토론이 열리며 실제 불이익을 당했다는 사례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박영수 특검팀은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던 중 블랙리스트가 진짜로 작성됐다는 혐의를 잡았다. 국가정보원까지 관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절대로 아니다”라며 부인하던 문화체육관광부 내부도 뒤숭숭하단다. 여기에 블랙리스트 말고 적군리스트도 등장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박근혜 대통령이나 정부를 비판하는 인사들을 따로 관리하는 적군 리스트를 만들었다는 것. 특검팀은 조만간 김 전 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을 소환해 해당 의혹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문화예술인은 사상과 표현을 자유롭게 펼칠 권리가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블랙리스트라니. 문화는 여기 치이고 저리 치였다. 하지만 이것은 그만큼 문화를 무서워하기 때문. 광화문 광장에서 문화예술의 자유를 위해 캠핑촌을 꾸린 송경동 시인은 몇 달 전 인터뷰 때 “문화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있다. 사회적 구조나 관계에서 어떤 모순이 있는지 꼬집고, 부당한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문화예술은 ‘제2의 언론’이자 ‘제2의 입법기관’과도 같다. 그러니 얼마나 통제하고 싶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런데 문화가 돈에 얽매인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블랙리스트야 현재, 그리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먼 옛날부터 전 세계에 있어 왔다”며 “단순히 지원을 받지 못한 것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 여기에 문화예술인은 자체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이 분노한 것은 ‘지원을 끊네 마네’가 중심이 아니다. 돈을 받아서 물러날 일이 아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 받은 것, 그것이 바로 농단의 핵심이다.


홍성담 작가의 경우 현 정부를 비판한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작품 ‘세월오월’에 대해 수정 요구를 받고, 결국엔 전시장에서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부여받지 못했었다. 어떤 숨어 있는 잣대가 창작 활동이 ‘옳다’ ‘그르다’를 판별해버리는 실태. 이 실태에 문화예술인은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일전 토론회에서 열변을 토했던 한창순 소설가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그는 “지원금이 당신들(블랙리스트를 주도했다는 의혹의 당사자들) 적금이냐. 당신들이 열심히 적금을 부어서 만들었냐. 그 지원금은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만들어졌고, 내가 낸 세금도 포함됐을 것이다. 왜 그게 자기 것인 양 위에서 마음대로 쓰나? 올바른 창작 활동을 위해 정당하게 돌려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융성’이라는 수식어 아래 문화 정부를 이끌겠다고 하지만, 실상 여기에 비선 실세인 최순실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자본이 정당한 곳이 아닌, 부패를 축적하는 데 쓰였다 해서 ‘문화융성’이 아닌 ‘부패융성’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돈이 올바른 곳에 쓰일 권리, 이것 또한 중요하고 당연한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을 제대로 바로잡기 위해 문화예술인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양한 문화단체 및 예술인의 시국선언이 이뤄진 광장에는 7일 블랙텐트가 들어섰다. 블랙리스트와 예술 검열에 항의하는 의미로 무대를 꾸린다. 부당하게 무대를 빼앗겼던 예술인에게 무대를 돌려준다는 취지도 있다. 아트선재센터의 장영혜중공업의 개인전에는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정치인들, 무엇을 감추나?’라는 의미심장한 작품이 등장한다. 뮤지컬 ‘오! 캐롤’에서는 “우주로 날려 보내야 한다” 등 현재의 국정농단의 세태를 풍자하는 대사가 등장한다(관객들이 이때 가장 많이 환호한다).


만화 속 데스노트는 사람의 심장을 멈춰 신체적으로 죽인다. 그런데 여러 의혹에 따르면 블랙리스트는 살려는 두되 정신을 자유롭게 펼치지 못하도록, 즉 정신을 죽이는 데 목적이 있다. 더 잔인하고 무섭다. 하지만 문화는 결코 ‘빙다리 핫바지’가 아니다. 이대로 죽지 않는다. 제대로 된 권리를 찾으려는 문화인의 움직임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그대들은 문화를 통제하기 위해 리스트를 작성했지만, 문화계 또한 자유를 억압하고 탄압하려 했던 그대들의 이름을 잊지 않고 있다.” 이 목소리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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